이태리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가르다 호수에서

후조 2015. 8. 1. 05:06

 

이태리 북부, 밀라노에서 베로나로 가는 길에

이태리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었습니다.

 

가르다 호수 (Lago di Garda)

 

 

 

 

 

베나코(Benaco) 호수라고도 불리우는 가르다 호수는 면적 370평방 Km로

수천년 전 고대의 빙하가 계곡에 많은 수의 모레인을 침적시키며

길고 깊은 균열을 만들고 사르카(Sarca) 강물이 그 틈을 채워 만들어진 호수인데

호수라기 보다는 마치 바닷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가르다 호수 인근에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이 있다고 해서

밀라노를 출발하여 가르다 호수에 도착했는데

호수를 만나 왼편 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편 쪽으로 가니 엄청나게 큰 호수인지라

호수를 따라 식당이 즐비하였습니다.  우선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며

그 지역에 대해 물어보기로 하고 들어간 식당, 왠지 아주 한산하였습니다.

 

 

 

 

 

  

점심 식사를 시켰는데 와인과 함께 나온 음식,

왼쪽은 검은 쌀(?)과 해물이 들어간 밥이고 오른쪽은 역시 해물이 들어간 파스타,

사진으로는 좀 이상하게 보이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 것같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이 있는 시르미오네(Sirmione)가 어디냐고 물으니

완전히 반대편을 가르킵니다. 

 

 

 

 

 

호수 저편 높은 성탑이 보이는 곳이 가르다 호수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시르미오네라는 도시(마을)인데

우리는 정 반대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산하고 조용했나 봅니다.

 

카메라 줌을 해서 찍어서 가깝게 보이지 실제는 아주 멀게 보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수를 따라 한참을 가서 시르미오네 지역에 도착하니

얼마나 차가 많고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메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쪽으로 호수를 따라 한참을 가서 시르미오네 지역에 도착하니

얼마나 차가 많고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메야 했습니다.

 

 

 

 

 

 

 

날씨가 좋고 아름다운 가르다 호수 지역에는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작은 도시들이 여러개가 있어서

여름이면 북쪽에 있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에서까지 오는 차량들로

도로가 막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몰려 온다고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 시르미오네(Sirmione)입니다.

 

 

시르미오네(Sirmione),

시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려던 시름도 달아나 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

가르다 호수 가운데로 길게 쭉 뻗은 반도로 입구에 주차할 곳을 만들어 놓고

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하여 마치 호수 가운데 있는 섬처럼 만든

도시라기 보다는 작은 도성같은 곳이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인파가 움직이는대로 따라가 보니 아름다운 호수가 보이고

성 입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각상, 벌거벗고 누워있는 여인 위로

역시 완전히 벌거벗은 남자가 서 있는 조각이 민망스럽게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성 왼쪽으로 광장이 있고 주위에는 호텔, 카페, 식당들이 있고

주전 1세기에 살던 카툴루스의 흉상도 있어서 검색을 해보니

그는 로마시대의 서정시인이였습니다.

 

 

 

 

 

가르다 호수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괴테, 바이런, 로렌스, 입센,

릴케, 지드 등 수많은 문학가들이 예찬하며 사랑하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대는 아는가? 레몬 꽃 피는 나라를,

검푸른 잎 새에 황금빛 오렌지 불타고

실랑이는 바람은 푸른 하늘에서 불어보고

뮈르테는 고요하며 월계수는 높이 서있고

그대는 혹 그 나라를 아는가?"

 

 

우리가 흔히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이라고 알고 있는 이 詩는

독일의 문호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이야기 詩(Ballade)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나라는 이태리,

그 중에서도 베로나 지방의 이 가르다 호수를 말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춥고 긴 겨울의 북유럽 사람들에게 찬란한 태양이 있고 오렌지가 열리는

풍요롭고 따뜻한 곳, 이태리는 언제나 가고 싶어하는 로망의 나라였나 봅니다.

 

 

이 빌헬름 마이스터와 미뇽의 이야기를 토대로 프랑스의 작곡가

앙부루아즈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가 오페라로 만들었는데

이 시는 미뇽이 부르는 아리아로 더욱 유명합니다.

 

이태리의 귀족의 딸로 태어났지만 집시에게 납치되어 집시 악단의 단원이 되어

여러나라를 유랑하면서 지내는 미뇽에게 견문을 넓히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세상을 유람하는 젊은 대학생 빌헬름은

주막에서 만난 미뇽에게 고향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말해달라고 하자

미뇽이 고향을 기억하며 부르는 노래가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Connais tu le pays"입니다.

  

.오페라 미뇽(Mignon)에 나오는 아리아,

"그내는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는 찾지 못했고

여기에서는 Magdalena Kozena가 부릅니다.

 

 

 

 

그러나 이들 보다도 훨씬 전, 베로나에서 태어난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카툴루스(Gaius Valerius Catullus, 87.A. C. - 54 A. C.)는

이곳에 빌라가 있어서 이곳에서 지내면서 시를 썼다고 하는데

그를 기념하여 광장에 그의 흉상이 있었습니다.

 

카툴루스가 시를 쓰던 2천년 전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요새처럼 생긴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차들은 다닐 수 없는 지역,

고대 로마의 흔적, 중세 시대의 성, 궁궐, 귀족들이 살던 빌라,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 젤라토 가게 등이 아름다운 호수와 함께

너무나 독특한 정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르미오네 지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름다운 호수와 경치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시르미오네의 복잡한 도심을 지나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을 찾아갔습니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왼쪽으로 아담하고 단정한 호텔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마리아 칼라스가 이곳에 살았다는 현판이 붙어있는,

돌담이 높게 쌓여 있는 노란 집이 보였습니다.

 

복잡한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아주 가까운 곳인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칼라스하면 우리는 먼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생각하게 되고

또 오나시스와 결혼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베로나의 오페라 페스티발에

1947년 처음으로 오게 되었을때

베로나 근처에 여러개의 공장을 소유하고 있던 사업가이며

열렬한 오페라 애호가였던

50대의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를 만났고

메네기니는 그녀의 열렬한 후원자로 그녀가 전 유럽에 명성을 날리게 하였는데

1949년에 그들은 결혼하여 이곳에서 지내다가 1957년에 칼라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Aristotle Socrates onassis, 1906-1975)를 만나게 되자

2년 뒤 1959년에 그들은 10여년의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Maria Callas

Image result for giovanni battista meneghini biography

마리아 칼라스와 남편이었

Giovanni Battista Meneghini

(pictures from internet)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뉴욕에서 태어난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14세 때 그리스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다시 아테네 음악원에서 만난 스승인

스페인의 명 가수 엘비라 데 이달고(Elvira De Hidalgo)의 헌신적인 가르침으로

오페라 가수로 성공하였는데 미국에서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1947년 이태리 베로나의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성공적으로 데뷰한 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 데뷰하게 되면서 그녀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됩니다.

 

스승인 이달고 선생이 일찍이 그녀의 장래는 이태리에 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태리에서 성공하게 된 후 미국에서도 크게 인정받아

거의 모든 오페라의 주역으로 전설적인 칼라스의 시대를 이루어 갑니다.

그러던 중 1950년 대 말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면서

메네기니와 헤어지지만 메네기니는 칼라스가 남긴 물건들을 정리하고

그녀와 함께 했던 날들을 회고록에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칼라스의 별장,

다시 말하면 남편 메네기니의 별장으로 베로나에 오페라를 공연할 때,

여름마다 이 별장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바로 건너편에는 5 스타 호텔인 Hotel Villa Cortine이 있는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호텔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저택으로 보이는 호텔인데

칼라스가 이곳에도 자주 와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5-Star HOTEL VILLA CORTINE

 

5-Star HOTEL VILLA CORTINE 입구

호텔 건물은 숲에 쌓여 보이지도 않습니다.

 

 

 

 

 

칼라스의 별장과 호텔 사이에

마리아 칼라스 공원(Parco Maria Callas)이 있었습니다.

크지는 않았지만 숲이 아름다워 산책하기에 아주 좋을 것같았습니다.

 

메네기니를 떠나 오나시스와 결혼을 하고 싶어했지만 오나시스는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을 만나 결혼을 하는(1968년) 바람에

오나시스와의 관계도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후원해 주던 메네기니도, 화려한 무대를 접을만큼

무지개 꿈을 꾸던 오나시스와의 관계도 무너져버리게 되자

70년대 잠시 즐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순회 공연을 하는 등 다시 활동을 하였지만

1974년 테너 주세페 스테파노와 함께 한국에서의 공연과

그 해 11월 11일 일본 삿보로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나고

1977년 파리에서 53세의 아까운 나이에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체중을 줄이느라 힘든 노력을 한 결과 우아한 자태와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강하고 힘찬, 폭넓은 가창력과 뛰어난 기교,

무대에서의 스케일이 큰 연기로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했던 칼라스는

오페라 계에서 prima donna로서 거액의 출연료를 받았으며 그녀가 참석하는

파티에는 수많은 명사들과 부호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경력만큼 그녀를 따라 다녔던 스캔들도 이루 말할수 없이 많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녀를 화장한 재는 잠시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에 있다가

나중에 그리스의 애개 해(Aegean Sea)에 뿌려지고,

그 바다는 영원한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미망인이던 재클린 케네디도

오나시스와 결혼한 후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못하여 이혼을 준비하는 중에

오나시스가 사망하게 되어(1975년) 재클린은 다시 오나시스의 미망인으로

미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원래의 커리어(신문사의 기자였던)를 살려서

뉴욕에서 출판 사업, 저술 활동과 자선 사업 등을 하다가

64세의 나이에(1994년) 암으로 생을 마감하지요.

 

 

 

 

 

 

선박왕 오나시스도, 오페라계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도,

미모와 지성을 자랑하던 재클린 케네디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으니

인생의 허무함이야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젊어서 만나 결혼한 남편 메네기니의 고향이

이렇게 마리아 칼라스를 기억하고 있고

그녀가 남긴 많은 음반들로 인하여

오페라 애호가들에게는 영원한 디바로 기억될

마리아 칼라스...

.

.

.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아리아,

"노래(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

"I lived for arts and I lived for love"는

어쩌면 마리아 칼라스 자신의 고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난 노래에 살며 사랑에 살며

난 남에게 해로움 주지 않았네

불쌍한 사람 남몰래 수없이 도와주었네

항상 믿음 속에서 살면서

성인들 앞에 정성을 다해 기도 드리고

언제나 제단 앞에 고운 꽃을 바쳤네.

나 고통 당할 때 어찌해 이와같이

어찌해 날 내버려 둡니까?

성모님 위해 보석도 다 바치고

또 하늘 높이 거룩한 노래 항상 바쳤건만

나 고통 당할때 어찌하여 하나님은

나 홀로 이렇게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2011/12/03 




 


흙둔지

그녀의 음색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리카락이 쮸볏쮸볏 솓던 기억이 스물거립니다.

이곳에 오면 항상 정성스럽게 올려주시는
관광지 사진 덕분에 눈이 호사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인생사 새옹지마이거늘...
무엇이 안타까워 그리 욕심을 부리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2011/12/03 14:21:25  


이예수

글을 읽으면서 보여지는 풍경보다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의 아름다음에 귀가 쫑끗하게 됩니다
재클린의 전기를 읽어 보았었는데 아무런 내용도
기억됨이 없었는데 두 여성이 생각보다 일찍 죽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는군요  2011/12/05 19:14:01  


딱다구리

비포 칼라스의 신화의 목소리..
전성기의 소리는 고음에서 큰 구를 울려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나죠?
어릴 적 전축서 나온 그녀의 하바네라의 소리를 잊지 못해요, 전.
칼라스란 글자에 얼른 들어왔어요
 2011/12/13 11:43:38  


딱다구리

전남편 메데기니가 저 퉁퉁한 칼라스가 보기싫고 굵게 부은 종아리로 베니스를 보며,너무 기뻐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솔직한 힘든 처지를 토로하는 모습에, 그녀를 적극 돕겠다 마음먹었고 그러면서 결혼하게 되었다는 글을 읽은적 있어요.. 2011/12/13 15:32:42  


푸나무

차만 타면 마리아 칼라스를 듣습니다.
몇년전에도 그랬다가
다시요,
카스타 디바,
그녀는 정알 디바같아요.
근데 가만히 보면
오나시스가 돈만이 아니라 나름 매력도 있었나봐요.
희대의 여인들이 목맨것 보면,

 2012/01/27 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