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Memento Mori, 죽은 자의 땅, 산 미켈레섬에서

후조 2015. 8. 1. 02:08

 

 

베네치아는 일찍이 유리공예가 발달하여

베네치아의 유리제품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무라노섬(Murano Island)에는 유리공장들이 많이 있는데

호텔에서 수상택시로 유리공장 견학의 기회를 무료로 제공한다기에

아침을 일찍 서둘러 먹고 호텔로비에 나갔더니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유리공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인줄 다 알기 때문인지 

가는 손님은 카나다에서 왔다는 나이 많은 두 여자분과 나 뿐이었습니다.

곁지기도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빠지고...

 

 

 

 

 

 

수상택시가 아드리아 해(海)의 물살을 빠르게 가르며 도착한 곳은

무라노 섬의 어느 유리제품을 만드는 곳,

구경할 사람은 단 세사람이지만 시범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오케이...

 

거창한(?) 카메라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는 나에게

혹시나 영화사나 신문사에서 일하느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하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포스팅을 염두에 두고 견학을 나선 Blogger도 기자인가? ㅎㅎ

 

 

 

 


불에 달구어 뜨거워진 유리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것을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뭔가를 전문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역시 찬사를 받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평생을 그 일에만 종사했을 것같은 전문가...

 

그 뜨거운 유리를 이리 저리 만지니까 유리가 불과 몇분 만에 말(馬)이 되고

얼마나 뜨거운가를 보여주기 위해 방금 만든 말 위에 종이를 놓으니

금새 타버립니다.

 

 

 

 

 


시범을 보인 다음에 그들은 매장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물건을 사게 하려고...

사진은 더 이상 찍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찻잔이나 디너용 그릇, 샹들리에, 장식품들, 악세사리 등

온갖 화려한 유리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우송도 해준다고 하면서 끈질기게 설명하는 세일즈맨...

 

애당초 물건을 구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내가 언제 이곳까지 또 오랴 싶어서,

또 수상택시로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 미안해서 작은 악세사리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역시 상술에 넘어간 것인지...

 

 

 

 

그러나 내가 이곳까지 온 목적은 베네치아의 공동묘지가 있는 산 미켈레 섬이

이곳에서 배로 10분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행은 수상 택시로 호텔로 돌아 가고 나는 다시 버스표를 구입하여 수상버스를 타고 

공동묘지가 있는 섬, 산 미켈레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혼자서도 베네치아를 잘 돌아다니는 못말리는 트리오...

 

 


 

 

산 자들과 구분되어 이 섬 전체가 죽은 자들을 묻는 곳...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사람들이 죽으면 한정된 공간이기에

시신을 묻기 위해 이 섬 하나를 통채로 공동묘지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성당, 납골당 등이 있고 각가지 다양한 형태의 묘가 있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은 인파로 북적거리는데 이 섬에는 몇몇 관광객들과

묘지를 찾는 몇 사람들만 보이고 한산하고 조용했습니다.

온통 꽃으로 장식된 묘지들...

그러나 꽃은 생화(生花)가 아닌 조화(造花)들이었습니다.

 

입구에서 한 남자가 꽃 몇송이를 가지고 묘지 쪽으로 가길래

누구한테 가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가버립니다.

아마도 먼저 떠난 아내나 아니면 먼저 간 자녀를 찾아가는지...

 

 

 

 

 

 

죽어서도 빈부(貧富)는 존재하는지 묘의 모양도 다양합니다.
이 섬이 묘지로 만들어진 이후 이태리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발레단 "발레 뤼스"의 창시자였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ai Pavlovich Diagilev: 1872-1929),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F. Stravinsky: 1882-1971),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nd: 1885-1972), 등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하는데 이 넓은 묘지에서 이들을 일일이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죽음은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아주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외면하고 싶어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70, 강건하면 80의 짧은 인생을 외롭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다가 

결국은 외롭게 가는 인생,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다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평범한 인생이야 언제 간들 뭐가 그리도 애통할까 만은

젊어서, 아주 젊어서 생을 마감했던 천재 음악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마지막 손님이 올 때

올해도 많은 이들이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주님
눈물의 샘이 마를 겨를도 없이
저희는 또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떠난 이들의 쓸쓸한 기침 소리가
미루어둔 기도를 재촉하곤 합니다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올 손님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아직 살아 있는 저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헤아려 볼뿐입니다.


그 낯선 얼굴의 마지막 손님을
진정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가
상상보다는 어렵더라는
어느 임종자의 고백을 다시 기억하며
저희 모두 지상에서의 남은 날들을
겸허하고 성실한 기도로 채워가게 하소서

하루에 꼭 한번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용서를 먼저 청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깨어 있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지혜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당신의 은총 없이는
죽음맞이를 잘할 수 없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저의
믿음 또한 깊지 못해
깊은 회개를 미루는 저희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을
오늘도 함께 봉헌하며 비옵니다.

삶과 죽음을 통해서
빛과 평화의 나라로
저희를 부르시는 생명의 주님
당신을 향한 날마다의 그리움이
마침내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부활의 기쁨으로 열매맺게 하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영원한 안식,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곳,

우리 모두는 그곳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기에

삶은 또 그 나름의 가치가 충분한 것은 아닌지...

 

 


 

  

섬을 떠나 오면서 멀리 바라본 San Michele 섬은 사방이 붉은 벽돌로

쌓여 있어서 마치 어느 귀족의 성(城)을 방불케 합니다.

 

아름다운 섬, 그러나 죽은 자들의 섬, 산 미켈레 섬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많은 유럽의 예술인들이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해도

나는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외로울 것같아서...

 

그러나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 것은

떠들썩한 잔치집에서 보다는 마음이 숙연해지는 초상집에서

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장 1-4절 말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주제 음악이었던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No. 5, 4악장 Adagietto입니다.

 

일생을 통해 불행했던 말러가 이 곡을 작곡했을 때(1901년)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생전에는 작곡가 보다는 지휘자로 더 널리 알려졌던 말러가

빈 국립가극장의 감독으로 일하며 명성을 얻고 존경을 받기 시작한 때였고

알마 쉰들러를 만나 사랑하던 때여서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잔잔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

영화에서처럼 석양에 지는 황혼같은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영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말러의 불행한 일생이 연상되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2011/11/04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