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

"검은 돛배"와 해상제국이었던 포르투갈

후조 2015. 7. 30. 22:46

 



 

위의 사진... 지도에 일본과 한국이 보입니다.

해상제국이었던 포르투갈은 1541년에 일본에 들어갔었는데

그 때 한국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지진 피해의 참상을 보면서

몇년 전에 여행을 했던 포르트갈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공항

  

유럽의 서남쪽 끝에 있는 포르투갈은15,16세기 대 항해 시대에 가장 큰 해상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인데

1580년에 스페인과 합병된 후 많은 해외 식민지를 얻게 되었지만

16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이 되고 다시 제 2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1755년에 일어난 리스본의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리스본의 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되었습니다.

1910년에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성립되었지만 계속적인 정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지금은 유럽에서도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경제 부흥에 힘을 쏟고 있어서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 개발도상국, A Developed Country(DC)라고 합니다.

  

 

 

리스본에서 약 28키로미터 떨어진 신트라 지역은

1995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화에 나오는 듯한 아름다운 도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에덴의 동산"이라고 격찬했다고 합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성같은 페냐성


신트라 구시가지에 있는 해발 500미터의 돌산 정상에 지은 14세기 주앙1세의 

여름별궁이었던 페냐성(Palacio Nacioal da Pena)은 "돌 위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성으로

이슬람과 고딕, 르네상스 양식 등 여러 건축양식의 집합체이며

외부의 파스텔조의 화사한 색갈이 특이하였습니다.

내부의 각 방들은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서 찍지 못했습니다.

각 방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으나 별로 화려하지는 않았는데

그 당시 벌써 화장실에 비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의 장식이 이슬람식 양식 무늬였습니다.

  

땅끝 마을(Cabo da Roca)

사진찍기를 싫어하지만...

Cabo da Roca, 땅끝마을에서 멀리 등대를 뒤로 하고 찍었습니다.


신트라 지역에서 불과 10여km 떨어진 땅끝 마을이라는

Cabo da Roca, 유럽 대륙의 서쪽 끝입니다.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곳,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

멀리 등대가 보이고 낭떠러지 해안은 바람이 몹씨 불어서 서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포르투갈의 민족시인 루이스 드 카몽스는 이곳을

"여기 땅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대서양 건너 미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이곳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범선 모양의 높이 52미터의 발견 기념비입니다.

엔리케 항해 왕자의 500주년을 기념하여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처음 떠난 자리에 1960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맨 앞에는 엔리케왕자,

그 뒤로는 샤비에르, 콜럼버스,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등

대 항해시대의 모험가, 천문학자 선교사들...

해상제국이었던 포르투갈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15-16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제국이었던 포르투갈이

해상으로 세계를 누빈 지도가 이 광장에 있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덜덜 떨면서 지도를 보았습니다.


 

1500년대 초기부터 이미 세계 각국을 배로 다녔다고 합니다.

각 나라에 들어갔던 해(year)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지도에 일본과 한국이 보입니다.

1541년에 일본에는 갔었는데 한국까지는 가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에도 들어갔더라면 한국이 좀 더 일찍 개화되지 않았을까...


바닷물인가, 강물인가?  테주강과 바다(대서양)가 만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류시화님의 詩가 생각납니다.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물이 소리내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류시화님의 詩, "세월"

 

 

 

멀리 보이는 다리는 "4월 25일의 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1730년대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만든 회사에서

1966년에 완공한 현수교로 금문교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길이만 1km가 짧은 2,278km의 다리입니다.

이름은 문민독재에 항거하여 일으킨 1975년 4월 25일의

민주화 혁명을 기념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관광을 안내해 준 가이드...

 

서울 미대 출신으로 유학왔다가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역사, 미술, 등등 설명을 잘 해주시는지...

관광안내에 대힌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은

"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벨렘탑(Torre de Belem),

너무 추워서 가까이 다가 가지도 못했습니다.

이 탑은 마누엘 1세에 의해 1519년에 건설되었으며

대서양 하구를 드나들던 선박들을 통제하던 요새인데

그 후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시기부터 19세기 초까지는 1층은 정치범 수용소,

2층은 포대와 안전항 항해를 지켜준다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있으며

그 위층은 왕족의 거실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90 여년전 이곳에서 출발하여

브라질의 리오 데자이네로까지 날아간 비행기의 모형,

진품을 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


대 항해 시대의 선구자 엔리케 항해 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미누엘 1세가 제로니모스파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으로 건립하였는데

1755년에 리스본에 닥친 대지진에도 견디어 냈으며

대 항해시대의 영화를 후세에 전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 안에 

포르투갈의 영운 바스코 다가마와 민족시인 까몽스의 무덤이 있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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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돛배: Barco Negro"

세계적인 파두 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ques)가 부릅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이런 노래를 Fado라고 한다지요?

이태리의 칸초네, 프랑스의 샹송, 포르투갈의 파두...

Fado는 운명, 숙명이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인데

영어의 fate, destiny와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파두는 주로 애수어린 슬픈 곡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

바다에 대한 노래가 많다고 하는데

이 노래도 너무나 슬픈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떠난 남편을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 기다리는 아내,

어느 날 남편이 탄 배가 수평선 너머 멀리서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데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엇습니다.

그 검은 돛을 바라본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고...

 

너무나 유명한 포르투갈의 국민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1999년 10월 6일, 79세의 나이에 죽었을 때

포르투갈 정부는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슬픈 곡조가 한국인의 정서에도 잘 맞아서

학창시절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즐겨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2011/03/17 13:42   


 
 
cecilia 저도 오래 전에 브라질 가기 위해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갈아 탄적이 있어요.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공항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항공 회사에 항의를 했더니

일류 호텔에서 1박 비용과 택시비를 지불해주더라고요.

화려한 호텔 방에서 혼자 지내기 정말 아까웠어요.ㅎㅎ 2013/02/02 20:4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