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빨간머리 사제

후조 2015. 8. 1. 08:07

 









물의 도시로 환상적인 베네치아는 역시 이야기거리가 많은 것같습니다.

 

<사계, The Four Seasons>의 작곡가, 바로크 음악의 작곡자, 당대에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베네치아의 빨간 머리 신부"라는 별명(The Red Priest)의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가 

베네치아 태생이지요.

그러므로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다니다 보면 비발디의 작품을 연주하는 컨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를 

곳곳에서 보게 되어 비발디의 고향이 베네치아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었습니다.

  

 

La Pieta 성당


 

 

 

산 마르코 광장에서 두칼레 궁전이 있는 곳으로 가다가 왼쪽 편의 탄식의 다리를 지나면 

로간다 비발디 호텔이 보이고 그 옆으로 피에타 성당이 있습니다.


비발디는 가난한 가정에서 조산아로 태어나 허약한 체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는 그가 사제가 되기를 원해서 그는 15세에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고

25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의 머리는 유난히 붉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그를 "빨간 머리 신부, The Red Priest"라고 불렀는데

오늘날까지 그의 대명사가 되고 있지요.

원래는 이발사였지만 바이올린 연주에도 뛰어나서 지방의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한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음악을 들으며 자란 비발디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사제가 되었지만 몸이 약하고 천식이 있어서 기도문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비발디는 

사제역 대신에 라 피에타 성당의 부속기관(Ospedale della Pieta)인 고아들을 가르치는 

고아원의 음악교사로 임명을 받아서 고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만들어

30여년동안 그들을 가르치며 매주 일요일마다 공개 컨서트를 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고아들은 대부분 당대 부유층 유력 인사들의 사생아들이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부모들이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아원에 많은 기부를 하여 풍부한 재정으로 

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유럽에 널리 알려져 당대에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는

고아들의 컨서트를 관람하는 것이 관광코스였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이 고아들의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400여 개의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비발디의 작곡을 듣다보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곡이 많아서

20세기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똑같은 곡을 400번 쓴 것이 아니냐고 비꼬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쓴 소네트가 붙어있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초연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비발디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신하들은 이 곡의 "봄" 악장만으로 특별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협주곡 외에도 50 여편의 오페라도 작곡한 비발디는 그의 제자이며 프리마돈나였던 여성 소프라노 안나 지로(Anna Tessieri Giro)와

이복 언니 파올리나(Paolina)와 함께 비발디의 연주여행에 동행을 하는 등 가까워지자 세간에서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게 됩니다.

사제로서 안나 지로와의 관계가 의심을 받게 되자 이에 화가난 추기경이 1737년 갑자기 오페라의 지휘를 맡은 

비발디와 안나의 출연을 금지시킴으로 오페라는 완전히 실패하고 깊은 상처를 받은 빨간 머리 신부는

1740년 안나와 파올리나와 함께 이태리를 떠나 그를 후원하던 카를 6세 황제가 있는 비엔나에 갔지만 

황제는 그가 도착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죽어서 비발디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비발디는 생계를 위해 작곡을 하다가 그 이듬해 폐렴으로 외국땅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생전에 출판된 곡은 거의 없고 거의 200년 후인 1920년 대 부터 그의 작품이 별견되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오늘날 그의 오페라 곡들이 거의 상연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오페라에 카스트라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성 가수의 활동을 용납하지 않았던 당시의 비인간적인 시대의 산물인 카스트라토,

변성기 이전의 소년을 거세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 여성의 소프라노와 남성의 성량이 합쳐진 

오묘한 음색의 카스트라토는 높은 개런티를 받으며 오페라를 즐기는 이태리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

1700년대 중반에는 이태리에서 매년 4천여명의 소년들이 거세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카스트라토, Alessandro Moreschi(1858-1922)

(image from wikipedia)


물론 이 악습은 법으로 금지되어 1922년 사망한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1858-1922)를 마지막으로 

거세된 카스트라토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모레스키의 음색은 녹음으로 남아있어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한편 남성이 여성의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같은 음색을 타고 나거나

변성기 후에 훈련을 통하여 가성으로 내는 높은 소리를 운터 테너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세훈같은 가수를 Counter Tenor, 일명 '팝페라 카스트라토'라고도 부르는 것이 그러한 이유입니다.

 

 

 

역사적으로 마지막 카스트라토인 모레스키가 부르는 구노의 '아베마리아'인데 

음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왠지 그의 노래가 울부짖음처럼 들리는 것이 무척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궁중에서 왕의 신하(내시, 환관)가 되기 위해서는 왕의 여자들과의 염문을 방지하기 위해

생식기를 거세하여야 했던 시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Loganda Vivaldi Hotel 

 

피에타 성당 옆에 있는 로간다 비발디 호텔은 비발디가 평생 살았던 집인데

지금은 개조하여 호텔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일박을 예정하고 이왕이면 이곳에서 묵고 싶어서 가기 전에 알아보니 

우리가 가는 날짜에 방이 없어서 안타깝게도 비발디가 살았던 집에서의 숙박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로간다 비발디 호텔 앞의 상인들 




 

눈 오는 날의 산 마르코 광장 (image from internet)


흐르는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중에서 "겨울"입니다.  비발디 자신이 이 협주곡의 소네트에서 표현한 것처럼

계절마다 특징을 잘 나타내었기에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듣고 싶게하는 음악이기에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곡인 것같습니다. 

내 기억 속의 내 고향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은 오히려 포근하였습니다.

그런 날 해질 녁 커피 한잔과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지요. 


 

 


멜라니

트리오님의 포스팅은 참 아름답고 섬세하세요.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을 세세히 관찰하시고
관련된 것들을 다 조근조근 설명해 주시니
감탄을 하면서 포스팅을 읽어 내려갑니다.

사계를 들으면서,
생전의 비발디는 작곡가로써는 그저 그런 편이지만 바이올린 주자로써는 만점이라는 평을 들었다니 그의 연주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해 봅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사계의 작곡가에게 '그저 그런 편' 이라는 평을 했다니
대단히 짠 평가를 내렸음이 분명한데.. 그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바이올린 주자로써 만점이라는 평을 내렸을까요.. 헤헤 또 쓸데없는 상상..

모레스키는 외모도 우울해 보이네요.. 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어떤 아름다움을 취하기 위하여 인간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잔인함..

 2012/01/14 12:03:33  


雲丁

비발디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포스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계"를 즐겨 감상하곤 합니다.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잔인함,
정말 무서워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2012/01/14 22:17:29  


흙둔지

카스트라토를 생각할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과연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요?
모레스키의 음색은 우울 그 자체인데
왜 그런 음색을 즐겼을지 이해가 안갑니다.
 2012/01/16 05:31:30  


bbibbi

디발디도,
빨강머리 앤 처럼 머리가 빨강색이었다니
갑자기 친근감이 팍, 듭니다요.ㅎㅎ

원래는 이발사 였다가,
바이올리스트 였다가,
서품을 받은 사제 이기도 한,
그의 삶의 이력이 참으로 특이 하군요.

똑같은 곡을 400 번 쓴거 아니냐는 말이
우스우면서도 안스럽습니다.
그의사후 200년이나 지나서야 세인들에게 알려지다니..
위대한 천재들은 왜 하나같이,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미성을 가진 카스트라토와,
내시라고 했던 조선의 내관들이 왜 또 동일선상에서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메조 소프라노로..대체가 안되는 건가요? 그참...

오늘도, 어김없이 음악공부와 함께
아름다운 베네치아와
피에타 성당을 단숨에 둘러보고 갑니다.  2012/01/17 08:05:26  


trio

삐삐님, 서울에서 오셨나요? 반가워요.

디발디가 아니고 비발디...저도 오타를 많이 해요.
그리고 비발디가 이발사였다는 것이 아니고
비발디의 아버지가 이발사였는데 바이올린도 잘 했대요. ㅎㅎ

삐삐님 오타에 한바탕 웃었네요.
웃을 일이 없는 요즘...웃게 해 주셔서 탱큐 베리마치!

시차 적응 중? 낮이 밤이고, 밤이 낮이고...
 2012/01/17 10:14:29  


trio

멜라니님 모습을 보니 너무 반갑고 감사하고,
운정님 건강하시구요,
둔지님, 너무 화 내시지 마시기를...건강에 해로우니까요.
감사합니다.
 2012/01/17 10:17:39  


bbibbi

쿠,헤헤헤..
개떡같이 써놔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시는 트리오님..
정정 하겠슴돠..비발디...

아, 아버지가 이발사 였군여...
또 덜렁거림...

시차는,
첨부터 없었답니다.
근데, 멀미를 많이 한답니다.
내가 운전하면 개안아요.

글타고,
비행기 꺼정 지가 운전힐순 없겠지요?
이륙할땐 괜찮은데,
착륙할때 멀미가 나드라구요.  2012/01/18 07:23:41  


소리울

베네치아에서 한 밤 잘 때
답답한 골목의 어느 작은 호텔..
그래도 사계는 카페 플로리안에서 들었지요. ㅎㅎㅎ
다시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1/20 00:32:36  


리나아

오랫만에 밀린것 읽다가 잠깐 다른 일도 하다가 다시 트리오님 방에서....
음악도 듣고 좋습니다...
눈오는 날의 산마르코 광장처럼...
오후3시부터..두시간 반동안 계속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차 길도 엉금거리고..밀리고..
점점 하얗게 쌓여가는군요...
저도 나가서 볼 일보고나서.. 병원 물리치료예약있어서 가다가 도중 길을 멈추고
집으로 들어왔답니다...
길이 너무 미끌거려서 걷기 무서워서요...물리치료에 물리치료 더 해질까봐서...^^

 2012/01/31 17: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