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이태리의 영광의 인물들이...피렌체의 산타 크로체성당

후조 2015. 8. 1. 08:11


산타 크로체 성당(The Basillica di Santa Croce, Basilica of the Holy Cross)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작년 여름의 끝자락에 이태리를 2주간이나 자동차로 돌아다녔던 일은

생각할 수록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22편의 여행기를 쎴는데 아직도 쓸 거리가 많고 소개하고 싶은 사진들이 많이 있는 것은 

그만큼 이태리라는 나라가 무중무진한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렌체에서 아르노 강의 베키오 다리를 구경하고 나서

산타 크로체 성당을 찾아가는데 트리오가 또 바보짓을 했습니다. ㅋㅋ

 

산타 크로체 성당은 아르노 강변에 위치한 것이 아니고 조금 안쪽에 있지만

길 표시만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아르노 강변을 따라 기울어가는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서쪽으로 가다가

그만 길표시를 놓쳐버리고 마냥 서쪽으로 갔다가

물어 물어 작은 골목을 누비다가 겨우 찾았답니다.

유럽의 작은 골목길들...좁고 돌로 된...

지금 생각해도 바보같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골목길에는 번호판을 들고

일행을 찾는 가이드들이 있었고 성당 앞

산타 크로체 광장(Piazza di Santa Croce)에는 인파로 북적이었습니다.

 

 

성당(The Basillica di Santa Croce, Basilica of the Holy Cross) 앞 광장에 있는 단테의 동상

 

 

성당 앞 광장은 산타 크로체 광장이라고 하며

이 광장에는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단테는 고향인 이곳 피렌체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쫓겨난 후 끝내 고향에는 돌아오지 못해서

그의 무덤은 라벤나에 있고 이 성당에는 기념비만 있고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단테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단테 박물관과 함께 올리겠습니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프란시스칸 성당으로 전설에 의하면

성 프란시스(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성당은 1294년에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에서 돈을 지불하여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에 의해 옛건물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거의 100여년에 걸처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1966년에는 아르노 강이 홍수가 나서 물이 성당 안으로 진흙과 기름 등과 함께 엄습하여

예술품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어 수십년에 걸쳐 보수하며 아직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재를 수백년 보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유럽 여행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성당들인데 

대부분의 성당이 중세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정도로 카톨릭교계의 막대한 자산을 들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었는데 카톨릭교계의 부패를 논하기 전에 예술적인 가치만으로 따지면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러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상상을 불허하는 건축물들입니다.

 

특히 산타 크로체 성당은 성당이라기 보다는 마치도 묘소같이 느껴지는 것은

이태리의 르네상스의 대명사 미켈란젤로, 지구는 네모진 것이라고만 알고 있던 당시에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던 "지동설"의 갈릴레오, "신곡"의 단테(기념비만), "군주론"의 마키아 벨리,

명화 "최후의 만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작곡가 롯시니 등등,

이태리를 빛낸 영광스러운 인물 276명의 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명 "Temple of the Italian Glories"라고도 불리워진다고 합니다.

 

내부에 들어서니 양쪽 벽에 수 많은 유명인들의 묘들이 예술작품처럼 

조각과 회화로 아우러져 있고 내부 바닥에도 수 많은 묘들이 있어서

박물관에 들어선 듯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관광객들도 모두들 조용히 예술 작품같은 묘들과 

다른 회화들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사진을 찍도록 허용을 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와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

 

 


괭장히 화려한 "지동설"의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의 묘인데

자세히 보면 그가 발명한 망원경과 지구본을 안고 있고 뒷면에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심과 

천사들과 제자들의 프레스코화가 대단히 화려합니다.

 

 

       왼쪽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묘이고

       오른쪽은 갈릴레오의 묘와 비슷한 스타일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묘입니다.

       모든 묘들이 묘소라기 보다는 예술작품같습니다.





































276명이나 되는 인사들 중에 알만한 이름은 불과 몇사람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진 인물은 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로 유명한

음악가 롯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였습니다.

 

'트리오'이니까요...

 

 

 

 

 

 

음악가,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한 만큼 그의 묘는 제단이 있는 앞쪽에 가까운 

오른쪽 벽에 있었는데 관 앞쪽에 아름다운 뮤즈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롯시니는 1855년에 파리에 가서 13년 뒤 1868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기때문에 

파리의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 묻혔었는데 나중에 유해는 이곳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되고

페르 라쉐즈 묘지에 있는 저택의 대문같은 무덤은 빈 무덤이지요.

 

워낙 유명하니까...이태리 정부가 프랑스에서 유해까지도 빼앗아 온 것이지요.

롯시니의 고향 페사로에 가니 길 가에도 온통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롯시니 음악원, 롯시니 오페라 하우스, 등등 이태리가 자랑하는 음악인임을 실감했었습니다.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에 있는 롯시니의 빈무덤

 

 

파리에 있는 롯시니의 빈 무덤도 파리 여행시에 보았고, 이번 이태리 여행에서 

그의 고향 페사로를 찾아갔고 그의 오페라 "윌리암 텔"의 배경이 된 스위스의 작은 마을도 찾아갔고

수년 전 그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배경이 된 스페인의 세비야도 가 보았으니

마치 제가 롯시니의 왕팬인 것같네요. ㅎㅎ

 

 

 


 

 

이 외에도 이 성당에는 파찌家의 예배당(Cappella dei Pazzi)도 있고

박물관(Museo dell' Opera di Santa Croce)도 있어서 자세히 둘러보려면

하루종일도 모자랄 것이지만 갈 길이 바쁜 나그네인지라 서둘러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와 아담하고 조용한 정원을 보니 롯시니의 작곡의

아름다운 플룻의 멜로디가 귓 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흐르는 음악은 롯시니가 작곡한

"Introduction, theme & variations for clarinet & orchestra in B flat major입니다.

악성 베토벤도 극찬했다는 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주제를

다양한 변주곡형식으로 작곡한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