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에펠탑과 모파상...
1889년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프랑스가 4번째 만국 박람회를 유치하던 해입니다. 당시 상공부 장관이던 에두아르 로크로이는 1887년에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물의 설계안을 공모하자 도시 경관에 대한 미학적 면을 놓고 파리 시민들은 찬반으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우아한 석조건물과 돔만을 보아온 빠리시민들은 높은 철탑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 미학적인 면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특히 예술가들은 항의서까지 발표하면서 반대운동을 벌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 대 1의 경쟁자를 제치고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이 채택되었고 교량 엔지니어였던 에펠은 자신의 토목공학적 지식과 경험을 살려 높이 300 미터의 철골 구조물을 기획하고 수천장의 부분 설계도면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2년 후인 1889년 에펠탑은 완공되었습니다. 에펠탑이 완성되자 에펠탑 건설의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모파상은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주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기자가 "아니 선생님은 왜 이곳에서 식사를 하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빠리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은 여기 뿐이지 않소" 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의 말처럼 파리 시내 어느 곳에서나 에펠탑을 볼 수 있고 밤에는 그 화려한 불빛으로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늘날 에펠탑이 없는 빠리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에펠탑 바로 옆에 흐르는 밤의 세느강
에펠탑 인근 공원에 모파상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에펠탑을 보지 않으려고
에펠탑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었다는 모파상도
죽은 후에는 이렇게 내내 에펠탑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자연주의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인 G.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노르망디의 미로메닐 출생으로 12세 때 부모가 별거하자
어머니 밑에서 문학적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지원 입대하였다.
전쟁 후에 심한 염전사상(厭戰思想)에 사로잡혔는데,
이것이 문학 지망의 결의를 굳히는 동기가 되었다.
1872년 아버지의 도움으로 해군성, 문부성에 취직,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의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귀스타브 프로베르에게서 직접 문학지도를 받았다.
1874년 프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를 알게 되었고,
또 빠리 교외에 있는 졸라의 저택에 자주 모여 문학을 논하던
당시의 젊은 문학가들과도 사귀었다.
1880년 졸라는 모파상을 포함한 6명의 젊은 작가들이 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취재한 단편집 《메당 야화(夜話)》를 간행하였는데,
모파상은 여기에 《비계덩어리》를 실어 날카로운 인간관찰과 짜임새 등에서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문단 데뷔를 확고히 하였다.
그후 《메종 테리에》(1881년), 《피피양》(1882년) 등의 단편집을 내어
문단에서의 지위를 굳혔다.
1883년에는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을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은 선량한 한 여자가 걸어가는 환멸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 작품으로서
그의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파상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단편에 나타나는 외설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톨스토이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파상은 이미 27세 경부터 신경질환을 자각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증세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과 10년간의 문단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몇 편,
그리고 《죽음처럼 강하다》(1889년), 《우리들의 마음》(1890년) 등의 장편 소설을 썼다.
다작으로 인한 피로와 복잡한 여자관계로 지병인 신경질환이
더욱 악화되어 1892년 1월 2일 니스에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그후 빠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정신 발작을 일으켜
이듬해 7월 6일 43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비계덩어리》를 발표하여 문단에 혜성같이 나타난 모파상의 작품은
되도록 주관을 배격하여 사실 그대로의 인생 모습을 허식 없이
간결한 문체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위의 내용은 위키페디아에서 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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