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12월을 보내며... 세도나에서

후조 2015. 12. 26. 00:41

 

 

 

 

겨울꽃

 

-김남조-




1

눈길에 안고 온 꽃
눈을 털고 내밀어주는 꽃
반은 얼음이면서
이거 뜨거워라
생명이여
언 살 갈피갈피
불씨 감추고
아프고 아리게
꽃빛 눈부시느니

 

 

 

 



 

2

겨우 안심이다
네 앞에서 울게 됨으로
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
줄기 잘리고
잎은 얼어 서걱이면서
얼굴 가득 웃고 있는
겨울꽃 앞에
오랜 동안 잊었던
눈물 샘솟아
이제 나
또다시 사람 되었어

***

김남조님의 시집 '가난한 이름에게' 중에서

 

 

 

 

 

 

 

 

 

한 해를 또 이렇게 속절없이 보냅니다.

그러나 돌아 보니 지난 한 해는 가장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1월, 피카소, 마티스, 르노아르, 샤갈, 세잔의  미술관들을 찾아다녔던 남프랑스,

3월에는 과테말라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러지기도 했고,

4월, 오랫만에 갔던 동경과 오사카, 그리고 잠간 들린 낯선 도시 서울..

6월, 멕시코 시티의 전철역에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전시되었을 때는 한류를 몸소 체험하는기분이었구요.

7월, 여름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던 콜로라도 베일 벨리 야외 음악당에서 감상했던

드볼작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8월, 오레곤 바닷가 출사는 심한 멀미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고난도 훈련이었습니다.

10월, 갑자기 합류하게 되었던 이태리의 오페라 투어는 가장 사치스러운 선물이었습니다.

10월 말, 늦가을의 캐나다 록키의 설경의 아름다움, 

12월 다시 눈 내린 아리조나의 세도나..

(이렇게 기록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 것같아서..)

 

체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면서도

출사 나갔을 때는 그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사진 찍기에 몰두 할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는 그 순간을 붙잡을 수는 있다고 하지요.

오래된 사진첩에서 발견하게 되는 빛바랜 누런 사진..

디지탈시대인 요즈음이야 사진이 모두 컴퓨터에 갇혀있지만

비록 우리가  찍는 사진이 작품성이 없다 할지라도

그 순간, 그 장소, 그 때에 느끼던 감정들이

사진을 통해서 기억나게 하고 있어서

그 만큼 사진이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거기에다 작품성까지 곁들이게 되면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겠지요.

 

사진 때문에 행복했던 지난 일 년...

하면 할 수록 어렵다고 느껴져서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to do, or not to do'의 갈등을 계속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평온하게, 쳐짐 없이)"

사진행진은 계속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 해의 마지막 포스팅의 마지막 음악 선곡에 한참을 고심했습니다.

언젠가 년 초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 - 1911)의 음악에 다가 가겠다고

<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븐 존슨지음, 임선근옮김)을 구입하고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기에 다시 또 신년의 결심 New Year's Resolutions으로

말러에게 다가가기를 결심하고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1번  3악장을 올립니다.

3악장이 끝나고 나면 다시 전곡이 연주됩니다.

 

Symphony No. 1 in D major 'The Titan'은 20대 (1884 - 1888)에 작곡한

말러의 첫번째 교향곡이지요.

특히 3악장은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평온하게, 쳐짐 없이"라는는 설명이 붙은 악장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에 잠긴 젊은이가 죽음에 대한 상념을 통해 위안을 찾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말러는 14자녀 중에 두번째... 어려서부터 동생들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죽음은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곡은 괴테의 베'르테르' 대신

'말러의 베르테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답니다.

 

말러 생전에는 지휘자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작금에 천재 작곡가로 그의 일생이 재조명되고 그의 작품들이 새롭게 각광을 받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앞을 다투어 말러를 연주하고

많은 애호가들이 있어서 'Mahlerian 말레리안' 이라는 용어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난해한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인지

왠지 자신이 '말레리안' 이라고 하면

클래식음악에 대한 괜한 허세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쨋든 첼로에게 말러는 여전히 다가 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다.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요,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다."


구스타프 말러가 일생 언제, 어디에서나 이방인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표현한 것으로 첼로가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를 올리면서도 인용하였었지요.

 

우리 인생이 어차피 누구나 이방인이고 나그네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저 또한 오스트리아, 체코는 물론 세계의 어디에 가도 이방인이었고

심지어는 모국인 서울에 나갔을 때도 꿈에라도 그리던 고향은 간 곳이 없고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 서울이 몹시도 낯설어서

제 자신이 모국에서 조차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날 철없던 시절에 모국을 떠나 와

40년 넘게 살고 있는 이곳 엘에이에서도

어디까지나 아직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데... ㅋ

 

그러나, 그러나,

먼 여행을 마치고 다시 엘에이 공항에 도착할 때는

언제나 이곳이 고향처럼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

아무래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이제는 고향인가 싶답니다.

 

괜한 넉두리로 한 해를 보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은 최근 아리조나 주의 세도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