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수요일 저녁에 오래 전에 수 년동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교우님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이민사회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다 보면 교우들이 마치 가족과 같이 여겨집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랑 여러가지 매체로 서울 소식을 쉽게 접하지만
60년 대 말이나 70년 대에 American Dream을 꿈 꾸며 유학을 오거나 이민을 와서
고생고생 하면서 한 주간을 지내다가 주말이면 유일하게 한국말을 주고 받으며
한국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터 놓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심이 돈독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주일 날 예배에 참석하다 보면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구역성경공부 등등 한 주일에 두번 이상 만나게 되므로
교우들이 마치 가족과 같이,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되지요.
고인도 역시 60년 대 말에 미국에 와서 공부도 하고 여러가지 사업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같았지만 원치 않은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병상에서도 위문 온 친구나 교우들에게 유머를 잊지 않으셨지요.
특히나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그림도 아주 잘 그리셨습니다.
그 분이 사시는 집에는 온 벽에 제법 유명한 그림들이 미술관처럼 걸려있고
오디오도 아주 잘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제가 친구 도예가한테 도자기를 배울 때 그 분도 함께 배우기도 했는데
흙을 빚어 만든 그릇을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는 유약을 바르는데
유약을 바르기 전에 아주 멋지게 그림을 잘 그렸던 것이 생생합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선교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자기 바자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내놓으셨는지... 상당한 선교비가 거두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점점 깊어지자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다니시느라 함께 다니던 교회를 떠나셨지만
가끔 연락을 하시기도 했는데 그 후 여전히 투병생활이 점점 깊어져
수년 전에는 당뇨로 망가신 신장을 이식하기도 하고
2년 전에는 당뇨때문에 두 다리를 절단하는 기가 막힌 아픔도 견디어 내시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묵묵히 내조하던 의사인 아내가 곁에 있었지요.
그 후로 그저 잘 적응하신다는 소식만 듣고 최근에는 뵙지는 못하다가 뜻 밖에 소식을 접했습니다.
77년의 삶이 길다면 길지만 그래도, 그래도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에
장례식 내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쯤 고생과 수고 다 끝내고 눈물이나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성도님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8월에 오레곤에 출사를 갔을 때 어느 시골 한적한 곳에서 만난 꽃입니다
그곳도 몹시 가물었는지 가는 곳마다 땅은 메마르고 마른 풀들만 널부러져 있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것같은 폐가가 된 듯한 어느 집 앞에
이름모를 분홍빛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사진 몇 장을 담고 돌아서니 이 집에 살던 주인인 듯한 백인 노인이 차를 타고 와서
집 앞 길 가에 있는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곳을 떠난지가 별로 오래지 않은지...
우편물이 아직도 이곳에 배달된 것이지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곳에서 쭈그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조금 민망해서
꽃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하니 시큰둥...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 폐가가 된 집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달래꽃은 아니지만 이름도 모르는 분홍빛꽃이 진달래꽃을 닮은 듯하여
소월의 시가 생각나서 듣고 싶어졌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시인의 역설에 왜 이리 마음이 애잔해지는지...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상실의 계절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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