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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발
Verona Opera Festival
베르디, 푸치니, 롯시니... 등 불멸의 오페라 작곡가들을 낳은 이태리는
오페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만큼 이태리인들의 오페라 사랑은 열정적이고 그들은 오페라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부른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태리에 유학을 간 한인학생들이
피자집의 웨이터나 베니스의 곤돌라는 젓는 뱃사공들 조차 너무나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입니다.
벨라, 베로나!!!
베로나의 고대 원형 경기장 (Arena di Verona)에서는
매년 여름 3개월간 오페라를 공연합니다.
올 해도 6월 23일 <나부코>를 시작으로 <아이다>, <리골레토>, <나비부인>, <토스카>, 등을 공연하네요.
풍월당의 주인이며 의사이며 오페라 애호가이신 박종호님은
진료를 하시다가도 가고 싶으면 훌쩍 이태리로 가서 오페라를 관람하신다는 글을 읽고
2011년 여름 오페라 기행을 계획하고 2주간 이태리를 여행하였을 때
베로나에서 오페라 <나부코>와 <라 보헴>를 관람했었습니다.
밀라노에 도착하여 일박을 하고 다음날 밀라노를 출발하여
가르다 호수와 시르미오네에 있는 마리아 칼라스의 별장을 구경하고
오후에 베로나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날은 오페라 <나부코>를 마지막으로 공연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디제 강이 시내에 흐르는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북 이태리의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는
아레나 뿐만 아니라 다른 볼거리들이 많은 관광도시입니다.
자동차 주차가 어렵다고 해서 숙소도 아레나에서 가까운 곳에 예약을 하였기에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레나가 있는 광장에 나왔습니다.
2천년 전 격투기 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돌들로 지어진 이 아레나는
지금 세계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 경기장들 중
콜로세움, 카푸아 원형극장에 이어 세번째로 큰 규모이며
보존상태로는 세계 제일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로마에 있는 원형 경기장은 중세에 사람들이 경기장의 돌들을 뜯어내
자신들의 주택을 짓는데 사용하기도 해서 원형이 많이 파괴되어 채석장처럼 되었지만
베로나에 있는 이 경기장은 빈민들이 많이 들어와 주거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비록 지저분해지기는 했지만 원형이 많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건축에 필요한 장비들도 없었을 당시
거의가 노예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을 원형 경기장...
수천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거대한 돌들을 바라보니 할 말을 잃었고
둥근 모양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만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고적지로 방치된 이곳을 1910년 경에 이태리의 세계적인 오페라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 1878-1968)이 이곳을 지나다가
우연히 아레나의 공명이 너무나 좋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이루는 사람들은 특이한 안목이 있는 것같습니다.
세라핀의 계획대로 이곳을 오페라 공연장으로 삼은 것은
꼭 1세기 전의 일이었지만 너무나 멋진 발상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격투경기나 마차경기라면 몰라도
오페라의 야외공연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1913년 9월에 이곳 아레나에서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처음으로 공연하였으며 공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 세계 제 1차와 2차 대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여름 열리고 있는
베로나의 오페라축제에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참가하고 있어서
유럽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페라 애호가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포스팅에서 설명했듯이 그리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아직 무명일 때 이곳에서 데뷰하여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고
이곳에서 만난 사업가이며 오페라 애호가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결혼을 한 것도 이곳 베로나에서 멀지 않은 가르다 호수 근처 시르미오네였습니다.
그러므로 시르미오네에는 칼라스가 사용하던 별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레나 앞에 놓여진 석상들은 아마도 오페라 <아이다>의 무대장치에 사용된 것들 같습니다.
단체로 오페라를 관람하러온 일행들...
녹음이 우거진 아레나 앞 광장 앞에 있는 누군가의 동상 아래에서는
시민들이나 피곤해진 관광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줄지어 있는 카페에서는 관광객들이나 오페라를 구경하러 온 애호가들이
먹고 마시며 한 여름을 즐기고 있었고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들의 얼굴도 환한 모습이었고
그들은 취기가 오른 손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레나의 입구에 있는 카르나비니에리(군인경찰)들
저녁이 되자 아레나에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여름이고 야외 공연이기 때문에 평범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는 아주 멋지게 차려입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원형 경기장의 3분의 1정도는 무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객석인데 약 2만명 정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표를 구하기 어려울 줄 알고 미리 예매를 하고 갔는데
세계적인 불황 때문인지 의외로 빈자리가 제법 많았습니다.
밤이 깊어져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9시경에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낮에 뜨거운 햇살에 돌들이 달구어졌기 때문인지
공연장은 자정이 다 되어서 끝날 때까지도
한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둥근 공연장 안에는
바람 한점도 지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야외공연에 적합한 최상의 날씨였습니다.
공연 중에 사진 촬영이 허용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묵과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웠다면, 오페라를 관람할 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비록 몇몇 유명한 아리아들을 알고 내용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그 때 그때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왠지 자격지심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오페라 애호가라 할지라도 외국어로 하는
대사 하나 하나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는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모두들 내용만 알고는 아는 체 하는 것은 아닌지... ㅋㅋ
그러기에 대부분의 오페라는 공연을 할 때 자국어로 자막을 마련하지만
이태리에서 본국의 오페라를 공연하기 때문인지 자막이 없었습니다.
설령 자막이 있어도 자막을 읽으랴, 노래를 들으랴, 연기를 보랴, 눈과 귀가 한참 바빠야 하는데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영어를 그들은 만국통용 언어로 여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알고 싶으면 배우라는 뱃장인지..
아무튼 자막도 없이 공연하는 이태리 오페라 <나부코>를 관람하며
이태리인들이 부럽다 못해 조금 화가나려는 마음을 눌렀습니다.
오페라 <나부코>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70년간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오페라를 만든 것입니다.
B. C. 600년 경부터 유다왕국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당하다가
드디어 시드기아 왕이 통치하던 B. C. 586년에 유다왕국은 완전히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3차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70년간 바벨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의 유프라테스 강 가에서 망국의 슬픔과 비참한 자신들의 처지에 눈물로 탄식하며
고향에 돌아갈 것을 소원하였습니다. 이 때의 사건들은 구약성서 열왕기, 다니엘서, 예레미아서 등에
자세한 내용들이 있고 시편에도 그 당시의 상황을 노래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137:1-4)
시온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말하며 시온 노래는 여호와에게 부르는 찬송을 말하는데
노예로 잡힌 유대인들은 바벨론 사람들을 위해 그 노래를 부르기를 강요받았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단한 노역을 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찬양을 부르는 것을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20대 후반의 베르디가 오페라 <나부코> 작곡을 의뢰 받았을 당시는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을 잃고 슬픔 가운데 있었고
그의 두번째 오페라 <하루 만의 임금님, Un giorno di regno>(1840)이 실패를 하여
음악적으로도 좌절된 상태여서 작곡의뢰를 받고도 작곡을 거부하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칼라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바르톨로메 메릴레의 집요한 설득으로
대본을 받아 읽던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의 "노예들의 합창"의 가사말이 된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차 올라서 대본을 읽고 또 읽고, 밤을 새워 읽었다고 합니다.
대본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감격하여 작곡을 시작하였고 드디어 작곡을 완성하여
1841년 말 경에 메릴레에게 전달하였고 1842년 3월 9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을 하였습니다.
마침 당시 이태리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 독립에 대한 갈망이 팽배해 있었기에
오페라 <나부코>의 공연은 대 성공을 거두어 그후 무려 67회나 연속적으로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슬픔가운데 있었고 작곡가로서도 절망적이었던 베르디는 당시 온 국민의 염원이던
자유를 향한 민족의식이 베르디의 창작의 혼을 깨워서 이토록 걸작 중의 걸작인 오페라 <나부코>가 탄생되고
베르디는 일약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으며
이 후 그의 오페라 작곡은 날개를 단 듯 음악가로서 성공하게 됩니다.
특히 제 3막에서 부르는 "노예들의 합창"은 이태리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일으키고
통일을 향한 힘의 원천이 되어서 그후 이 노래는 이태리의 국가, 독립운동가로 사용될 정도로
이태리 온 국민들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1901년 베르디가 죽었을 때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장례식에서 이 합창곡을 지휘하였다고 하니
이태리 국민들이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얼마나 열광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백명이 동원되는 오페라 <나부코>는 의상이나 무대장치가
무척이나 화려하고 스케일이 방대하여 왠만한 무대에는 올릴 수도 없는데
야외 원형 극장에서 올리기에 너무나 적합하였습니다.
오페라 <나부코>를 관람하는 이태리인들의 태도가 그 다음 날 관람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헴>에 비해서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것은 이 오페라가 그들의 민족의식을 깨운 국민오페라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노예들의 합창"은 언제 어디에서나 공연할 때마다 공연 중에 앙콜을 받아서
다시 한번 노래를 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번에도 열렬한 앙콜 요청으로
"노예들의 합창"은 다시 한번 불려질 때는 거의 모든 관객들도 함깨 따라 불렀습니다.
<나부코>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태리 식의 발음이라고 합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대제사장 자카리아와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간 나부코,
그의 두 딸 중 왕위를 노리는, 노예에게서 난 큰딸 아비가일레,
유대인 청년 이스마엘레를 사랑하여 유대교로 개종까지 한 둘째딸 페네나,
페네나에게 유대의 율법을 가르치고, 포로로 잡혀와서 노역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는 유대인들에게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대제사장 자카리아,
바벨론 백성들은 물론 유대인들에게도 자신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라고 강요한 나부코는
끝내 저주를 받아 벼락을 맞고 정신이상이 되어버리고, 그 와중에 왕위를 찬탈한 아비가일레는
유대인들과 페네나를 죽이려 하는데 정신을 차린 나부코가 부하를 데리고 페네나를 구하며
바벨론의 신상을 부수고 유대인들을 석방하고 자신도 유대교로 개종을 하며
백성들에게도 유대인의 신을 찬양하게 합니다.
한편 독약을 마시고 나타난 아비가일레는 페네나와 이스마엘레에게 용서를 구하고 숨을 거두고
대제사장 자카리아는 여호와를 섬기는 나부코왕을 "왕 중의 왕"이라고 칭송을 하며 막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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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올 여름 이태리 여행 계획이 있으시면
꼭 한번 관람하는 것도 일생을 두고 멋진 추억이 될 것입니다.
미리 예매하지 않아도 당일에도 표는 구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 유투브에 2007년에 베로나에서 공연된 <나부코>가 있네요.
이태리어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베로나 시내를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올립니다.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언덕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의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하여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 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시리라"
로마시대의 원형 경기장, 베로나의 아레나에 울려퍼지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노예들이 합창"입니다.
동영상에서도 이 합창은 앙콜을 받아 또 한번 불려지네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비록 구약시대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이 그 당시의 노예들이나 다름없이 고단하고 슬프기에
오늘날도 이 합창곡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같습니다.
비록 자의로 고국을 떠나왔지만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수 많은 세월 때문인지
이 노래를 듣는 트리오의 마음도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2백명이 넘는 합창단원들이 부르던 "노예들의 합창"
벅찬 감격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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