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은 드뷔시 Claude Debussy(1862 - 1918)의 두 곡의 "Arabesque" 중에서
No. 1 in E major, L.66, Andantino con moto입니다.
Claude Debussy in 1908 (image from Wikipedia)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로 알리어진 드뷔시 (Achille-Claude Debussy, 1862-1918),
며칠 전 8월 22일이 그의 151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날(1888-89년)에 작곡한 두 곡의 "아라베스크" 중에서 1번을 들으면
꿈 속을 헤메이는 것같이 환상적이고 감미롭습니다.
마치 음악 속에 그림이 있어서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같고
드가나 모네의 그림을 보는 것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 당시 드뷔시는 파리의 살롱에서 상징파 시인들과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 것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
그의 음악을 인상주의 음악 Impressionist music....
아라베스크라는 말은 아라비아풍이라는 뜻으로
이슬람교 사원의 벽면장식이나 공예품의 장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무늬인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많이 본 문양입니다.
5살이 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큰 딸이 제법 재질을 보였는데
커 가면서 딸의 손가락은 여전히 희고 길고 가느다랗게 연약하였습니다.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 손가락으로는 장엄하고 웅장한 곡들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런 곡을 잘 치지 못하였습니다.
대신에 고등학교 다닐 즈음에 딸은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 이나 아라베스크 Arabesque 같은 곡을
즐겨 연주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아름다운 꿈 길을 걷는 듯,
건반 위에 흔들리던 가녀린 딸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섯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큰 딸은
감성도 있고 재질도 있어서 제법 이 엄마를 흐믓하게 하고
혹시나 절대음감을 갖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전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극성(?)스러운 일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피아노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여러면에서 교육방법이 한국하고는 달라서
한국식(?) 극성을 부리는 일이 많지 않는 것같았습니다.
그럭저럭 재질따라 피아노를 자신도 즐기면서 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레슨을 하고 온 딸이
선생님이 고등학교 졸업 리사이틀을 하자고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음대에 진학하지도 않는데 왠 리사이틀? 하면서도 이벤트를 좋아하는 이 엄마가
흔쾌이 승락을 하고 그 때부터 리사이틀 준비에 들어갔지요.
피아노야 딸이 연습하면 되지만 딸이 입을 드레스, 장소물색, 손님초대, 음식준비, 등등
할 일이 많아진 엄마는 신이나서 머리가 빙빙 돌아갔습니다. ㅎㅎ
그런데 그 모든 일들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딸은 학교에서 하는 졸업파티인 프롬파티에 온통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대학 졸업식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을 하며
할리웃 배우들이 입는 것같은 드레스에 마치 신부처럼 화장을 하고
남자 파트너에게 줄 코사지도 마련하고...
턱시도을 입은 남자 파트너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서 학교에 데리고 가면
학교에서는 몇명이 함께 리무진으로 파티장소로 가서 밤새 춤추며 즐기는
그야말로 할리웃 배우들이나 하는 파티를 일생 처음으로 해 보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남자 친구도 변변히 없던 딸이 멋진 남학생으로 부터
프롬파티의 파트너 제의를 받았으니 딸은 프롬파티에 온통 정신을 팔아버리고
정해진 연주회는 프롬파티 바로 다음 날... ㅋㅋㅋ
그런데 딸의 프롬파티보다는 졸업연주회에 더 열심을 쏟았던 이 엄마는
꿈도 야무지게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No. 1 in D minor 1악장을 레파토리에 넣어버렸습니다.
피아노 곡으로만 한 시간을 채우는 것이 어째 좀 지루할 것같다는 생각에
바이올린을 배우던 중학교 3학년 둘째, 첼로를 배우던 초등학교 6학년 세째로 구성된 트리오...
그러니 그런 어린 나이로 구성된 트리오가 어떻게 제대로 연주를 할까마는
그 때부터 엄마의 극성이 시작되었습니다.
둘째의 바이올린 레슨을 할 때 세 명을 다 데리고 가서 트리오 레슨을 하고
막내 첼로 레슨을 할 때 또 세 명을 다 데리고 가서 트리오 레슨,
물론 피아노 레슨을 할 때도 세 명을 다 데리고 가서 트리오 레슨...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지도 않았던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극성?이었습니다.
저의 아이디가 왜 트리오인지 이제는 아시겠는지요? ㅎㅎ
물론 그 당시 딸 셋을 모두 음악공부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드디어 프롬파티 날...
딸을 데리러 온 남자친구에게 내일 리사이틀이 있으니 제발 빨리 들어오라고
신신 당부했지만 젊은 애들이 그 말을 들을리가 없지요.
당연히 딸은 아침 새벽에야 들어왔고 잠도 몇 시간 못자고 리사이틀을 했는데
그래도 별 큰 실수는 없이 무사히 끝냈지만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는... ㅋㅋ
바이올린을 하는 둘째의 실력이 그다지 훌륭하지 못해서
바이올린 멜로디가 여러번 out of tune....
그 때 트리오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면 막내가 둘째를 째려보는 모습이...ㅋㅋ
둘째 왈...엄마가 자기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것은 자기 일생의 가장 큰 실수라고 하면서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배구선수를 한답시고 바이올린을 팽개쳐 버렸답니다.
그 때의 피아니스트는 심리학전공으로 대학에tj,
그 때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정치학전공으로 로펌에,
그 때의 첼리스트는 본인의 선택으로 음대를 진학... 첼리스트...
모두들 결혼하여 애기엄마들이 되어
벌써부터 피아노, 발레, 수영, 태권도 등등을 가르친다고
페이스북에 애들자랑을 쉴 새없이 올리는 것을 보면서
나의 젊은 날을 돌아봅니다.
세월이 언제 그렇게 빨리 흘렀는지...
나타리 우드와 웨렌 비티가 열연한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윌리암 워즈워스의 詩 한 구절...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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