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의 5번째, 4녀 중의 세째딸인 나를
친정어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예뻐하셨습니다.
7남매 누구도 다 예뻐하셨지만 세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고 하시면서
예뻐하신 것을 생각하면 친정어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사랑이 많으셨던 것같습니다.
딸을 셋이나 낳고 키우면서 그제서야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세 딸 모두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세째 딸인 막내에 대해서는
또 다른 각별한 애정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려서 나는 꽤나 눈물이 많았는지, 아니 자주 울었다기 보다는
한번 울기시작하면 끝이 나지 않도록 울음 끝이 길었다고 합니다.
울고 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간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것이 기억나고
그럴 때면 의례이 집에서 심부름을 시키던
다리를 절룩거리던 머슴(이런 용어가 이제는 없어졌지요?)을 시켜서
도시락을 학교에 보내셨는데 교실 창 밖으로 그 머슴이 보이면
챙피하여 어디엔가 숨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어느 날 친정어머니는
"허껑(저의 애칭), 보따리 어디다 두었니?" 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보따리? 무슨 보따리?"
"울음보따리."
???
눈을 크게 뜨고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어느 날엔가 생각해 보니 내가 통 울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생각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이라는 것을 갔는데
아마도 수학여행 다녀 오면서 한강에 울음보따리를 던지고 왔다고 여기시고
그런 질문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꽤나 유머감각이 있으셨던 것같아요.
그 때부터 '울음보따리"를 한강에 던져버렸다는 것은
나를 따라다니던 내 어린 시절의 일화가 되었지요.
그 어려운 시대에 7남매를 키우시면서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우셨을텐데도
막내 동생이 어려서 심술을 부리면
30세가 되면 그러지 않겠지 라고 하시던 어머니셨습니다.
참으로 인내심 많고 지혜로우셨던 어머니셨는데
외국에 산다는 핑계로 병석에 오래동안 누워계실 때도
자주 찾아 뵙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만 겨우 참석했던
불효녀이기에 세 딸들이 나에게 잘 해 줄 때는
친정어머니 생각에 더욱 가슴이 메입니다.
구굴 검색한 한강철교..지금의 모습인가요?
그런데 외국에서 살다보니
외롭고 슬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진대
울다가 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울음보따리를 정말로 한강에 던져 버려서인지
그렇게 눈물이 많았다는 내가 우는 것을, 더구나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을 참으로 싫어합니다.
우리가 우는 것은 기뻐서도 울지만 대부분 슬플 때 울지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야 감사한 일이지만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고 여기기에
슬프다고, 힘들다고 질질 잘 우는 여자를 보면
마치 깨끗하지 않은 속치마를 보이게 입고 있는
칠칠맞는 여자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물이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도 있지만...
기쁨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겠지만
슬픔은 나 자신의 몫입니다.
진심으로 마음이 하나 되어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있을 때는 몰라도
눈물은 혼자서 흘려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진정한 위로는 사람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에...
친정어머니 말씀대로 한강에서
울음보따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ㅋㅋㅋ
참으로 까칠한 트리오입니다.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 후
맑고 깨끗한 고음처리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Juan Diego Flores)가 노래하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입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자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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