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루체른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 남짓 가면 Alt dorf라는 작은 마을에
14세기 초에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인 윌리암 텔의 동상이 있다고 하여
예정에도 없이 호텔에서 나와서 아름다운 루체른 호수를 지나 루체른의 중앙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표를 구입하는 창구가 없고 기계로만 살 수 있게 되어서 이번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사람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 크레딧 카드로 기차표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런 도움이 없이는 기차도 탈 수 없을 것같았습니다.
오랫만에 타 보는 기차여행...
수학여행 가는 학생과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태리는 조상들의 업적(문화) 덕분에 먹고 살고
스위스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기차의 창 밖으로 전개되는 스위스의 호수와 짙푸른 산, 그림같은 집들...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50분쯤 지나서 기차가 도착한 곳은 Fluelen Dorf, (Fluelen의 'u'자에 우무라우트(")가 있어야함),
앞에는 호수, 뒤에는 푸르고 높은 산, 뽀쪽한 지붕의 교회가 있는 그림같은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저 산이 하얗게 눈에 덮힐 것이라고 생각하니 겨울에 스위스에 다시 오고 싶어졌습니다.
왠 여행 욕심이 이렇게 많은지...
기차에서 내려 사람도 거의 없는 큰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들어가니
알트 도르프(Alt dorf)라는 작은 마을에 다달았습니다.
버스가 도착한 네거리에서 내리니 윌리암 텔의 동상이 바로 길 건너에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 높은 城 안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는 줄로 알았는데
작은 마을의 네거리에 달랑 동상 하나만...
이게 다야? 이것 보러 비싼 돈 주고 기차 타고 여기까지 온거야?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지 안내 책자가 잘못 안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만에 스위스에서 기차를 탄 것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잊지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마을은 마침 일요일이라 너무 조용했습니다.
사실은 "윌리암 텔"하면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유명한 이태리의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Giachino Antonia Rossini: 1792 - 1868)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윌리암 텔>이 생각나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 놓고 어버지가 쏘아 사과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들도
그 용기와 신뢰의 대명사인 것으로 여겨지는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 윌리암 텔,
독일어 발음으로는 빌헬름 텔,
이태리어는 굴리엘모 텔(Guglielmo Tell)이라고 한답니다.
윌리암 텔은 14세기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지배하던 시기 활을 잘 쏘았던 사람으로
어느 날 광장 앞을 지나가는데 나무 막대기에 모자를 씌워 놓고 총독 헤르만 게스러의 모자이니
광장을 지날 때마다 경례를 하라는 경고가 있었는데도
윌리암 텔은 경례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고 해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일제시대에 있었던 일이나 다름 없는 사건인가 봅니다.
마을 사람들이 선처를 부탁하자 총독은 윌리엄 텔이 활을 잘 쏘는 것을 알고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을 쏘아 맞히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무리 활을 잘 쏜다 할지라도 아들의 머리 위의 사과를 맞추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망설이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버지를 믿는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서 있자
아버지는 대담하게 활을 쏘아 사과를 맞춥니다.
아버지의 활 솜씨도 대단하지만 아버지를 신뢰한 아들도 참 훌륭합니다.
그러나 윌리암 텔은 그 당시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총독은 그가 만일 실패하면 총독인 자신을 쏘아 죽이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과를 맞추었지만 윌리암 텔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는 폭풍이 내리는 틈을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하였고
나중에 바위산 위에서 총독 게슬러를 쏘아 죽였다는 스위스의 독립투사인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picture from internet)
독일의 문호 볼프강 폰 괴테는 1775-1797년 사이에 스위를 여행하면서
윌리암 텔의 전설을 듣고 희곡을 쓸 계획이었지만 이 아이디어를 친구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hiller, "환희의 송가"를 쓴 시인)에게 주어
실러가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희곡 <빌헬름 텔>을 쓰고 이 희곡을 기초로
로시니가 오페라 <윌리암 텔>을 작곡하여 1829년 8월 3일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오페라는 거의 6시간이 걸리므로 오늘날 오페라로는 거의 공연이 되지 않지만
서곡은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Pesaro) 시내의 어느 카페에
여름에 열렸던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발의 홍보용 사진과 악보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로시니는 1855년에 파리에 와서 1868년까지 여생을 파리에서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였는데
뚱뚱하여 좀 게으르지만 먹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가 파리에서 매 토요일마다
자기 집에서 "음악의 저녁" 모임을 가졌다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음악가나 가수, 사회 각층의 인사들은 그의 이 모임에
초대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고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리스트,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구노, 생상스 등 저명한 음악가들이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초연 후 거의 40년이 지난 1868년 로시니가 생을 마감하던 해, 2월의 어느 날,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로시니의 오페라 <윌리암 텔>의
500번째 공연이 있었는데 오페라 공연이 끝나자 관현악단과 가수들이 그의 아파트에 몰려와
창 밑에서 관현악단들은 서곡을 연주하고 가수들은 제 1막의 노래들을 부르자
2층 창가에 로시니가 나타나 환호하는 군중들을 더욱 열광케 했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상상해 보니 얼마나 멋있었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로시니는 고국인 이태리 뿐만아이라 오페라를 좋아하는 파리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가
그 해 11월에 파리 인근의 별장에서 생을 마감하고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에 묻혔는데
고국인 이탈리아의 피렌체 市는 그의 유해를 피렌체에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 옮기기를 희망해서
1887년 이장되어 현재 산타 크로체 성당에
갈릴레오,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등 이태리의 저명인사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로시니의 고향인 페사로(Pesaro)와 로시니의 무덤이 있는
피렌체(Firenze)의 산타 크로체 성당(Chiesa di Santa Croce)을 가 보았습니다.
눈비가 내리는 겨울, 파리에 갔을 때 찍은
페르 라쉐즈 묘지에 있는 로시니의 빈 무덤입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더욱 인기 있었던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무모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몇몇 음악인들의 열정으로 오케스트라를 힘들게 운영하는 모습과
지휘자의 독선을 좀 지나치게 묘사했던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클래식음악을
대중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이 평가될 드라마였지요.
이 드라마에서 김명민이 지휘하는 시립 오페라단이 로시니의 오페라 <윌리암 텔>의 서곡을 연주합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지휘자 김명민이 한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페라 <윌리암 텔>의 서곡은 첼로의 아름다운 독주로 시작되어
스위스의 새벽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폭풍우가 몰아치다가 다시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이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스위스에 평화를 가져온 군대 행진곡으로 이어지면서
민중들의 환호하는 정경들을 묘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2011/09/3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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