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세토(Busseto)로 가는 길
라하티코 침묵의 극장에서 떠나서
푸치니(Giacomo Puccini)의 生家가 있는 루카(Lucca)에 잠시 들렸다가
이미 날은 저물어 가지만 그곳에서 머물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부세토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부세토에 있는 호텔을 찾아 전화를 하고
주소를 받아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떠났는데
왼쪽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러 개의 굴을 지나면서
마침 추석이 가까운지라 동편에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에는 석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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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세토로 가는 길에 만난 황혼입니다.
마치 불이 난 것같은,
이토록 타는 듯한 황혼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같습니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황혼을 기다렸지만
아름다운 황혼을 볼 수 없었는데
부세토에 가는 길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가슴이 메이도록 아름다운 황혼을 만난 것입니다.
곧 다가올 밤이 두려워서인지 마지막 열정을 다 한 모습이었습니다.
내 인생에도 곧 다가 올 황혼...
나의 황혼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염려했던 것은 불필요한 기우였는지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너무나 즐거웠고 "추억만들기"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산 세월이 많아서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면
여행 중에 할 말도 별로 없을 것같고 재미도 없을 것같아서
파리(Paris)에 갈 때처럼 누군가 함께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둘이만 떠난 여행인데도 우리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이태리의 어느 시골길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메여도 젊을 때 같으면 싸울텐데 싸우지도 않고...
부부가 함께 젊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결코 서글픈 일만은 아닌 것같았습니다.
부세토는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의 고향입니다.
마침 오늘이 베르디의 생일이네요.
(1813. 10. 10. - 1901. 1. 27)
밀라노에 있는 베르디(Giuseppe Verdi)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베르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부세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부세토에는 베르디의 동상이 있는 광장과 베르디 극장과
베르디 박물관이 있으며 베르디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베르디를 후원했고 나중에는 베르디의 장인이 되었던
안토니오 바레치(Antonio Barezzi)가 살던 집도 있습니다.
부세토에서 가까운 농촌마을인 론콜레(Ron Cole)에는 베르디의 生家가 있고
첫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한 두번째 아내인 소프라노 주세피나와
여생을 살았던 산타 아가타 농장도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세토는 꼭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차에서 전화로 예약한 호텔...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겨우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다 되었습니다.
호텔 가격도 저렴해서 전혀 기대도 하지 않고 갔는데
들어서니 왠걸...
이런 시골에 너무나 품위있고 5스타 호텔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같은 멋있는 호텔...
이태리의 유명한 테너 카를로 베르곤치의 사진과
그가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공연한 포스터 사진이 있고
어느 오페라 극장에 들어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호텔 내부는 베르디의 사진과 동상, 등 온통 베르디...
부세토가 베르디의 고향임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아, 이곳이 어느 책에서 본 베르곤치가 태어난 집이었고
지금은 베르곤치가 주인인 호텔이구나...
카를로 베르곤치는 이태리의 유명한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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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호텔 이름도 <'I Due Foscari>,
베르디의 오페라 이름인 <이 두에 포스카리>였으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Verdi나 호텔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올리겠습니다.)
가방만 방에 던져 놓고 늦은 시간인데 저녁을 먹을 수 있겠는가 물었더니
아직 부엌을 닫지 않았다고 하며 식당이 아닌 호텔 뜰로 안내를 합니다.
밖으로 나오니 늦은 여름밤의 맑은 공기가 온 몸에 스며들고
촛불이 켜져 있는 한쪽 테이블에만
식사를 하는 서너 사람이 여름밤의 디너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니 일인분만 시켜서 둘이 먹겠다고 하니, 오케...
우리는 식사 양이 많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도
일인분만을 시켜도 친절하게 둘로 나눠 주었습니다.
Salad, Soup, 생선요리가 빵과 포도주와 함께 나오는 가벼운 d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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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을 둘로 나눠줘서 우리에게는 아주 적당한 양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는 길에서 만난 불타는 황혼만으로도
충분히 오늘 하루 만족스러웠는데
기대 이상으로 멋지고 우아한 시골의 호텔에서의
늦은 밤의 멋진 디너였습니다.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 만큼인지도 말하기 어려운 이태리의 조용한 시골,
호텔 정원에서의 이 밤의 디너가,
테이블 저편에서 소근거리는 이태리말과 와인 한잔이
뜬금없이 영화 <Godfather>에서 나오는 어느 장면을 연상케하여
혼자 속으로 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Speak softly love"
Al Martino가 부릅니다.
2011/10/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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