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빈집"... 그리고 쇼팽의 변주곡

후조 2015. 8. 4. 06:26

 

 

  

 

빈 집

 

- 기형도 (1962-1989)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29세의 짧은 생을 살고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홀연이 떠나버린 기형도시인의 마지막 시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런 시를 썼을까요?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렇게 한 편의 詩였나 봅니다.

 

 

 

 

 

 

 

지난 주말 Crystal Cove State Park라는 곳에 나가 보았습니다.

찬란한 햇빛이 이글거리는 바닷가에는 삶이 풍성하고 화려하였습니다.

 

낮시간이라 사진찍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ND filter를 끼고 Monochrome으로 세팅하고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나름 분위기 있는 사진이 된 것같습니다.

 

여름은 이렇게 풍성한데...

조블에는 빈 집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네요.

 

 


 

 

 

흐르고 있는 음악은 쇼팽이 1827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작곡한 ,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바람둥이 돈 조반니 Don Giovanni가

마세토의 약혼자인 시골 처녀 체르리나 Zerlina와 듀엣으로 부르는 

'Là ci darem la mano 그대 손을 내게 주오'라는 노래를 주제로한

변주곡 Variations on "Là ci darem la mano" for piano and orchestra, Op. 2 입니다.


 

쇼팽은 이 곡을 비엔나의 출판사에 보냈고 출판사에서는

이 곡을 대중 앞에서 연주한다는 조건으로 출판을 약속했기 때문에

1829년에 바르샤바 컨서바토리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비엔나에 가서

1829년 8월 11일에 비엔나의 왕립 오페라 극장인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함으로 이 곡을 초연했는데

그의 연주는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워 청중들은 마치 감전된 듯,

때로는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시작되고 피아노의 트릴과 함께 나오는 멜로디...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서늘해지네요.

17세의 나이에 이런 곡을 작곡한 쇼팽은 분명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아, 쇼팽의 연주는 어떠했을까요? 

만일 지금 쇼팽의 연주가 실황으로 음반에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827년 4월에 쇼팽은 사랑하던 여동생 에밀리아를 페결핵으로 잃은 슬픔이 있었고

한편으로 콘서바토리의 동급생이었던 소프라노 콘스탄챠에 대해 매혹되었었지요.

쇼팽이 바르샤바를 영원히 떠나 빠리에 가기 전 일입니다.

 

쇼팽은 이 곡을 그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친구,

티투스 보이쳬호프스키에서 헌정하였습니다.

 

이 곡을 들은 로베르토 슈만은 "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천재입니다."

"Hats off, Gentlemen! A genius!" 라고 말하면서

쇼팽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쇼팽의 변주곡이 끝나고 모짜르트의 "그대 손을 내게 주오"라는 노래가 이어집니다.

검색하다가 보니 마침 우리나라 소프라노 홍혜경과 테너 Bryn Terfel이

2000년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한 것이 있어서 반갑네요.

 

 


   

   2015/08/04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