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가막힌 경험이었어요.
할리웃 볼에 거의 매년 여름 년중행사처럼 다니고 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지난 18일 저녁 산호세에 사는 후배가 엘에이에 볼 일도 볼겸 첼로를 만나러
주말을 이용하여 짧은 일정으로 이곳에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날 저녁 8시에 할리웃 볼 오프닝 컨서트가 있더군요.
후배는 컨서트 가는 것을 좋아하는 Concert Goer...
온라인에서 티켓을 구입하려다가 혹시 계획이 변경될지도 몰라서 또한
18,000 객석이 완전 매진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그곳에 가서 사기로 했지요.
할리웃 볼을 가끔 다니고 있지만 지금까지 첼로가 만석을 경험한 경우는
아주 아주 오래 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와서 공연할 때 뿐...
저녁 6시 공항에서 후배를 픽업하여 할리웃 볼까지는 불과 30분거리인데
주말인데도 트래픽이 심해서 거의 한시간이 걸려서 도착해 보니 엄청난 인파가 있더군요.
장사진을 이룬 입구에서는 Steely Dan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팔기도 하고
티켓 매매하는 많은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아연했지요.
Steely Dan이 누구인데 티셔츠를 팔지?
아니, 오늘 무슨 컨서트인데 이렇게도 사람이 많이 왔을까???
그 때서야 프로그램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지요.
긴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데 제 앞에 서너 사람이 있을 때 쯤
관계자가 나와서 160불짜리 box seat 티켓만 남았다고... 말하니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160불짜리 표를 사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온라인에서 48불 정도면 괜찮은 자리를 살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은
주차가 더블파킹되어 있어서 빠져 나갈 수가 없거든요.
야외 음악당에서 한 장에 160불? 두 장이면 320불? 기가 막혀서...
후배도 그렇게 비싼 표를 사느니 그냥 근처에서 저녁이나 먹으며 기다리자고...
그렇게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또 이번에는 우리 뒤에 서 있던 어느 부부가 표를 반환하려고 한다고..
어느 새 우리 차례가 되었고그 관계자는 우리한테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표를 파는 창구로 들어가서 그 부부의 표를 먼저 환불해 주더니
그 표가 한 장에 70불짜리이니 우리에게 표를 사겠느냐고...
안 살 수도 없는 입장이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표 2장을 그렇게 구매하고 나니
벌써 8시... 시작할 시간이 되어서 배는 고프지만 일단 자리부터 찾아갔지요.
이미 객석은 사람들로 엄청 붐비고 있었고 자리를 확인하고
먹을 것을 사려고 나오니 또 긴 줄...
포스팅을 할 생각을 했더라면 아이폰으로라도 사진을 좀 많이 찍어둘 껄...!!
그날 저녁에 공연한 Steely Dan 록커 그룹입니다.
Walter Becker and Donald Fagen onstage at the Hollywood Bowl
on June 18, 2016. Mathew Imaging (image from internet)
그 날 공연은 스틸리 댄 Steely Dan이라는 1972년 결성된 록그룹의 공연...
아니, 이 그룹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그룹이었나?
74년에 이곳에 와서 이제껏 살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그룹이었습니다.
노인네들의 공연을 보러 18,000 객석이 이렇게 꽉 찬거야?
비틀즈도 아닌데... 기가 막히네...
위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그들의 젊은 날의 모습이네요.
물론 노래도 한 곡도 알지 못하는 곡...
그나마 멜로디나 음악이 좋았으면 괜찮았을터인데
노래가 아니라 거의 소음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고 무대는 까마득한데
전광판으로 보이는 얼굴들은 인생 황혼을 맞이한 모습들이라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이게 뭐야, 비싼 돈 내고...
가도 오도 못하고 꼼짝없이 두시간을 견뎌야 하는데...ㅋㅋ
에고, 차라리 우리나라 K-Pop 스타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첼로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일어서서 춤도 추는 등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고
마지막에 불꽃을 터뜨리자 객석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가 되더군요.
아무리 음악이라면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팝송도, 유행가도, 판소리도,
아니 모르는 곡이라도 멜로디가 듣기 좋으면 다 좋아하는 첼로이지만
그날의 음악은 정말 꽝~!이었어요. 적어도 첼로에게는~~요. ㅋㅋ
그래도 한가지 너무 좋았던 것은 바람이었어요.
낮에 40도 가까운 더위였는데 밤이 되면서 더위가 가시고
비단결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바람이 연주장의 열기를 달래주고 있더군요.
마치 비단으로 온 몸을 감싸주는 것같은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좋아서 그저 이렇게 야외에 앉아있는 것만도 너무 좋네!
이곳은 사막과 같아서 아주 아주 더운 열풍이 불거나
아니면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 때도 많거든.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바람은 참 오랫만이네, 정말 오랫만이야....
후배도 동감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부는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겨버리니
소음같은 연주도 견딜만 하더군요.
아니 견딘 것이 아니라 아예 들리지도 않았지요.
아는 만큼 듣고, 아는 만큼 본다는... 진리가 이곳에서도 적용이 되더군요. ㅎ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서둘러 주차장에 와서 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는데...
이건 또 뭐지? 왜 이렇게 차가 빠지지 않는거야?
아니 공연장에서 아직도 춤들 추느라 나오지를 않고 있는거야?
공연은 이미 끝났는데?
나란히 나란히 주차된 차들... 사진을 좀 찍어둘 껄...
앞 차가 나가지 않으면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거든요.
다른 때는 그다지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차가 슬슬 빠지거든요.
그런데 그 날은 차 안에서 한시간 반을 기다렸어요. ㅋㅋ 믿기지 않지요?
오랫만에 만난 후배...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종달새처럼 쉴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후배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가 막혀서...
11시 반 경에야 조금씩 차가 빠지기 시작하여 집에 돌아오니 12시 반....
첼로가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한 하루였어요.
차이코프스키의 The Seasons 중에서 '6월'을 Sviatoslav Richter가 연주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875년 말에 음악잡지 Nouvellist의 발행인
Nikolay M. Bernard 의 부탁으로 달마다 그 달에 어울리는 시를 선택하여
12곡의 피아노모음곡 <The Seasons>를 작곡하였습니다.
이 '6월'은 Aleksey Pleshcheyev의 "뱃노래"라는 시를 주제로 작곡한 것으로
12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사랑받는 곡입니다.
만석의 할리웃 볼,
록뮤직의 소음 속에서 엉뚱하게도 이 음악이 생각났지요.
6월이 잖아요?
6월이 벌써 다 지나고 있잖아요?
6월이면 언제나 듣고 싶어하는,
아니 6월이 아니라도 언제 들어도 좋은 곡...
이 달이 가기 전에 올리고 싶었던 곡인데
아직 올리지도 못하다가
이제서야 이렇게 바보같은 이야기로 올리고 있네요.
6월, 그대 생각
- 김용택 -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숙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 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
6월에 이 시도 올리고 싶었는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섬진강 시인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시, <6월, 그대 생각>입니다.
어제는 고국의 산야를 렌즈에 담고 싶다고 서울에 나간 사진멤버 한 분이
멤버들에게 카톡으로 위의 사진을 보내왔네요.
섬진강에서 찍었다고...
황금빛 황혼에 섬진강 줄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민자들...
비록 외국에 살아도 마음은 항상 고국을 향해 있거든요.
바보같은 첼로가 이렇게 6월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