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너때문이야

가을을 찾아서... 비숍 Bishop을 다녀와서

후조 2013. 10. 26. 02:59

 

 

 

 

내 고향 정읍은 '정읍사'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단풍이 유명하지요.


고향이지만 한국에 살 때도 내장산을 자주 가지도 않았습니다.


외히려 가을이면 타지에서 오시는 분들로 가을의 내장산은 인파로 넘치지요.

 

어느 해인가 10월에 조카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나갔을 때 내장산을 가 보고는 너무나 실망하여


그 이후로는 내장산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단풍이 한참 절정이었는데 단풍보다 더 울긋불긋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로 인하여


단풍이 슬퍼하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운 색을 즐기려면 무채색의 옷을 입고 가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산 뿐만 아니라 산사(내장사)도 있는 곳인데 궂이 그렇게 요란한 채색옷을 입고 가야 하는지...


 

누군가 말했듯이 가을이면 나뭇잎들은 여름의 풍성함을 잊지 못하고,


마치 떠나야 할 여인이 떠날 것이 안타까워 몸부림을 하는 듯합니다.


금새 바람이라도 불면, 밤새 가을비라도 내리면,


힘없이 땅 위에 떨어져버릴텐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보다는 차라리 겨울이 좋습니다.


더 이상 뽑낼 것도, 감출 것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자신을 그렇게 부끄럽게 보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하얀 옷을 곱게 차려 입을 나목들이 있는 겨울이 좋습니다.


 

할머니가 무청으로 담그신 동치미...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리고


장독대에서 얼음이 사각거리는 동치미를 떠다가 쫑쫑 썬 무청을 따끈한 밥에 올려


양념장으로 비벼먹던 그 겨울은 이제는 고향에 가도 없겠지만


눈이 평평 내리는 겨울날,


이미 나목들은 하얀 옷으로 단장을 한 해질 무렵


장작 타는 벽난로 앞에서 커피 한잔과 책 한권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같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가을도, 겨울도 모두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이


언제나 트리오를 슬프게 합니다.

 


 

 


 

 


 



 


집에서 300마일 거리에 있는 비숍이라는 곳에 가면


가을이면 자작나무..아스펜이라고 하는데...아스펜이 노랗게 물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지난 주말 사진반에서 함께 당일로 다녀왔는데 이미 많이 져버리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오히려 노란 단풍이 져버린 이 길이 좋았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언제 읽어도 가슴 저미는 만해 한용운님의 시 한 두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


 

제가 같은 글을 올리는 다움의 음악정원 카페에 이 글을 읽고 어느 분이


한 편의 수필같은 댓글을 주셨네요.


이 방에서도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어느 해 여름, 내장산에서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연주자들은 짙푸른 숲속에 몸을 감추고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이제 막 동이 터오는 내장산의 단잠을 깨웠습니다.


그 연주에 나무들이 지지개를 폈고 꽃들은 이슬방울을 머금었으며


내장사의 행자들도 하품을 하며 빗자루 들고 경내의 마당으로 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누운채 형이로움으로 그 화음들의 조화에 취했습니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여름 새벽의 싸~한 공기 속에서..


낙원이 있다면, 아마 하루종일 이런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꺼야...


해가 떠오르자 서둘러 막을 내려버린,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공연이었지만,


정말이지 낙원의 소리를 경험했던 환상적인 내장산의 여름 번식기 새소리였습니다.


 

저도 내장사뿐만 아니라 가을철 단풍구경은 포기한지 오래됐습니다.


차라리 거리의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 연출하는


가을의 호젓한 분위기에 반항하는 듯한 그 화려한 마지막 골든 쇼를 반깁니다.


우리는 그동안 '눈의 호사'에만 빠져 '귀의 호사'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고향 정읍을 오래 전에 떠나신듯한 첼로님도 혹시 들으셨을까요?


다시 고향에 들르시게 되면, 꼭 들어보시라 권해드립니다.


고향 내장산의 수천 수만마리 새들이 자신의 연인을 찾아 부르는 연가들,


새이름은 그냥 몰라도 되겠습니다.


그냥 바이얼린, 첼로, 피콜로, 플룻, 트럼펫, 트롬본, 하아프 등등,


내장산의 비루투오소 여름새들이 전하는 감동, 마에스트로 N의 지휘입니다.


 

(음악정원 카페의 Im Abendrot라는 분의 댓글이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내장산의 환상적인 자연의 소리..


저도 가을이 아닌 겨울이나 봄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래 전 영화 "Legend of the Fall" 주제음악입니다.

 

 

 

****

 

 


느티나무

그 유명한 비솝에 다녀오셨군요.

저도 트리오님이 좋다고 한,
저 오솔길이 참 좋네요.
사진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보는 사람 마음까지 흐뭇해지구요.

음...주제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ㅎ
 2013/10/27 15:46:23  


바람돌

한국은 지금
축제 중입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말이면 앞산 뒷산, 전국 방방곡곡이 유원지가 되지요.

트리오님이 찾은 비숍의 한적함이
가을의 전설이
다가오는 겨울의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하군요.
 2013/10/27 23:06:50  


trio

느티나무님, 여행 많이 다니시는 것 항상 부럽습니다.
사진이요? 학교 샘한테 한 점도 칭찬받지 못했지만 올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느티나무님! 건강하시지요? 2013/10/27 23:51:46  


trio

바람돌님, 한국은 아무래도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서이겠지요.
마지막에 첨가한 음악정원 카페의 어느분의 댓글처럼 내장산의 자연의 소리...
눈 보다는 귀를 기울여야할 것같습니다.
내 고향 내장산... 겨울이나 봄에 가 보고 싶어집니다. 2013/10/27 23:53:48  


교포아줌마

지금쯤 비숖의 자작나무 숲 단풍이 이러하겠지...

떠 올리고 있었는데요.

노란잎들이 비처럼 내리는 속에서도 머물고 싶구요.
그 하얀 몸 내고 앙상해진 숲속도요.

Bishop이 삼백마일 떠러져있군요.
저는 천삼백마일쯤 떠려져있으니 이 가을엔 트리오님 포스팅으로 대신합니다.^^ 2013/10/28 13:16:03  


산성

삼 백마일,천 삼 백마일 사이를 방황합니다
얼마나 먼 거리인지 짐작도 안되지만 흐르는 음악따라
마음만은 훌쩍 날아가 닿는 듯 해요^^
언젠가 저도... 저 아름다운 곳에 가 볼 날 있으려나
하얀 눈이 군데군데 노랑 나뭇잎들이 환상입니다.
나란히 서 있는 저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까...해가면서요^^

 2013/10/29 23:51:52  


trio

교아님, 사시는 곳이 어디신데요? 오랫만이네요.
요세미테 가셨을 때 비숍도 들리셨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반가워요. 건강하시구요. 2013/10/30 02:18:31  


trio

산성님, 300마일은 480키로미터...서울에서 부산까지 얼마큼 멀지요?

내장산에 대해 생각하니까 대학 졸업반때 내장산으로 수학여행을 한 추억도 있네요.

그 댱시 정읍 시내에 사시던 큰언니 (제가 포스팅에 가끔 언급하는)가
내장산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슈베르트의 가곡 '들장미'를 원어로 불러서
왠 시골 아줌마?가 독일어로 가곡을 부르는가 하고 우리들 모두를 놀라게 했었지요.
들장미 뿐 아니라 왠만한 오페라 아리아를 멋지게 부르던 언니거든요.

산성님, 언제 오세요. 저랑 여행하게요. ㅎㅎ
빈 말이 아니라 오신다면 언제든지 안내할 수 있어요.
건강하시구요.
 2013/10/30 02:24:27  


凸凸峯

저도 얼마전 비숍을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보니 휘트니 산정의 눈이
다 녹아버렸더군요.
사브리나호수를 들렸는데 물이 빠져
허허로웁디다.
사진 잘 찍으셨네요. 저도 몇 장
찍어왔는데....형편이 없답니다.
 2013/11/04 08:27:38  


trio

저희도 2년전에 갔을 때는 사브리나 호수가 너무 아름다웠는데
왜 물이 그렇게 다 빠려져버렸는지 먼 길까지 갔다가 많이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팔팔봉님께서도 캘리에 사시나 봅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1/04 11: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