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평화를 사랑한 Cello의 聖者, 파블로 카잘스

후조 2011. 5. 16. 02:10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의

"Unaccompanied Cello suites: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클래식 애호가라면 무두들 좋아합니다.

그러나 첼리스트들에게는 꼭 넘어야 할

결코 쉽지 않은 산(山)이라고 합니다.

 

 

Pablo Casals (1876-1973) (image from web)

 

 

작곡된지 거의 2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이 곡의 악보를 발견한 사람이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e Casals: 1876-1973)라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13세 때(1890년) 아버지와 함께 오래된 악보 상점에 들렸을 때

낡고 색이 바랜 악보 한 묶음을 발견했는데

그 것이 바로 요한 세바스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습니다.

 

2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바흐의 곡을 발견한 그는 너무나 흥분하여

매일같이 연습을 하면서 스승에게서 배운 운지법보다 더 쉬운 방법의 운지법(fingering)을 연구하면서

첼로 운지법의 새로운 발견을 그의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대에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발견하여 연습하기 시작한지 12년이나 지나서

그가 25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무대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1936년 그가 6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곡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곡을 발견한지 47년, 연주하기 시작한지 35년 만에...

 

녹음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드디어 바로크 음악의 진수로서

첼로의 깊은 표현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그래서 모든 첼리스트들에게는

성서(聖書)와도 같은 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곡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첼로라는 악기가 화려한 솔로(Solo) 악기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음악(첼로)에 일생을 헌신한 카잘스의 공로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최고의 첼리스트이며 작곡자로 "Cello의 聖子"라고 불리우는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남쪽에 있는 카탈로니아의 Vendrell에서

11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시골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5세에는 교회 성가대원이 되었으며 6세에는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작곡하기도 하였고

9세에는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연주했으며 10살 때부터는 매일 산보를 하며

자연으로 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고 하니 천재는 역시 타고 나는가 봅니다.

 

11살 때 첼리스트 호세 가르시아의 연주회에서 처음으로 첼로를 본 카잘스는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소리를 내는 첼로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하여 아버지의 반대에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를 바르셀로나의

음악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해서 3년 만에 스승을 능가하는 첼리스트가 되었고

오페라 지휘를 하기도 하며 마드리드의 스페인 왕궁에도 초대되어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왕 앞에서 연주를 했고

1899년에는 파리에서 데뷰하여 그의 명성은 날로 퍼지게 됩니다.

 

그는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고 1920년에는 바르셀로나 카잘스 관현악단을 조직하였지만

1936년 스페인의 내전이 발발하자 카잘스 관현악단을 해산하고

파리의 프라데에서 살면서 프라데 음악제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1956년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로 이주하여

"푸에르토 리코 카잘스 페스티벌"을 시작하였습니다.

 

1957년 그의 나이 80세에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하여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가 죽은지 2년 뒤에 생전에 아들같이 여기던 49세의 노총각이었던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과 카잘스의 젊은 미망인인 마르티타가 결혼을 하여

"카잘스 페스티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이 세계에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유니온, 이태리, 독일 등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독재국가와

스페인의 내전(1936-1939) 이 후 스페인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공식적인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프랑코 정권이 있는한 스페인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면서

그토록 사랑하는 모국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의 Prades에서 살았는데

예외적으로 1961년에 그가 가장 존경한 John F. Kennedy가

미국의 대통령이었을 때 백악관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Pablo Casals
     케네디 대통령 내외를 만나는

        카잘스 부부(위)

        백악관에서 연주하는 카잘스(옆)

        (images from web)

      

   


 



















말년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Puerto Rico에서 살다가

사랑하던 고향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1973년 푸에르토 리코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Puerto Rico에는 그의 박물관이 있고

4년마다 International Cello Competition이 열리며

매년 Casals Festival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많은데... 카잘스는 자기가 애용하는 첼로에 대해 늘 입버릇처럼

"이건 나이를 먹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가 흐를수록

젊어져서 날씸해지고 섬세하며 우아해지는 여성과 같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애용한 첼로는 18세기의 바이올린 제작자, 카를로 베르곤치가 만든 첼로인데

반세기 동안이나 애용하였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또 하나의 일화...

그는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한 것으로도 아주 유명합니다. 

95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영국 BBC 방송에서 그에 관한 특집을 만들기 위해 기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기자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인데 왜 아직도 연습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하하, 나도 그만 두고 싶네.  그런데 말이야, 지금도

연습을 하면 할 수록 조금씩 나아진단 말이야."

 

천재는 1%, 나머지 99%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같습니다. 

파블로 카잘스, 그는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평화를 사랑한 평화주의자로

독재와 폭정을 향하여 무언(無言)의, 연주를 하지 않는 연주자로, 대담하게 항거를 했던 카잘스를

역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 학살이 많았던 20세기를 인간들이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신이 내려준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번째로 음악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첫번째 임무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1971년 파블로 카잘스가 95세였을 때 거의 40년 동안이나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하지 않았던 그가

유엔(U.N.)에서 그의 고향인 스페인의 카탈루니아의 Folk Song인 "Song of the Birds"를 연주했습니다.

그가 연주하기 전에 새들이 마치도 "peace, peace.."라고 노래하는 것같다고

울먹이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열마나 세계의 평화를 원했으며

고국인 스페인을 사랑했는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인근 몬세라트 Montserrat 스도원에 있는 카잘스의 동상입니다.

(image from 블로거 '봄날은 간다'님 방에서)

 

 

 

노장은 죽지 않는다고 했던가, 비록 그가 지금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어서 세대가 지나가도

모든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할 것입니다.

 

 

 

 

흐르고 있는 음악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Suite No. 1 in G major, 1-3 movement입니다.



2011/05/16 11:16

 

 



silver rain

언제 들어도 좋은 바흐의 무반주곡~.
trio님의 포스팅에 늘 감사 드려요.
전 지금 비 내리는 보스톤에 와 있답니다.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 비가 그칠 것 같지가 않네요.
또 놀러올께요.^^*  2011/05/17 14:05:10 


흙둔지

허공을 넘나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의 선율!
새털처럼 가벼우나 충분히 진지한...
가벼움! 슬픈 정열! 빛남의 바흐!
길게 한숨이 나오는 전율 그 자체지요.
첼로의 성자 카잘스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반갑습니다.
탄탄하신 내공이 엿보여 자주 들를 것 같은 예감입니다.
 2011/05/18 07:3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