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지금 내가 가진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예요"

후조 2011. 5. 10. 02:18

 

제목에 놀라셨나요?

우리의 삶에서는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음악에서도 끊임없이 소재가 되고 있는

여자와 남자와의 사랑, 그로 인한 만남과 이별, 기쁨과 환희는 물론

미움과 슬픔이나 괴로움, 이 모든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의미하고 건조할까요?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은 '로멘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우리가 너무나 쉽게 정죄하고 가쉽거리로 삼는 여인의 불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잉태한 어느 여인이 지금의 연인에게 하는 고백입니다.

 

"나는 지금 아이를 가졌는데 당신의 아이는 아니예요."

I am carrying a child, and not by you.

 

얼마나 충격적인 고백인지요?

만일 당신이 이런 고백을 들으셨다면 어떠한 반응을 하실른지요?

 

독일의 시인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 1863-1920)의 詩를 기초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 1874-1951)가 작곡한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Transfiguered Night"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놀드 쇤버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지만 나중에 미국에 귀화한 음악가입니다.

  

 

 

 

오늘날 현대 음악의 새 경지를 개척한 음악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놀드 쇤버그가 1899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리하르트 데멜의 같은 제목의 시에 영감을 받아서

단 3주 만에 작곡한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Verklärte Nacht (or Transfigured Night), Op.4는

"문학에 근거한 표제 음악"이라고 불리우는 곡으로 그가 아직 현대음악에 심취하기 전,

기 낭만파 시절에 작곡했기 때문에 "후기 낭만파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

 

춥고 스산한 밤,  달빛이 교교한 밤에 산책을 하던 두 연인...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나는 아이를 임신했는데 당신의 아이가 아니예요. 나는 죄를 짓고 지금 당신과 걷고 있지요.

내 자신의 행복을 이미 포기하였지만 나는 어머니로서의 기쁨과 의무로 내 생활이 충만해 있지요."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는 것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한 것이기에 자기의 태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인하여

그토록 강인해져서 자신의 죄조차도 감추지 않고 비록 떨면서도 지금의 남자에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쳐다 보았네 달은 그녀와 더불어 걷고 있고

그녀의 어두운 눈빛은 달빛 속을 헤엄치네."

 

그러나 의외로 남자는 그녀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포옹하며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당신의 아기는 당신의 영혼에 짐이 되지는 않을거요.

보시오, 세상이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가를, 모든 것에서 빛이 흐르고 있고,

당신은 나와 함께 차가운 호수 위를 걷고 있지만 따사로움은 당신으로부터 내게로

그리고 내게서 당신에게로 불타고 있소"

 

여자의 이런 고백을 듣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남자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잉태한 여인, 그 여인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도

자기의 아이로 받아 들이는 사람, 얼마나 너그럽고 아름다운 모습인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말을 듣는 그 밤...

어둡고 추운 절망의 밤이었을 그 밤에 두 연인은 찬란한 밤,

밝고 희망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을 맞이 합니다.

 

 

Verklärte Nacht :Transfigured Night by Richard Dehmel      

 

Two people are walking through a bare, cold wood;
the moon keeps pace with them and draws their gaze.
The moon moves along above tall oak trees,
there is no wisp of cloud to obscure the radiance
to which the black, jagged tips reach up.
A woman’s voice speaks:

 

“I am carrying a child, and not by you.
I am walking here with you in a state of sin.
I have offended grievously against myself.
I despaired of happiness,
and yet I still felt a grievous longing
for life’s fullness, for a mother’s joys

 

and duties; and so I sinned,
and so I yielded, shuddering, my sex
to the embrace of a stranger,
and even thought myself blessed.
Now life has taken its revenge,
and I have met you, met you.”

 

She walks on, stumbling.
She looks up; the moon keeps pace.
Her dark gaze drowns in light.
A man’s voice speaks:

 

“Do not let the child you have conceived
be a burden on your soul.
Look, how brightly the universe shines!
Splendour falls on everything around,
you are voyaging with me on a cold sea,
but there is the glow of an inner warmth
from you in me, from me in you.

 

That warmth will transfigure the stranger’s child,
and you bear it me, begot by me.
You have transfused me with splendour,
you have made a child of me.”
He puts an arm about her strong hips.
Their breath embraces in the air.
Two people walk on through the high, bright night.

(English translation by Mary Whittall)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에서 방영하는 "Live From Lincoln Center"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등을 전국에 내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2008년 1월 링턴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에 속한 음악인들이 링컨센터 로즈홀에서

아놀드 쇤버그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을 Robert Kapilow의 해설과 함께 연주한 것을

PBS에서 "Live From Lincoln Center"라는 타이틀로 전국에 방영하였습니다.

 

예일대학과 이스트만 음대를 졸업한 로버트 카필로우는

 

지난 20여년간 "What Makes It Great?"라는

 

음악해설이 곁들여진 연주회를 통하여 어려운 클래식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함으로

대중들이 클래식음악에 다가갈 수 있는 가교역활을 하고 있는 지휘자이며 작곡자입니다.

 

 

 

 

 

 

뉴욕 링컨센터의 로즈홀에서 아놀드 쇤버그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

 

로버트 카필로우가 멤버들의 연주와 함께 해설을 하였고 그 후에 전곡을 연주하였습니다.

 

이런 해설이 곡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군요.

 

 

 

 

해설 후에 연주한 전곡입니다.

 

 

리하르트 데멜의 시와 이 곡을 해설과 함께 들으며 나는 19세기에 쓰여진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명작 소설 "Scarlet Letter (주홍글씨)"(1850년 발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9세기의 작품이지만 시대적인 배경은 데멜의 시보다는 훨씬 이전 세대인

17세기(1640년대) 보스톤의 청교도가 지배하던 사회입니다.

 

신실한 목사로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딤스데일은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불륜에 대해서 "A"라는 표시를 표면에 달지 않았다할 찌라도 영혼의 밑바닥에 "A"를 달고

신앙적인 양심과 신앙의 족쇄로 말미암아 갈등하며 고통으로 자책하며 처참하게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딤스데일의 아이(펄)을 낳아 키우면서도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가를 끌까지 밝히지 않으며

"A" (Adultery:간음)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忍苦의 세월을 살고 있는 간음한 여인 헤스터,

딤스데일의 정체를 파악하고 복수의 화신이 된 헤스터의 남편 틸링워드...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또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불운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아 놓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보면 고흐에게 사랑하는 여인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그 중에서 고흐는 재봉사였다가 나중에 창녀가 된 시엔을 가장 순수하게 사랑한 것같습니다.

 

 

시엔과 그녀의 딸을 모델로 그린 그림 "Woman Sewing with a Girl"

55.6 x 29.9 cm The Hague: March, 1883, Amsterdam, Van Gogh Museum (from web)

 

원명은 Clasina Maria Hoormik인데 고흐는 그녀를 시엔 Sien이라고 불렀습니다.

고흐가 만날 당시에 그녀는 이미 5살된 아이가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시엔에 대하여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지난 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 받은 여자,겨울에 길을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겠지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 주고 내 빵을 나누어 주어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있다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 주는 힘이 아니겠니..."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거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부모의 반대로 그녀와 결혼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아이를  사랑하고 또 그녀의 출산을 돕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이나마 행복하였을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참으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같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중앙모지에 있는 아놀드 쇤버그의 묘

 

여인의 불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일인데 19세기 말에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애인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자기의 아이롤 삼는

따뜻한 사랑과 넉넉한 마음으로 생명을 귀히 여기는 멋진 시를 쓴 독일의 리하르트 데멜,

그 시를 주제로 현악 6중주 곡을 작곡한 아놀드 쇤버그,

불륜의 여인을 그린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손,

그리고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깊은 슬픔과 고뇌의 강을 헤메이며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을 알게 되므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장 8절)

 

 

2011/05/10 09:51 

 

 

 

  멜라니   네, 깜짝 놀랬습니다 ^^
그런데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사랑을 잘알기에 그런 고백을 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남자가 얼마나 순수하게 진실된 사랑을 주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아서...
좀 얄미워요 ㅎㅎ

숀버그는 머나먼 그대..
언제쯤 귀가 트일까요? 2011/05/11 01:33:37  
     
     
 
  trio   그렇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로 그랬을 것같아요. 누울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언감생신 그런 고백을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네요.
역시 멜라니님은 대단한 상상력을 가지셨어요.
숀버그음악에 대한 귀는 벌써 트이신 셈이예요.
그렇게 멋진 해석을 하시니...ㅎㅎ 2011/05/11 02:14:49  
     
     
 
  사막의 별   ㅎㅎ...놀랐습니다.. 2011/05/12 00:18:11  
     
     
 
  문복록   인간의 순수성은 어느순간으로 시작된다 만들어 지는것도 아니고 자연의 발상에서 아주 원초적으로 시작되는것이다..누가 모든 사람을 그런 경우를 용서라고 한다..본성일 뿐이다.. 2011/07/04 11:47:40  
     
     
 
  아지매   대단하신 안목을 우선 찬탄합니다
이 제목은 혹 예수 그러니까
그래서 "정화"된 밤....
우리가 불륜이니 등등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랑의 이야기하고는
좀 시제가 다른 오히려 예수 탄생의 정치적 역사적 뒷배경을
쉔 베르크가 영감을 가지신 걸로..... 2012/01/15 05:2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