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슈만의 울부짖음, "클라라, 나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후조 2011. 4. 16. 02:17

 


Rhine River

 

 


"라인 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독일의 젖줄, 라인강...

울창한 숲과 함께 산책로가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라인 강에 몸을 던진 사람이 어찌 슈만 한 사람일까 만은 슈만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 보지도 못한 독일의 라인 강의 강물이 눈 앞에서 넘실 거리는 것같습니다.

 








 

슈만을 생각하면 우리는 클라라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스승인 슈만의 아내로 14세나 연상의 여인이며 당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에 대한 브람스의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예술가들이나 음악가들의 생애가 대개는 비참하여 그 가운데서 그들의 예술의 혼은 더 발휘되는 것인지,

 

그들은 많은 역작을 남긴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는데 슈만도 예외는 아니어서 알려진 대로


그는 9살이나 연하의 아름답고 재능있는 클라라를 사랑하여 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장인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와 재판을 하면서 까지 결혼한 아내 클라라와의


꿈같은 결혼 생활은 겨우 14년 정도를 넘기지 못하고 그 사랑하는 아내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망상 증세가 있어서 라인 강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후 2년여 동안 정신 병원에서 울부짖다가 이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46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로베르트 슈만은 1810년 독일 삭소니 지방의 Zwickau에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2010년에는 그의 출생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념하여 그가 작곡한 곡들을 많이 연주하였습니다.

 

슈만은 여섯번째 아이로 태어났는데 그를 낳을 때 다섯번재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이미 심한 우울증이 있었고 그를 낳고 2년 뒤에 콜레라에 걸려서

 

슈만은 어머니와 격리되어 어느 市長 집에서 자랐습니다.

 

콜레라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어머니는 정신병으로 정신 병원에 있었고

 

그의 사춘기 때에는 누나가 물에 빠져 자살을 하였고 그 이듬 해 그의 아버지가 죽어서

슈만은 어려서 부터 신경쇠약, 불안, 초조 등의 증세를 보였고 무척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일찍이 피아노에 관심을 보였지만 뒤늦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그가 볍률가가 되기를 원해서


그는 1828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당시


유럽  최고의 피아노 교수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비크를 찾아 갔습니다.

 

클라라(Clara Josephine Wieck: 1819 - 1896)는 4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는 재능이 있는 딸 클라라를 음악신동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비크를 찾아간 젊은 청년 슈만은 당시 9세의 어린 클라라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자상하게 챙겨 주는 오빠(?)의 역활을 하였다고 하는데...

 

 

9세에 만났던 클라라를 7년 뒤에 다시 만나 슈만이 결혼하고자 하였지만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슈만이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정신병적인 요지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극구 반대를 하였지만


클라라는 적극적으로 슈만의 편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법에는 부모의 허가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어서

 

결국은 길고 긴 법정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한편 슈만 자신도


명 연주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오른손 세번째 손가락에 통증과 마비증세가 나타나면서

 

결국 손가락을 못 쓰게 되어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고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슈만은 4개의 교향곡, 첼로 협주곡, 피아노곡, 오페라, 합창곡, 챔버뮤직, 오케스트라곡과 많은 가곡을 작곡했는데


대부분 그가 설립한 악평론잡지(Neue Zeitschritt fur Musik)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슈만이 자주 갔다는 독일의 라이프치히(Leipzig)에 있는 카페 바움...

유럽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1694년에 오픈한 카페,

이 카페에는 슈만이 앉았던 방에 슈만의 얼굴이 새겨진 현판이 있다고 합니다.

 

18세부터 34세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생을 보낸 슈만은 이 카페를 단골로 다니며

특히 1833년 부터 1840년까지는 "다비드 동맹"이라는 그의 예술 서클의 동료들과 매일 밤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이곳이 그의 작곡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곳은 리스트나 바그너도 자주 들린 카페로 현재도 라이프치히 문화 에술인들의 집합지라고 합니다.

독일에 가면 꼭 들려 보고 싶은 카페입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행복한 모습

 

 

이 때 그들은 슈만이 작곡한 "시인의 사랑"중 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18세에 슈만은 뮌헨으로 하인리히 하이네를 만나 그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의 詩로 많은 노래들을 작곡하였습니다.

 

     "The rose, the lilly, the dove, the sun,

     I once loved them all in love's bliss.

     I love them no more, I love only

     the small, the fine, the pure, the one;

     she herself, source of all love,

     is rose and lilly and dove and sun.

     I love only

     the small, the fine, the pure, the one."

 

가곡집 "시인의 사랑" 중에서 제 3곡,

"Die Rose, die Lille, die Tauve, die Sonne"

"장미보다, 릴리보다, 비둘기보다, 찬란한 태양보다 너를 더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고백을 듣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마침내 1840년 길고 힘든 법정 싸움 끝에 결혼 허가를 받아 내어 결혼을 합니다.

21세의 클라라와 30세의 슈만이...

음악사에서 1840년은 "슈만의 노래의 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당신과 결혼을 약속하지 않았으면 이런 노래는 쓸 수 없었을 것이오" 라고

클라라에세 편지를 썼듯이 그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산물이었던 많은 가곡들이

이 해에 작곡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그들은 7명(8명?)의 자녀를 낳고... 클라라는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그러나 달콤했어야 할 결혼 생활이 얼마 지나서는 쉽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어느 날 슈만은 맨발로 빗 속을 걸어서 라인 강으로 달려 갔습니다.

"클라라, 나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다리에서 뛰어 내립니다.  탁류가 흐르는 라인 강으로...

 

뒤셀도르프(빌커슈트라세 15번지)에서 라인 강으로 뛰어든 후

그가 정신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 2년 (1852.9.1. - 1854. 3.4.)을 살 때 입니다. 

 

이 연대를 기록한 이유는 이 집에 살 때 1853년에 20세의 젊은 브람스가 찾아와서

자작의 소나타를 연주함으로  슈만 부부를 경탄시킨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물에서 빨리 건져 내져서 목숨을 살아서 본의 정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 후 2년 여의 세월은 거의 정신 착란증으로 정신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머물렀던 정신 병원은 지금은 음악 도서관이고 그가 있던 병실을 슈만 기념실이라고 합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슈만의 병실을 방문하도록 허락된 사람은 브람스 뿐이었다고 합니다.

 

슈만이 숨을 거두기 나흘 전에 클라라는 사람들의 만류를 무릎쓰고 슈만의 병실에 들어가

거의 의식이 없는 그녀를 알아 보지도 못하는 슈만과 마지막 포옹을 했다고 합니다.

15세의 꽃다운 나이에 첫 키스를 하고 이제 마지막 포옹을 한 클라라...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 생각납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 걸을쳐서 사라졌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슈만의 무덤은 본의 구 묘지에 있다고 합니다.

1880년 제막되었고 오른편에는 요정이 노래 책을 들고 노래를 하고 있고

왼편에는 천사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고 커다란 석상에는 슈만의 모습이 있고

위의 슈만의 얼굴 부조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클라라입니다.

 

클라라는 남편 슈만이 죽고도 40 여년을 더 살았는데 그 나머지 생애를

남편 슈만의 곡들을 연주하며 슈만의 전집을 간행하고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1896년에 77세의 나이로 이곳에 묻혔습니다.

석상으로 나마 슈만을 영원히 바라보며...

 

아버지가 심하게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을 때도 남편될 슈만의 편에 있었고

남편의 사후에도 남편을 위해서 생애를 바친 클라라...

과연 스승의 아내인 클라라를 일생동안 사랑했다던 브람스를 그녀도 사랑했을까...

슈만의 이렇게 애절한 사랑의 고백을 간직한 그녀가...

 

 






 

 

 다니엘 바렘보임이 지휘하는 슈만 심포니 제 4번입니다. (1957년)


얼마 전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엘에이 필의 연주로

슈만이 작곡한 심포니 No. 4를 웥트 디즈니 컨서트 홀에서 감상을 하였습니다.

 

슈만이 작곡한 4개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4번은

"Symphony Fantasia"라고도 불리우며 그들이 결혼한 다음 해인 1841년에 작곡하여

아내 클라라에게 생일 선물로 헌정하였던 곡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연된 후에

10년이나 묻혀있다가 1851년에 개정되어 다시 나왔다고 합니다.

 

29세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슈만의 비극적인 생애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그의 지휘는 박력이 있었지만 아주 애절하였습니다.

 

연주를 듣는 동안 내내...눈물인지 강물인지 내 시야에 오케스트라 멤버들 위로

라인 강의 강물이 넘실거리는 듯했습니다.

 

언젠가 라인 강변의 아우토반을 달려 보고 싶습니다.

 

*****

 

(images from web & music from youtube)

 



2011/04/16 01:17





moon뭉치

십대 부터 알고 지냈던 슈만과의 결혼생활에서
클라라가 행복했던 적은 거의 없었을거라 생각 됩니다만.
유일하게 클라라와 슈만의 사랑이 아름다웠던 시절은..
라이프치히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던 그때뿐이 아닐까요?

슈만은 위대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더군요.
심한 대인관계 불안 때문에 ..
타인과의 사회관계가 원만치 못한 사람이었다는거죠.
심지어 지독한 난봉꾼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너무나 영리하고 똑똑한 클라라가 슈만을 만나
불행한 삶을 산게 아닌가? 제 짧은 지식으로 ㅎㅎ

다음엔 꼭.. 라인강변을 따라 아우토반을 멋지게 달려보시길..
 2011/04/16 16:4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