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50대에 마약혐의로 법정에 서서 위와 같은 말로 파문을 일으켰던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프랑수와즈 사강(1935-2004), 그녀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는 젊은 남자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리고 그 여인은 본래 교제하던 남자와 젊은 남자 사이에서, 고독과 외로움, 사랑하고 있어도 외롭다는 사람들의 애정심리를 우리의 일상을 배경으로,잔잔하고 진솔하게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1961년에 잉그릿트 버그만과 안소니 퍼킨스가 주연한
"Goodbye Again"이라는 영화로 나왔는데
영화의 주제음악이 브람스의 교향곡 No. 3, 3악장입니다.
아마도 브람스가 자기보다 연상이고 스승 로버트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사랑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 그의 음악을 넣은 것같습니다.
*젊은 날의 프랑수와즈 사강의 귀여운 모습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교를 중퇴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인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너무 이른 나이(19세)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1954년에 프랑스 문학 비평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은 체구의 미모의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 이후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신기한 구름>, <뜨거운 연애> 등과
희곡 <스웨덴의 성>, <바이올린은 때때로>, <발란틴의 연보랏빛 옷>,
그리고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등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 때까지 프랑스 문단은 사르트르와 카뮈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문학의 아성으로
문학은 철학을 동반해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소설은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일상을 쉽고 짧게 펼쳐나가므로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글로 그 때까지 실존주의 문학의 철학적인 글에 식상하였던
독자들에게 크게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슬픔이여 안녕>, <어떤 미소>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영화가 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그녀는 "유럽문단의 작은 악마", "천재 소녀",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운이 좋은 소녀", "지나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소녀"라는 꼬리표와 함께
인기 여류작가로 크게 부상하였습니다.
*자동차 속력을 즐겼다는 사강
그녀는 자유분방한 생활로도 유명한데...
10대 후반부터 생 미셸 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리고,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 식사였으며,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고,모두 파경을 맞았던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를 다 탕진하기도 했고,
高價의 차,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하였고
50 대에 마약혐의로, 그리고 2002(67세)년에는 탈세로 법정에 서는 등,
그녀는 끊임없이 스캔들을 뿌렸습니다.
*많이 늙었지요? 말년의 모습이네요.
위의 사진들과 비교하니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말년에는 젊은 날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는지
신경쇠약, 불면증, 수면제 과다 복용 등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하다가
69세에 심장과 폐질환으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하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면 오래 살은 셈입니다.
그러한 방탕한 생활이 작품활동의 원천이 된 것인지
그녀의 작품들과 그녀는 "유럽 문단의 작은 악마"라는 꼬리표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 1853년의 브람스의 모습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 - 1897)...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스승인 슈만의 아내이며 13세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음악사학자들은 그들의 관계에 대하 여러가지 다른 견해를 펼치기도 하지만
그저 평범한 우리들이야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될 것같습니다.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 적도 있지만 파혼을 하였고
푸른 눈동자와 갈색 머리의 빼어난 용모를 가졌지만 브람스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미망인이 된 클라라와 그녀의 자녀들을 끝까지 보살펴 주었다고 하니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아니면 슈만 자신의 음악 평론지 <음악신보>에
브람스를 천재, 예언자, 음악의 메시아 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스승 슈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마음은 절절했던 것같습니다.
클라라는 1896년 5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지고
간암으로 투병을 하면서도 작곡을 계속하여 이듬해 3월 7일 빈필의 연주로
교향곡 4번이 초연되었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브람스...그 후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4월 3일에 클라라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
뭔가 고뇌에 차서 사색을 하는 듯한 브람스...
악상을 구상하고 있는지, 아니면 클라라를 생각하고 있는지...
2009년 8월, 무더운 한 여름,
잘츠부르크를 떠나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서 간
비엔나의 중앙공동묘지 (Central Cemetary)에 있는 브람스의 묘입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아니면 조각품(?)인지...
꽃 한송이가 달랑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브람스와 평생 친하게 지냈다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묘도 옆에 있었습니다.
樂聖들의 죽음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영화 "Goodbye Again"의 한 장면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니 또 다른 멋이 느껴집니다.
2011/03/12 09:51
|
'음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만의 울부짖음, "클라라, 나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0) | 2011.04.16 |
---|---|
빈민가교육에서 세계정상에...두다멜과 LA필 (0) | 2011.04.12 |
"내 영혼 바람 되어" 아내를 보내는 백인 남편의 눈물을 보고... (0) | 2011.01.30 |
이민자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듯이...미국에서의 드볼작 이야기... (0) | 2011.01.26 |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와 알비노니의 Adagio in G minor (0) | 201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