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뉴욕 JFK공항에서 부셔진 짐머만의 피아노...

후조 2011. 9. 15. 02:20

 

 

 

10년 전,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폭격을 당한지

벌써 10년이 되네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고 하지만

엊그제 일어났던 일인 것같은데

벌써 10년이 되다니...

여행 중에 호텔 방에서 보니

CNN에서 하루종일 9.11에 대한

보도를 하더군요.

 

그 날 아침 저는 친구와 커피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친구의 남편이 출근길에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시더니 9.11 소식을 전해주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하루종일

TV에서 뉴스를 시청하며 가슴을 졸였었지요.

 

그 후 우리는 비행기를 타려면

얼마나 까다로운 검사를 통과해야 했는지,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비하면

많이 수그러진 듯합니다.

화장수나, 로션, 치약 등도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비행장에 도착하기 훨씬 전 길에 세워진

검색대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었습니다.


 

 

너무나 엄청한 피해를 입었으니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당연한 일이라

누구 한 사람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공항의 검색대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검색을 철저히 하다 보니 세관을 통과하는 피아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피아노를, 그것도 연주자가 연주를 위해 가지고 오는 피아노를

JFK공항에서 부셔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짐머만(Krystian Zimerman: 1956. 12. 5. - )은

1975년 국제 쇼팽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118명의 참자가 중 최연소(19세)의 나이로 우승을 한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Best Sonata상,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 특별상까지 받으며 혜성같이 떠올랐습니다.

 

쇼팽과 같은 폴란드 출신이고 쇼팽의 외모까지 닮아서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연주하는 곳에 자신의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자기의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사용하는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그렇다고 첼로나 베이스도 아닌 피아노,

그것도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2001년 9.11 사태 직후에 짐머만이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JFK공항에 입국할 때 피아노에서 화학물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짐머만의 연주용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TSA (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에 의해 파괴(?)조치를 당했습니다.

피아노의 접착 부분에 쓰여진 접착제로 인한 냄새때문이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었겠습니까? 

연주자에게 악기는 자신의 분신같은 존재인데...

 

첼로를 하는 막내의 첼로를 비행기를 탈때 좌석을 사지 않고

짐칸에 첼로를 실은 적이 있었는데

 (첼로는 좌석을 사야 비행기 안으로 들여갈 수 있답니다.)

뉴욕에서 엘에이에 도착한 첼로가 목이 부러져버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딸아이는 공항 바닥에 주저 앉아 

목이 부러진 첼로를 안고 엉엉 울더군요.

제 포스팅, "첼로 부셔먹은 이야기"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아니고 피아노에서 냄새가 난다고 피아노를 부셔버리다니...

아무리 9.11 사태로 미국이 예민하여졌기로

예술가에 대한 그러한 조치는 너무 한 일인 것같습니다.

 

 

그 일을 당한 후에 짐머만은 피아노를 분해하여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조율사까지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 피아노를 분해하고 조립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조율까지 할 줄 알아서

현지에 도착해서 피아노를 자신이 직접 조립하고 조율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운전수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트럭에 피아노를 실고 직접 운전하고 다니기도 한다니...

짐머만...참 별나기도 합니다.

 

 

2009년 4월에는 엘에이의 Walt Disney Concert Hall에서 연주하다가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에 잠시 침묵을 하고 있다가 청중들에게 얼굴을 돌리고 

폴란드에 대한 미국정부의

군사정책(US plan to install its missile defence shield on Polish soil)

못마땅하여 미국이 폴란드에 대해 손을 떼지 않는 한

미국에서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여 화재를 일으킨바 있습니다.

객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고

입닥치고 피아노나 연주하라고 소리도 질렀다고 합니다.

 

짐머만은 2006년에도 George W. Bush가 물러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연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에 당한 일 때문에 더욱 예민해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는 짐머만의 연주를 미국에서는 들을 수가 없답니다.

 

 

 

Krystian Zimerman 
'Get your hands off my country' ...

Krystian Zimerman's outburt stunned the crowd. 

Photograph: Grzegorz Michalowski/EPA/Corbis

 

 

 

위 사진은 미국은 폴란드에 대해 손을 떼라고 말하고 있는 짐머만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고 매섭습니다.

연주를 하다가 중단하고 이 말을 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망설이고 번민을 하였을까...

 

 

누구나 외국에서는 애국자가 된다고는 하지만

예술가들이나 음악가들이 

태어난 고국에 대한 애국심이 많은 것은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스페인의 첼리스트 카잘스, 체코의 지휘자 쿠벨리크,

그리고 냉전시대 동구권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폴란드 태생의 프레데릭 쇼팽(1810 - 1849)도

1830년 고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러시아가 폴랜드를 점령하고 있는 한 폴랜드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여 결국

파리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여 파리의 공동묘지 페르라쉐즈에 묻힐 때

풀랜드에서 가져온 한줌의 폴랜드 땅의 흙이 관 위에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에 따라 몸은 비록 파리에 묻혔지만

그의 심장은 장례식 후에 그의 누나가 병에 담아 폴랜드에 가지고 가서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성당의 기둥 밑 황금단지 속에 담겨져 안치되었습니다.

 

 

이렇듯 폴란드는

쇼팡으로부터 폴란드의 제 2대 수상(Prime Minister)였으며 피아니스트였던

Jan Paderewski (1860 - 1941)를 이어 짐머만까지

피아니스트들에게

특별한 애국심이 흐르고 있는 나라인 것같습니다.

 

 

 

 

짐머만이

쇼팽의 스케르조 #2 (Scherzo #2, Op. 31 in B flat minor)를 연주합니다.

쇼팡의 4곡의 스케르조 중에 가장 유명한 곡으로

감미롭고도 정열적인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짐머만의 피아노 연주를 미국 내에서는 볼 수 없으니

폴란드에 한번 가야 할지...

 

그러나
이렇게 동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9.11 참사 10주년 되는 날 올리려고 준비했던 포스팅인데

이제사 올립니다.

 

 

  2011/09/15 17:17 


 

 


술래

벌써 10주년이네요.
엘에이 다운 타운에 있는 교회 새벽 기도에 참석했다가
교우 몇 분과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뉴욕에 사는 딸이 급한 목소리로 테러범이 납치한 비행기 한대가
엘에이 다운 타운을 폭격하기 위해 날아가고 있는데
엄마 빨리 집에 가라고 야단하던 전화가 아직도 생생한데요.
딸과 통화를 하는데 십년전 기억이 나서 많이 울었다며
코맹맹이가 되어 있더군요.

워낙 큰 사고여서 예만하게 반응을 보이는것도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좀 심했군요.
오랫만이예요. 바쁘셨나보죠? 2011/09/16 00:08:39  


흙둔지

까다롭고 예민한 피아니스트가 호로비츠말고 또 있었군요.
원래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유일한 연주가라는 명제를 뒤집었던 피아니스트는 호로비츠거든요.

완벽한 테크닉과 무궁무진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주관에 입각해 빚어낸 호로비츠의
개성적인 피아니즘 역시 보통의 예민함과
보통의 감수성으로는 빚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Zimerman은 언젠가 정경화씨와 협연 앨범을 만드는데
8년씩이나 걸렸다고 하더군요.
완벽한 음을 구현하기 위해 피아노 위치를
10번씩이나 바꿔 녹음하는 바람에
정경화씨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내미가 떨어져 멀리했던 피아니스트인데
이제부터라도 친해져도 좋을 듯 하네요...^_^
 2011/09/16 05:11:59  


라원준

오!... 짐머만의 고뇌에 찬 말 한 마디에 그만 연주회장에 화재가 발생하고 말았군요. 2011/09/16 10:3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