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9일,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휴전선이 무너질 날은 아직도 요원한 것같은데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벌써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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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구 소련은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7년 6월 12일에 당시 로날드 레간 미국 대통령 (Ronald Reagan)은
베를린을 방문하여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Brandenburg Gate)에서
"이 문을 열고 이 장벽을 헐으시요"라는 연성을 하였는데
2년 5개월 후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미국 대통령의 파워는 대단했던 것같습니다.
U.S. Presedent Ronald Reagan in front of the Brandenburg Gate
at the Berlin Wall (1987.6.12)
그러나 나는 지금 정치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음악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Rostropovich at Berlin Wall (image from web)
22년 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그 장벽 앞에 홀로 앉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흐의 무반주 조곡 (Cello suite No. 1 1-Prelude)를
연주하는 노신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Mistislav Rostropovich: 1927-2007)였습니다.
그는 구 소련시절 아제르바이잔에서 출생한 첼리스트이며 지휘자,
우리나라가 낳은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는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로스트로포지치는 1927년에 구 소련에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Moscow conservatory에서 공부하고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로부터 사사를 받은 후 프라하, 부다페스트, 소련 등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고
1956년에 볼쇼이 오페라단의 소프라노였던 Galina Vashnevskaya와 결혼을 하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첼로교수가 되었지만
그의 스승인 쇼스타코비치가 구 소련의 공산주의 정치를 반대하다가
교수직을 박탈 당하자 로스트로포비치도 정치적인 이유로 시베리아에 유배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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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u에 있는 그의 고향집을 개조하여 만든 Rostropovich Home Museum에 있는
1999년 아제르바이잔의 유명한 화가 Tahir Salahov가 그린 로스트로포비치(left)와
연주하는 로스트로포비치의 모습(right)
1974년에 미국에 망명하여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지휘자와 첼리스트로 활동하였지만 소련에서의 연주는 금지 당하였고
1978년에는 소련 시민권을 박탈 당하였습니다.
1977년부터 1994년까지는 Washington D.C.의
National Symphony Orchestra의 음악감독이며 지휘자로
미국에서의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19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서의 연주로 말미암아
그는 더욱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그와 온 가족이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고
1978년에 박탈 당한 소련 시민권도 1990년에 회복되었습니다.
2007년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크렘린 궁을 방문한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장암으로 80세를 일기로
다난하고도 화려한 음악가로서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연주를 금지하였고 시민권을 박탈하였던 고국이었지만,
(물론 죽기 전에 시민권도 회복되고 소련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죽어서는 그리운 고국 땅 모스크바의
노보데비키 묘지(Novodevichy Cemetery)에 묻혔습니다.
그로 인하여 첼로라는 악기와 첼로 음악이 더욱 보편화 되고
클래식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더욱 확실하게 되는데
큰 공헌을 한 전설적인 첼리스트입니다.
음악가인 그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습니다.
"경이로운 천재, 그를 곁에 둔 것은 나의 기쁨이고 인류의 기쁨이었다."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첼로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사람,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는 첼로의 미래였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뛰어난 첼로 연주자이자 저명한 지휘자로서 뿐아니라 인권의 옹호자이면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투쟁한 인물이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음악과 인간성이 합치된 모습을 보여준 고결한 예술가"
(첼리스트, 요요 마)
"그는 첼로의 신(神)이다. 적어도 첼로에 관한 한
그는 비교급으로 서술할 수 있는 연주자가 아닌 것이다."
(첼리스트, 줄리안 로이드 웨버)
그러나 이 모든 찬사 외에 로스트로포비치와
그의 아내 소프라노 Galina Vichnevskaya가 Washington D. C.에서
창립한 비영리단체인 RVF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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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는 로스트로포비치와 그의 아내 이름의 첫 자를 따서
RV Foundation, or RVF라고 부르며
(Rostropovich-Vishnevskaya Foundation for the Health and the Future Children)
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구 소련 국가의 어린이들의
예방접종 등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한 자선단체입니다.
현재는 St. Petersburg, Baku, Azerbaijan, Tbilisi, Georgia,
Yerevan, Armenia Bishkek, Kyrgyzstan에 사무실이 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단체이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여기에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아래 웹사이르를 참조하세요.
로스트로포비치와 갈리나 (1965년)
훌륭한 지휘자, 첼로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80세의 일기로 2007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과 예술혼, 절설같은 그의 연주는 길이 길이 세대를 넘어서
찬사를 받을 것이지만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그의 따뜻한 인간애는
영원히 진한 감동으로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지구촌에 더 많은 자선 단체들이 생겨나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모든 질병의 장벽이 무너져서
더 이상 질병으로 인한 슬픔과 눈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베를린 장벽에서 연주하는 로스트로포비치
2011/11/09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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