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5월의 광주, 스페인의 게르니카, 그리고...

후조 2011. 5. 17. 00:00

 

지구촌... 이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되고 메스컴이 활발하여 이제는

거의 실시간으로 모국의 소식들을 접하게 되니 모국과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저에게 모국은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그리고 머나 먼 곳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 지내 온 많은 세월이 이미 건너갈 수 없는 깊은 강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불효이었고

이곳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방인이지만 모국에 대해서도 왠지 이방인이나 방관자일 수 밖에 없었기에

가슴 한 구석에 메여지지 않는 허전한 그 무엇이 항상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잊지 못할 사건...5.18 광주...

사실 저는 모국에 있을 때도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하고 무지하였지만

그 당시 이곳에서 자녀들을 키우기에 바쁜 나날들을 보냈었기에

그 아픈 참상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메스컴도 지금 같지는 않았었고...

 

그 후 차차 알게 된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피해자들과 그곳에서

그 모든 참상을 직접 겪으신 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인지 모릅니다.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하여 항쟁 시인인 김남주님이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떨렸습니다.

세월은 물 흐르듯에 흘러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버렸지만

이제라도 아픔을 함께 하고 싶어졌습니다.

5.18의 진실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

 

<학살2>

            - 김남주 (1946-1994) -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 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5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창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일들으

밤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5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 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고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는 못했으리


*****


게르니카의 학살이라는 말에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게르니카"가 생각납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어디에나 전쟁과 학살, 파괴가 끝이 나지 않고 있지만


스페인도 슬픈 역사가 있는 것같습니다.

 



피카소, "게르니카 Guernica" 1937, 캔버스에 유채, 782 x 351cm, 마드리드 국립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소장 (image from web)

 

게르니카의 학살...

게르니카(Guernica)는 스페인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공화정의 세력이 커지자 기존의 왕당과 프랑코 군부가 반란을 일으킨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군부가 독일에게 군사 요청을 하자

1937년 4월 26일 히틀러는 공화세력의 근거지인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폭격은 서너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길은 사흘이나 지속되었고

이 작은 도시 인구의 1/3인 1600 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도시의 70% 가량이 파괴되었습니다.

 

1937년 초 스페인 공화정은 그 해 여름 개최 예정인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위해

피카소에게 작품을 의뢰하였는데 피카소는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4월 26일에 일어난 게르니카의 폭격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한달 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으로 비참했던 게르니카의 폭격의 참상을피카소 특유의 스타일로 폭로한 것입니다.


절단된 신체들, 격노한 황소와 말, 죽은 아이를 무릎에 놓은 채 절규하는 어머니,

횃불을 들고 진실을 밝히려는 혁명적인 민중들, 부러진 칼을 손에 쥔 채 죽어 있는 군인들...


그 해 여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이 그림이 걸림으로써 스페인의 우익 군부는 다시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1940년 파리에서 독일 장교가 "게르니카"를 보면서 피카소에게 "당신이 그렸소?" 라고 물으니

피카소는 "아니, 내가 아니라 당신이 그렸소."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비록 자기가 그렸지만 그런 그림을 그리게한 것은 독일군이었기 때문에...

"예술은 집의 벽을 장식하는 그림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또 방어적인 무기이다."라고

피카소가 말한 것으로 봐도 그는 예술을 통해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나 봅니다.

 

피카소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세기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는

스페인의 내전(1936-1939) 이 후 프랑코가 정치를 하는한 스페인은 물론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의 프라데에서 살다가 말년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에서 일생을 마치었습니다.

그가 1971년 95세의 나이에 U.N.에서 세계의 평화를 원한다는 연설을 한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많은 연주자들이 망명을 하거나

이념에 항거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게르니카의 학살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보니까 이 시대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Richard Danielpour (1956 - )가 최근에 작곡하여 카네기 홀에서 초연한 피아노 트리오곡,

"게르니카의 얼굴들: The faces of Guernica for Piano, Violin & Cello"라는 곡이 있습니다.

 

다니엘포어는 현재 커티스 음대와 맨하탄 음대에서 교수로 제직하고 있으며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피츠버그, 볼티모어 오케스트라 등등

많은 오케스트라로 부터 작곡을 의뢰 받아 활발한 작곡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입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은 브리튼, 코프랜드, 번스타인, 바버 등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은

신낭만주의의 풍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미국적인 소리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곡은 그가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의 학살"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뉴욕의 나움버그 재단으로부터

트리오 곡의 작곡을 제안받고 작곡하였으며 작년 2010년 5월 26일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초연을 하였습니다.

 

뉴욕의 나움버그 재단(The Walter W. Naumburg Foundation, Inc.)은

매년 음악경연대회를 통하여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전통있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재단입니다.

 

이 재단이 2009년 뉴욕에서 열린 나움버그 챔버뮤직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피아노 트리오 Trio Cavatina 그룹에게 주는 상(賞)으로 2010년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하게 하였는데

그들이 연주할 곡을 리차드 다이엘포어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곡은 2012년까지는 오직 "트리오 카바티나" 만이 연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전쟁과 파괴, 학살과 피해자,

힘센 자의 횡포와 힘 없는 자의 울분... 그리고 슬픔과 고통과 눈물...

이러한 일이 없는 세상은 우리가 꿈 꾸는 이상향에서나 존재하는 것인지...

그래도 이러한 예술가들이 있는한 이 세상은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닐른지요...







"게르니카의 얼굴들"이라는 트리오곡은 찾지 못했고

흐르는 곡은 클라라 슈만(1819-1896)의 Piano Trio in G minor, Op. 17 입니다.

독일의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며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와 결혼 후에 남편의 격려에 힘입어 작곡도 하였습니다.

이 곡은 클라라 슈만이 작곡한 유일한 실내악곡(1847년)인데

그녀의 뛰어난 재능이 발휘된 곡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2011/05/17




 

moon뭉치 5.18..잔인한5월에
당시에 전 군에 있었죠.
군에 있을때..거짓말만 무성하더군요.
전두환이가 국민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날을..
잊으면 안되죠. 2011/05/18 00:48:00  
Grace 피카소의 말이 마음을 울리네요...

"예술은 집의 벽을 장식하는 그림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또 방어적인 무기이다"....

이 말이 진정한 자유를 지키는 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줄 것 같습니다

귀한 포슽...감사합니다. 2011/05/18 01:27:26  
흙둔지 6.25 전쟁 때 사상자수는 자그마치 400만명이 넘었는데
작금에 그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가 없더군요.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건 6.25가 더 하다는 생각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2011/05/18 07:38:00  
나도몰라 전에는 그렇게까지 생각안했는데 김대중정권뒤부터 아!그랬었구나.하는생각이들더군.지금봐라 라도 광주와북의사이를.... 2011/05/18 12:07:02  
김씨 북한도 나쁘지만
전두환은 자국민을 죽인 더 나쁜놈입니다.
지금도 고통속에 사는 행불된자들 가족들 고통도 모른체
떵덩거리고 살지요.
광주사태가 6.25하고 비교하는건 넌센스??아닐까요.
 2011/05/18 13:14:29  
참여하는 눈길 전두환도 나쁘지만, 국가를 패망으로 몰고간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북녁 동포들을 괴롭히는 북한이 더 나쁜 놈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반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종북좌파로 몰릴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아무리 광주니, 민주니 해도 종북좌파라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2011/05/18 13:56:58  
최용복 어딜가나 저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네요.

겪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들, 아는사람들이 다친 사람들과는

공감할수 없는 것들만 가득할수 있는 일이죠.

진실은 권력을 쥐고있었던 사람들 때문에 생긴일들이죠.

 2011/05/19 15:20:35  
풍경 그 상황에서 겨우 광주를 빠져나와 우리집으로 피신해온 광주에 있는 먼 친척벌 손아래 동생은 그 상황을 이불속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면서 몸서리를 쳤지요. 2011/06/15 18:42:14  
trio 마음 아픈 이야기를 올려놓고 답글도 달지 못했습니다.
댓글 남기신 고운님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2011/06/16 01: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