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폴 루벤스의 <한복입은 남자 Man in Korean Costume>, 1617년경
온갖 의문과 의혹,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는 남자,
아직도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남자,
400년 전 그것도 이국 땅 이탈리아에서, 네델란드의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스케치를 했던 남자,
그러나 조선 남자일 것이라는, 거의 확실한 설득력을 가진 주장으로
어찌되었든 <한복입은 남자>라는 타이틀로
엘에이 서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서부의 자존심, 폴 게티 뮤지엄에까지 와서
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남자...
그래서 고마운 이 남자...
지난 3월 5일부터 폴 게티 박물관 서관(西館) 아래층에서는
"동방을 향해: Looking East: Rubens's Encounter with Asia)" 라는 타이틀로
루벤스의 <한복입은 남자>와 그 외 루벤스의 제자나 다른 작가의 동양의복의 스켓치들과 함께
교포 한복 아티스트 김태순씨가 종이로 제작한 두루마기 한복,
<조선의 정신, The Spirit of Chosun>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지하 7층까지 내려가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다시 올라오다가
지하 5층에서 겨우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주차하고
친구가 기다리는 박물관 입구로 트램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이 박물관은 석유왕 폴 게티(Paul J. Getty, 1892-1976)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자신의 소장품과 재산을 헌납하여 만들어져서
주차료만 받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 박물관입니다.
엘에이의 한인커뮤니티는 이제 미국인사회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존재감으로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벤트를 콧대 높은 게티 박물관에서 한국문화원과 함께
오래 전에 기획하여 전시하고 있어서
미주 한인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엘에이, 누가 떠밀어서 온 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모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온 이민자들,
한인 이민 역사야 백년이 넘지만
70년 대 초반만해도 엘에이 올림픽 가에는 한국식품점이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그것도 중식을 겸한 식당이 한 두개였습니다.
매주일 교회가 끝나고 나면 교인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가서
고작해야 짜장면, 김치찌게, 된장 찌게 등을 먹으면서
일주일 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하느라 실컷 웃고 울며 떠들다가
못내 그리움과 서러움을 안고,
그러나 내일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
지금의 한인타운을 생각하면 기적일까,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것일까...
워낙 게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은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는 한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는데 이 작품들은 게티박물관의 소장품이 아니라
사진찍는 것을 금지한다고 하더군요.
방도 작은데 감시가 심해서 도촬할 수도 없고...ㅋㅋ
하는 수 없이 그림 한장을 기념품가게에서 사서 집에 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복을 입은 남자> 그림은 카피 종이 한장 사이즈,
물감을 칠한 것도 아닌, 그냥 스케치를 한 것인데
400년 이상 어떻게 그렇게 잘 보존되었는지, 스케치가 선명하네요.
모자..두건이라고 하나요? 우리네 조상님들의 것이 틀림없는 것같고,
남자의 얼굴은 노예나 천민같아 보이지는 않고 수줍은듯, 여리고 귀하게 보이고
귓가와 코끝, 입술부분이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것은 애당초 작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세월이 지나면서 변색한 것인지...
주름진, 마치 여인의 드레스 같은 옷,
넉넉한 옷감을 사용한 것을 보니 평민의 옷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아랫부분 붉은 점은 역시 세월탓?
왼쪽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배...
그가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갔을 배를 의미할 것입니다.
낯선 나라에서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의 모델노릇을 하면서 이 남자는
4세기 후에 이민자의 땅, 그것도 한인들이 많이 사는 엘에이에 와서
이렇게 선 보일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전시를 위해서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많이 홍보가 되어서인지
그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고
다만 이곳 엘에이까지 찾아와서
싸이가 열풍을 일으킨 한국을 다시 인식시키고 있는
이 한복입은 남자가 그저 고마운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남자덕분에 항상 트리오를 아끼는
팜데일에 사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나서
햇살 좋은 카페에 앉아서 실컷 수다를 떨었으니까요.
산타모니카 쪽에서 불어오는 태평양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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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조선, 일본, 네델란드, 이태리, 그리고 미국까지,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지구상의 특별한 이벤트...
그 이벤트를 보고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원로위원 한 분이 쓴
글, 한편의 서시를 올립니다.
<조선남자를 만나고>
1.
엽서 열장 크기 드로잉 그림에서
오백년 전 조선남자를 만난다
지구의 동서교류가 비롯되던
십육세기 무렵 서양으로 건너간
조선남자가 한 화가의 호기심 깃든
관심의 붓 끝에 살아나
엘에이 서북쪽 산자락
게티뮤지엄 서관(西館)에 돌아 왔다
임진년 왜구 침노(浸擄)로 끌려 가
일본 나가사끼 노예시장에서
이딸리아로 팔려간 것으로 알려진
조선남자 '안또니오 꼬레아'
이딸리아에서 조선사람의 조상이 되어
알비마을에 터잡은 조선사내
'한복입은 남자: Man in Korean costume'로
머나 먼 나라에서의 고통과 신음 안고
'동방을 향해: Looking East' 잔칫자리
주빈(主賓)으로 돌아 와 서 있다
잃었던 말 떠오르고
떠돌던 넋이 자리 잡은
그 사내의 어제 해로는 몇백년
날수로 치면 헤아리기 쉽잖은데
옷자락 시원하고 넉넉하게 차려입고
우리 앞에 돌아와 서 있는 남자에게
눈길 주어 그늘을 거두게 하자
그늘 거두어 노랫소리 들리게 하자
그 앞에 반갑고 기쁜 마음 위로를 전하자
2.
이딸리아 상인 안또니오 까를레띠에 팔려
큰 풍랑 속 멀미 끝에 닿은
낯선 땅 얼굴들과 통하지 않은 말들에
두려움은 얼마나 컷을까
귀국길에 객사한 안또니오의
아들 프란체스코에 의해
삐렌체에서 해방되어
그 아비의 이름 안또니오
조선땅 꼬레아를 성으로 붙여 지어진 이름
'안또니오 꼬레아'로 자유의 몸이 된
제 이름 잃고 잊혀진 조선남자
이딸리아에 뿌리 내리며
낯선 땅에서의 온갖 질고 이기며 버텨
조상의 옷 벗지 않은 고집
벨기에서 유학 온 화가 루벤스를 만나
오늘 우리 앞에 와 서있다
두려움 견뎌낸 세월 드리운
얼굴에 수모와 고독 무겁고 깊게
영혼의 고통 수심과 향수로 주름졌어도
관모(冠帽)로 자존 지킨 조선남자 앞에
세월이 겹겹이 쌓인 오늘
큰 바다 건너 와 겪은 일들 떠올라
마음 속 드려다 보며 달랜다.
김신웅(국제펜클럽한국본부 원로회원)님의 글을
미주중앙일보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신문에서 옮겨왔습니다.
같은 이민자이기에 낯선 땅에서의 그의 삶을 이리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Celine Dion이 부르고 이어서 Roberta Flack이 부릅니다.
가슴 절절하게 즐기던 노래,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미술전문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닌 트리오가
게티에 다녀온 가벼운 감상문을 올렸는데
아무래도 한인과 관련된 글이어서 그런지 댓글에 많은 블로거님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몇가지를 첨부합니다.
Looking East: Rubens's Encounter with Asia 는
폴 게티 뮤지엄이 BBCN Bank와 한국문화원, 미주 중앙일보, 한국일보의 후원으로
피터 폴 루벤스의 아시아인들과 만남이라는 제목 그대로
1600년 초에 피터 루벤스가 그렸던 "한복입은 남자, Man in Korean Costume" 뿐만아니라
당시 중국선교의 리더(the Jesuit leader of the Chinese mission)로 네델란드에 왔던
선교사 Nicolas Trigault (1577–1628)가 중국옷을 입은 모습을 그린 그림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getty.edu/art/exhibitions/looking_east/
여기서 1600년 초기에 중국에 온 선교사라고 하면 당연히 캐톨릭교회를 의미합니다.
마틴루터를 비롯한 일부 신부들이 캐톨릭의 부패상을 들고 일어나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 1517년이므로 1600년 초기에는 신교가
동방에까지 선교사를 파견할만큼 세력이 확장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국에 캐톨릭이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이 약 240년 전이고
신교(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약 120년 전인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동아일보의 2004년 1월 30일 날자 영문기사 (아래 사이트 참조)를 보면
루벤스의 "한복입은 남자"는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983년에
324,000 파운드(660million won, 6억6천만원?))에 팔려 미국 로스앤제레스의
게티 뮤지엄으로 오면서 "Korean Man"이라고 알려졌던 이 그림이
"A Man in Korean Costume"이라는 타이틀로 바꿔졌다는 내용과
그외 지금 알려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으므로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english.donga.com/srv/service.php3?biid=2004013173818
그러므로 이 그림은 게티 박물관 소장이 소장하고 있는 진품이고
루벤스가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에 이미 복사되었었는데
18세기에 들어와서 유럽에서 그 복사본들이 다시 복사되어
나돌았다고 합니다.
게티 뮤지엄은 1983년에 이 그림을 사들이고 30년을 준비하여
이번에 이런 이벤트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남자"...가 누구인지, 왜 이탈리아까지 갔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400년 전인데...
다만 네델란드 화가 루벤스가 1600년 초에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이겠지요.
제 글은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미주에 이민와 있는
한인들과 한인사회에 촛점을 두고 쓴 글이어서
역사적, 미술적 시각에서 본 관점이 미약합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트리오
2013/03/26 08:29
아래 두 포스팅에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글이 있습니다.
https://www.aa.com/reservation/awardFlightSearchSubmit.do?bookingPathStateId=1486938930074-447&_button_success=GO
(2) 루벤스 그림: 그는 한국(조선)사람이 아니었다
https://www.aa.com/reservation/awardFlightSearchSubmit.do?bookingPathStateId=1486938930074-447&_button_success=GO
(1) 루벤스 그림: 그는 한국(조선) 사람이 아니다
Koreadaily.com blogger Diaposder 2000님의 이 그림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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