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로댕의 연인...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여류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

후조 2015. 8. 3. 09:26

 

 

로댕의 연인...

천재 여류 조각가 Camille Claudel (1864-1943)

 

 

 


 

 

 

노틀담 성당을 지나 조금 걸어서 세느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세느강 안에 있는 생 루이섬(Ile Saint-Lous)으로 걸어갔습니다

 

 

 

 

 



한 때는 늪지였던 생 루이섬은 17세기에 시테섬에 연결되면서

우아한 주택가로 변모해서 역사적인 인물들이 살았었고

현재도 유명인들의 거주지라고 합니다.

 

이 섬에 가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하던데...

너무 추워서 아이스크림은 먹을 생각도 못하고

옷 깃을 세우며 세느강변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세느강을 따라 주택들이 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너무나 뜻하지 않게 아래의 현판이 눈에 띄였습니다.

 

 



 
 
불어를 모르지만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이
1899년부터 1913년까지 살았다는 현판이 확실하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짧은 생은 여기서 끝나고 길고 어두운 
억류된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그리고 1886년에 로댕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IL Y A TOUJOURS QUELQUE CHOSE
D' ABSENT QUI ME TOURMENTE"
(항상 나를 괴롭게 하는 비어 있는 무엇이 있다.)
 
 
1913년이면 까미유 끌로델이 정신병원에 들어간 해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정신병원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내고
1943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비운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이 살던 집을
세느 강변에서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예정에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일이라
가슴이 팡팡 뛸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

 프랑스의 천재 여류 조각가에 대한 포스팅을 위해서

그녀의 비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다시 보았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까미유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그의 타고난 천재성을 인정한 아버지의 후원을 힘입어

조각을 공부하다가 20세에 조각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Auguste Rodin)의 제자로 발탁되어 로댕이 의뢰받고 조각하기 시작한 "

지옥의 문" 등의 조각을 함께하는 조수로, 또는 그의 모델이 되기도 하며

이미 동거하는 여인과 아들이 있는 44세의 로댕을 사랑하게 되고

로댕도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로댕의 제자로서,

로댕의 제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그러나 그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사랑의 단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로댕과 끌로델...비록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스승과 제자,

작가와 모델이라는 관계로 예술적인 경쟁심과 시기심이 배제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로댕을 사랑하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고

자신만의 작가적 가치를 갖기를 원하던 까미유...

더구나 여류 조각가로서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았던 시대에...

 

어느날 그녀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고 로댕이 가족을 떠나 자신을 택하기를 원했지만

로댕은 오직 그녀만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명성과 체면때문에 가족을 버리지 못하고

까미유는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여자가 되어 버립니다.

 

너무나 실망한 까미유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로댕을 떠나,

물론 아기는 유산이 되고, 자신 만의 작품세계에 몰입합니다.

 

한 때는 여류조각가로서의 자신의 입지가 굳어지는 것같았는데 로댕에 대한 사랑의 상처를

쉽게 잊을 수가 없었기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면서 서서히 망가져 가지요.

 

1913년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던 그녀의 아버지가 죽자 남동생과 어머니는

그녀가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내고 1943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로댕은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간지 4년 후, 1917년에 이미 죽었고....

 

그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까미유 끌로델>은 이렇게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영화를 끝내고 그녀의 30년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어떻게 보냈을까요?

 

 

 

 

 

 

 

혹자는 그녀가 참으로 정신착란증세가 있었는가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가족들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고

의사도 그녀를 가끔 데려가도 좋다는 연락을 가족들에게 했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해외에 주로 있었고 어머니는 너무 늙어서 그녀를 돌볼 힘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로댕박물관에는 까미유가 만든 남동생의 흉상도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

 

 

 

*****

 

 

로댕박물관을 가기 위해 탄 버스를 잘못 내려서 헐레 벌떡

종종 걸음으로 찾아 간 로댕박물관...

 

그곳에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어서야서 사랑하던 로댕과 함께 있는 것일까요?

 

 



그녀의 "성숙의 시대"라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이 박물관에서 로댕의 작품들보다 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왈츠>라는 작품입니다.

  

 


끌로델의 Clotho (1893)




 

그녀의 "파도, La Vague, The Wave" 라는 작품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녀의 "수다쟁이들"이라는 작품입니다.

수다를 떤다기 보다는 여자들이 모여 뭔가 gossip거리를 소근거리는 것같습니다.

 

 

***

 


 

입구를 지나 정원에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로댕의 "깔레의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뒷정원에 로댕의 많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끌로델을 생각하면 왠지 로댕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미워할 수 없어서...미워도 다시 한번... 








로댕의 "깔레의 시민들"


 

"깔레의 시민들",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1339-1453)의 와중에 프랑스의 북부 도시 깔레는

영국의 집중 공격으로 멸망하기 직전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방어 자체도 힘들었지만 도시민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 깔레 시장의 간청으로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깔레가 누구든지 6명의 책임자를 골라서 나에게 넘긴다면 도시 전체의

학살과 파괴만은 면하게 해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이 때 깔레 최고의 부호였던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자진하여 나셨고

다른 5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죽음은 물론이고 에드워드가 항복의 조건으로 말한

목에 밧줄을 두르고 맨 머리와 맨 발에 홑 옷 한벌만 걸치고 성을 나서라는

굴욕을 기꺼이 감내 했다고 합니다.

 

이 숭고한 희생정신,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그 후

역사에서 "시민정신"의 모범이 되었고 그런 시민들을 배출한

깔레에게는 자긍심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5백년이 지난 19세기 말 깔레市는 그들의

영웅을 청동 조형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그 조형물의 제작을

로댕에게 의뢰해서 나온 작품이 "깔레의 시민들"입니다.

전쟁의 역사가 이러한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아이러니입니다.

  

그리고 까미유와 함께 작업한 "지옥의 문"이 있었고

빅토르 위고에 관한 포스팅에 올렸던 위고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로댕의 "지옥의 문"

 

 

그리고 건물 뒷쪽으로 넓은 정원에 드문드문 로댕의 조각품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들만 남은 나목(裸木)들이 있었지만

봄이나 여름에는 정원이 무척 아름다울 것같았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자기를 떠난 사랑하던 끌로델일까요?


내부에 들어서니 로댕의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리고 위에 올린 까미유의 작품들을 보다가 막상 로댕의 작품들은
많이 놓쳐버렸습니다.
 





프랑스의 대 문호 빅토르 위고像


 




정원에도 있었는데 실내에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누구를 생각하고 있을까...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과 결별 후 정신착란 증세로 30년이나 정신병원에서
생을 보냈는데 로댕은 "깔레의 시민들", "빅토르 위고", "발자크"같은
중요한 작품들의 주문을 받고 조각가로서 대 성공을 거둡니다.
 
시인 마리아 라이너 릴케는 1905년에 로댕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1908년에는 현재의 미술관이 된 비롱호텔을 빌리도록 촉구하여
로댕은 이곳에서 1908년부터 죽을 때가지 살았고
1916년에 작품과 전시물을 국가에 기증하고 1917년에 세상을 떠난 후
1919년부터 이곳이 로댕박물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Secret Garden의 "In Our Tears"
 
 
 
까미유 끌로델, 천재 여류 조각가,
그녀가 말한,
"IL Y A TOUJOURS QUELQUE CHOSE
D' ABSENT QUI ME TOURMENTE"
항상 그녀를 괴롭힌, 가슴에 비어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
.


그녀의 비참한 일생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내내 마음 깊은 곳에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
.
.

 

 

 2011/02/07 13:35 





 


이부

포스팅 감사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정신병원은 까미유 클로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흐르는 음악에 매혹되었어요. 곡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2011/02/08 04:36:27  


산빛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본 기억이 납니다. 영화를 보고서도 로댕을 원망하고 싶었고 까미유의 재능과 열정과 사랑에 한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더구나 은은히 가슴을 파고드는 오페라의 유령의 <In Our Tears>가 까미유의 비극적 삶을 노래하는 듯 합니다 예술가의 생애뿐 아니라 그녀의 놀라운 조각품들을 다 모아온 것 같은 정성들인 포스팅에 갈채를 보냅니다 2011/02/08 05:04:06  


farland2009

'까미유 끌로델' DVD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화 자체로 큰 가치를 못 느껴 대충 보았는데 다시 한번 제대로 감상 해야 겠습니다. 인간은 결국 '필패'로 끝나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아침 이었습니다. 올리신 조각 사진은 두고 두고 감상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2011/02/08 07:02:25  


김시성

왜?? 사랑은 비극적일때가 더 아름답게 보일까요!! 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좋은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2011/02/08 10:56:30  


AnotherPhoto

출간된지는 좀 되었지만
일부러 헌책방에 가서 찾아내어
최근에 읽은 책입니다.

조각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예술가의 심리를 알고 싶어서 읽었지요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이 로댕의 작품을 재탄생시켰다는 느낌이 들었고
로댕의 배신적인 사랑에는 덧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영화 DVD를 소유하고 있지만 보기는 싫어져서 그냥 보관중... 2011/02/08 16:48:31  


Celesta

쌩루이 섬 안에 그녀가 머물다 간 곳이 있군요...
딱히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앞으로 그 곳에 가면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

로댕 박물관은 트리오님 말씀처럼 여름에, 나무가 울창할때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

오늘도 정성어린 포스트, 감사히 잘 봤습니다. ^^*

 2011/02/09 15:31:53  


데미안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보고는 가슴 아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트리오님의 해박하기 짝이 없는 지식에 두통을 앓게 됐습니다. 저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 주신 당신... 감사 드립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문외한.. 2011/06/11 06:23:06  


trio

데미안님의 댓글을 보고 저도 다시 이 포스팅을 보게 되어 감사합니다.
파리여행...생루이섬 안에서 우연히 그녀가 살았던 집을 보았을 때...지금도 그 감격이
생생합니다.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지인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감사합니다. 데미안님, 그런데 방이 없으시군요. 2011/06/11 09:12:13  


술래

까미유 클로델 영화를 보면서 로뎅으로 인해 망가지는 까미유의 천재성이 얼마나 안타깝고 아깝던지요.
까미유는 태어날때부터 그 어머니로부터의 거절감이 크게 내재해 있지 않나 싶더군요.

영화에서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는것 처럼 보이던 남 동생이 정작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장면이 이해가 좀 안됬어요.
사실 의사는 입원까지 필요치 않다고 하는데도...
참 슬픈 인생을 살다간 천재 조각가였지요?

우연히 까미유가 살던 집을 발견했을때의 그 기쁨...
짐작이 가요. 2011/08/22 14:32:32  


trio

술래님 덕분에 저도 이 포스팅을 다시 보게 됩니다.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은 저를 항상 슬프게 하는 여인이라 또 가슴이 메입니다.

위의 댓글들을 다시 읽다가 흐르는 음악, "In Our Tears"에 대해서 정정합니다.
이 음악을 저도 처음에는 뮤지칼 오페라 유령에 나온 음악으로 잘못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뮤지칼에 이 노래가 나온 것같지 않아 dvd를 다시 보았습니다.

흔히들 "시크릿 가든"이라는 한국의 드라마에서 나온 음악이라고 해서
저는 보지 못한 드라마이기에 누가 부른 것인가 궁금해서 오늘 찬찬히 검색해보니
Secret Garden이라는 노르웨이 출신 가수 Fionnuala Sherry & Rolf Lovland가
부른 것이더군요.
그 듀오가 부른 다른 노래들도 아주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들이었습니다.

 2011/08/22 21:19:43  


장혜숙

글과 사진 잘봅니다 사진실력이 프로페셔널인거같습니다. 로댕미술관에서 작품을접했을때보다 더 리얼하고 글과함께읽으니 더감동적입니다. 예전에 까미유 끌로델 Dvd를 보고 너무 가슴아파했었는데 ㅡㅡ그녀가 그녀의 비극적 사랑을 좀더 예술적으로 끌어 들여 그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할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때문에 더 안타깝습니다  2013/01/30 23:29:57  


김경덕

정신병원 제도가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너무 애잔합니다. 2013/06/25 10:01:57  


황남식

까미유 끌로델.예전 미술 교과서에서 끌로델의 사진은 독특했습니다.붕 뜬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고요.프랑스가 아니 영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작품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평생 로댕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다는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죽도록 사랑했던 스승이자 연인인 로댕.
한 여인의 사랑이 작품을 극대화한지도 모르겠고요.
전 이영화를 못 봤는데 꼭 볼겁니다.

좋아하는 줄리엣 비노쉬도 보고요.

글을 읽으면서 안개처럼 깔리는 음악에 잠깐 취하기도 합니다. 2014/01/11 03:4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