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코가 잘린 "피아노의 시인" 쇼팡의 조각상...몽소공원에서

후조 2015. 8. 3. 09:30


   

 

코가 잘린 "피아노의 시인" 쇼팡의 조각상

 

 


2010년 1월,  파리의 몽소 공원에 쇼팡의 조각상이 있고

페르 라셰즈 묘지에 쇼팡의 무덤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숙소에서 나와 쇼팡을 찾아 나섰습니다. 

 

1810년 3월 1일 폴란드의 수도 Warsaw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팡은

어려서 부터 피아노의 신동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1830년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Warsaw를 떠나 비엔나를 거처

그 이듬 해 파리에 입성하지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며 활동하다가

그리워하던 고국 폴란드에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까운 젊은 나이인 39세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쇼팡...

  

그가 연상의 여인 조르쥬 상드와 신병 치료차

애정의 도피를 한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도 가 보고 싶은데

그곳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파리의 몽소 공원(Parc Monceau)과 페르 라셰즈(Per Lachaise) 묘지에서

그의 자취를 찾아 보았습니다.

 



 

 

 

밤새 살짝 내린 하얀 눈이 덮여 있는 파리의 몽소 공원 입구입니다.

 

한산한 공원에는 군데 군데 겨울의 차가운 날씨 만큼

쓸쓸해 보이는 조각상들이 놓여 있었는데

입구에서 부터 둘러 보아도 쇼팡의 조각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 덮인 몽소 공원...

 

멀리 어린이들을 위한 미끄럼틀의 미끄럼 대에

눈이 하얗게 덮여있었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뛰는 사람들도 간간히 지나가는데

공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야 가장 구석진 곳에서

쇼팡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쇼팡이 피아노를 치고 있고

피아노 앞에는 멋진 여인(아마도 조르쥬 상드이겠지요?)이 앉아 있고

피아노 위에서는 천사가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이라 관광객들도 별로 없었고 산책을 하거나 뛰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쇼팡의 조각상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이 조각상을 찾아 멀리 대서양을 건너 온 나그네에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니 쇼팡의 코가 없어졌고

여인의 오른 팔도 다시 붙였는지 색갈이 달랐습니다.

 

파리같은 예술의 도시에서 누가 이렇게

피아노의 시인 쇼팡의 조각상을 부수고 있는지...

 

쇼팡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어디에서나 연주되고 있는데

파리의 몽소 공원 구석에 있는 이 조각상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러나 뻬르 라쉐즈 공동 묘지에 갔을 때는 

그의 무덤은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서 이 넓은 묘지에서도

그의 무덤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쇼팡의 무덤에는 하얀 대리석의 뮤즈 상이 위에 있고

참배객들이 가져 온 꽃이 항상 이렇게 있다고 합니다.

겨울이라 추워서 다 시들어 있었지만...

 

이 무덤은 조르쥬 상드의 딸, 솔랑즈의 남편이던 클레상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상드의 사위라고 하면 더 쉬운데...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돌아온 후 쇼팡과 헤어진 상드는

장례식에도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는데 묘를 만드는데는

관여를 했나 봅니다.

 

  

 




 

묘비 아랫 부분의 쇼팡의 얼굴은 죽은 후 바로

마스크를 떠서 만든 것이기에 실제 얼굴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합니다.

 

 

쇼팡의 장례식은 마들렌 성당(La Madeleine)에서 거행되었는데

쇼팡 자신의 <장송 행진곡>으로 장례식이 시작되었고

그의 전주곡 중 4번과 6번이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부터 연약하였고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에

빨리 죽을 것을 예상하고 <장송 행진곡>을 미리 작곡하였는지...

 


 

마들렌 성당(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애국자였던 쇼팡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는 한

폴란드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여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결국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이곳에 묻헬 때 폴란드를 떠나던 날 친구들이 기념으로 준 폴란드 땅의

흙이 관 위에 뿌려 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못하는가 봅니다.

 

 

또한 그의 유언에 따라 몸은 파리에 묻혔지만

그의 심장은 장례식 후에 그의 누나가 병에 담아 폴란드에 가지고 가서

Warsaw의 성 십자가 성당의 기둥 밑 황금 단지 속에

담겨져 안치 되어 있습니다.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의 기둥

Pillar in Warsaw's Holy Cross Church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이 기둥 밑 단지에는 쇼팡의 심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의 현판에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21절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너무 유명하다 보니 죽어서도 몸과 심장이 따로 따로...

 

몸 보다는 심장이 고국에 돌아 갔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고국을 그리워한 것은 그의 마음(심장)이었을테니까요.

 

 

 


 

 

 
 

에디뜨 삐아쁘의 무덤에는 진한 갈색 고양이가 있었는데

여기에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쇼팡이 그토록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줄을 알고 있는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쇼팡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Pianist>의 주제 음악이었던 쇼팡의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쇼팡의 Noctune in C-Sharp Minor입니다.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지 160여년이나 되었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요?


2011/02/15 09:42 

 
  


 


사슴의 정원

1970년대말 대학시절이 박대통령 시해 등으로 어지러웠습니다.

야상곡은 루빈슈타인의 연주가 가장 유명하지만 대학교때 듣던 판에 타마스 바사리의 연주도 신선감이 있어 좋아 하였습니다.

버클리 대학원 시절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하는 타마스 바사리 쇼팽 연주회 2장을 외국인기숙사에서 무료로 받아서 백인 여학생과 다녀 온 이야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여기 다 옮기기 그래서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의 제 블로그의 글 "쇼팽연주회의 에피소드"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chosun.com/shkong78/5068368

 2011/02/15 10:14:06  


trio

방금 님의 방에 가서 그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잊지 못하실 젊은 날의 추억이겠습니다.
그 백인 여학생은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ㅎㅎㅎ
소중한 추억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슴의 정원님! 2011/02/15 12:13:13  


Celesta

쇼팽의 코는 최근에 저리 회손된 듯 싶네요.
예전엔 멀쩡했는데... ㅠ.ㅠ
작년에 쇼팽 전시회가 이곳 로맨틱 박물관에서 있었어요.
그 곳에 다녀온 후 포스팅 했는데, 시간 나시면 한 번 와서 봐주세요. ^^

몽쏘공원, 참 아름다운 공원인데,
다음에 파리 방문은 꼭 5월~9월 사이에 갖으시기를... ^^

뻬르라세즈 뿐 아니라 몽빠르나스 묘지에도 길고양이들이 많이 살더군요.
녀석들에게 밥을 주시는 분들도 있고....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쇼팽과 함께 잘 감상하고 갑니다~! ^^

 2011/02/15 14:03:43  


trio

1년전 사진이예요. 지금쯤 고쳤는지 모르겠네요.
그 때 보마르세 동상도 수리하고 있는지 없었는데...
쇼팡 전시회에 관한 포스팅을 못 찾았어요.
포스팅 번호를 알려주실래요?
감사합니다. 첼님! 2011/02/16 01:5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