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Cathedral)입니다.
이 성당은 1163년에 기공해서 182년 후 1345년에 완공된,
800년의 프랑스 역사를 담고 있는 파리의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파리 특파원 김성현기자님의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교체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에 파리 여행기로 올렸던 포스팅을 수정하여 올립니다.
1월인데 노트르담 성당 앞에는 아직 Christmas Tree가 있었습니다.
파리를 여행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일주일 간의 파리 여행은 제 일생의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일주일 여행을 하고 15번째의 포스팅을 올리고 있으니
본전(?)을 뽑고도 남는 것이 아닌지요.
1월의 파리는 여행하기에는 조금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날씨의 변화가 거의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저에게는 오히려 코트 깃을 올리고 추워서 웅크리며
길 가에서 파는 따끈한 와인을 마시며 파리의 길거리를 누볐던 시간들이
새록 새록 생각이 나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마리 앙뚜아네뜨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잠시 갇혀 있었다는 감옥인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를 둘러 보고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걸어 갔는데
세느 강 옆의 노트르담 성당 앞에는 대형 Christmas Tree가 아직 남아 있었고
성당 입구에는 젊은 아랍계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던 앉은 뱅이 거지에게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로
앉은 뱅이를 일으켰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 파리에 이런 면이 있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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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 들어가니 신부님이 예배를 집전하시는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조용히 구경을 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것도 허용되어서 무례하게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직 남아 있었고 화려한 스테인드 그래스의 창문,
백년전쟁(1337-1453) 때 프랑스를 구해낸 전설적인 영웅이며
로마 카톨릭의 성녀인 잔 다크(1412-1431)의 像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트르담 성당" 하면 <노트르담의 곱추>가 생각나는 것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그 만큼 유명한 까닭일 것입니다.
조각가 로댕 박물관 정원에 있는 로댕의 조각작품
"빅토르 위고"
1831년에 출판된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명작,
<노트르담의 곱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는 15세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주 무대로 한 소설입니다. 성당 안에서 거주하면서 성당의 종을 치는 곱추 콰지모도,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 주교이며 연금술을 연구하는 클로드 프롤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삼각관계를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부당한 형벌제도, 판사들의 특권의식, 성직자들의 위선, 극형을 관람하는 것을 생활의 큰 즐거움으로 알았던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된 삶을 적나나하게 펼치고 있는 낭만적인 소설이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후의 명작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명 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과 섹시한 미모의 이태리의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Gina Lollobrigida)가 주연하는 1956년에 나온 영화가 있고
그 이전에도 흑백 영화가 있었고 TV에 방영된 영화, Walt Disney 만화 영화,
뮤지칼, 발레 등의 소재가 되어왔는데 저는 노트르담 성당하면 당연히
안소니 퀸이 곱추 콰지모도로 열연을 하던 영화가 생각나는데
김기자님은 뮤지칼이 생각나신다고 하니 김기자님의 말대로
역시 세대 차이인 것같습니다.
내용을 간추려 보면 곱추이며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클로드 프롤로를 양 아버지로 섬기며 성당의 종을 치며
살고 있는데 만우절 축제(Feast of Fools, Epiphany)에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하다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Esmeralda)의 아름다음에 반해 버립니다.
한편 에스메랄다는 집시(Gypsy)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체
떠돌아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클로드 프롤로(Claude Frollo)는 자신의 신분이 부 주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페뷔스(Phoebus) 근위대장을
여전히 사모하고 있으므로 에스메랄다를 연모하는 프롤로는 질투에 불 타서
페뷔스를 죽이는데 에스메랄다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씁니다.
그녀가 처형 당하려고 할 때 성당의 종의 줄을 타고 내려 온 콰지모도가
그녀를 구해서 성전 꼭대기 방(성소)에 숨겨 놓습니다.
성소(Sanctuary)는 성역으로 아무나 접근할 수 없으니까
'Sanctuary, Sanctuary'를 외치면서...
그러나 에스메랄다는 결국 처형 당하고 프롤로 신부를
성당 꼭대기에서 밀쳐 내어 죽게 한 곱추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의 시신 옆에 누워서 있다가 굶어서 죽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이 에스메랄다의 시신이 놓였던 Montfaucon(묘지)에서
두 사람의 해골을 발견하여 그 해골을 떼어 놓으려고 하니
콰지모도의 해골이 먼지로 변해 버립니다.
죽음으로 비로서 이룬
노트르담 성당의 종치기 곱추 콰지모도의 사랑...
그런데 노트르담 성당의 종은 사실상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나온 이 후에 만들어진 종이라고 합니다.
어쨋거나 최근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교체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주교 파트릭 자켕(Rev. Patrick Jacquin)은 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르담 종소리를 보강하려는 것이며 유적으로서의 종이 아니라 실지로 타종을 할 목적 때문이라는
교체의 이유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1856년에 구리 합금으로 제작된 이 성당의 북쪽 탑의 종 4개는 프랑스의 성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Angélique-Françoise, Antoinette-Charlotte, Hyacinthe-Jeanne and Denise-David)
너무 오래 되어서 소리가 변하여 많은 비난을 받아 오다가
2013년 성당 건립 850주년을 앞두고 250만 유로(미화 350만불)을 들여서
4개의 종을 녹여 9개의 종으로 새롭게 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4개의 종은 그대로 보존하고 새로 만들면 안되는지...
그래도 이번 교체 작업에서 "에마뉘엘 (Emmanuel)"이라는
1680년에 제작된 남쪽 탑의 종은 그대로 보존된다고 하는데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세로 선종(善終)하였을 당시
84번의 종소리가 울렸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노트르담 성당에는 20개의 종이 있었는데
혁명군이 "에마뉘엘"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녹여 무기로 만들었다고 하니
역시 전쟁이나 혁명같은 사건들은 문화의 파괴범입니다.
파리에 에펠탑이 건설될 때도 작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 등
시민들의 반대가 심했었다고 합니다.
에펠탑의 건설을 심하게 반대하던 모파상은 에펠탑이 건설된 후에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파리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은 여기 뿐이지 않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종 교체에 대해서도 종 자체가 문화 유산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는
교체에 대한 시민 운동가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즈에 보니 브라질의 재즈 싱어로 파리에 살고 있는
Mr. Fernando Bagrielli는 교황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My very dear Benedict XVI, it pains me immensely to face the risk of losing
these treasures of France forever, which are so very dear to me.”
또한 무용가 Ghislaine Avan은
“The bells are a resonance, a song, a vibration.
Changing them is complete nonsense.” 라고 말하고 있지만
종을 교체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인 것같습니다.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왠지 긴 여운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위로하는 힘이 있는데
파리의 상징으로 역사적인 순간 마다 파리 시내에 울려 퍼졌고 소설 속의 곱추 종치기 콰지모도가
대롱 대롱 메달리듯이 쳤던 노트르담 성당의 종이
이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오지랖인 트리오가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교체한다는 소식에
우리 나라 명동 성당의 종이 아니라 종로 보신각의 종이 왠지 먼저 생각났습니다.
종로 화신백화점 건너편에 있던 (제 기억으로는),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던 보신각 종이
아직도 있나 검색을 했더니 역시 그 종(鐘)도 이미 타종을 멈추고 서울 국립 중앙박물관 마당에
보관되어 긴 휴식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보물 2호인 보신각의 종도 역사와 함께
많은 시련이 있었던 것을 검색을 해보고 알았습니다.
세조 때(1468년)에 주조한 보신각 종은 정릉사에서 원각사로,
다시 숭례문 안으로 옮겨졌다가(1536년 중종 31년),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었고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이 걸리고 "보신각 종"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6.25 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에 중건하였고 1980년에 다시
2층 종루로 복원하였는데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현재 보신각에 두었고
원래의 종은 국립 중앙 박물관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신각이라는 현판은 원래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었으나
6.25전쟁으로 전소되고 현재의 현판은 1953년 중건 때 내 걸은 것으로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쓰신 것이라고 합니다.
매년 제야(際夜)에 33번의 타종을 하였던 원래의 보신각 종의 종소리는
긴 침묵에 들어갔고 1985년부터 새로운 종이 보신각에 있다는 것을
서울에 계시는 분들이야 다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이번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장소가 여러번 바뀌어진 국립 중앙박물관도
아직 가 보지 못한 트리오입니다.
Matthaus Passion 39 Aria A-Erbaume dich
바흐의 "마태 수난곡" 중의 아리아, "주여, 자비를 주소서"입니다.
2011/11/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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