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은 빠리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다양하게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여행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곳에서 한 나절 밖에는 머물지 못했으니...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지, 여행을 하니까 사진을 찍는 것인지...
좀 부끄럽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사진 찍기를 허용하는 것이 감사해서
사진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찍어댄 사진들...
오르세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그림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수련의 화가, 빛의 화가로 잘 알려진 끌로드 모네는
86세까지 살면서 백내장으로 눈이 거의 실명할 지경까지 그림을 그렸으니
다작(多作)인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말년에는 풍경화, 특히 수련이 있는 정원 등을 많이 그렸지만
초기에는 모델이었던 까미유를 만나 그녀와 아들을 모델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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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Camille Doncieux, 1847-1879)는 1865년 18세의 나이에
25세의 끌로드 모네의 모델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르노아르와 마네의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모네와 까미유는 곧 사랑에 빠지고 1867년에는 첫 아이를 낳았지만
까미유를 마땅치 않게 여긴 끌로드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고(결혼은 1870년에)
아버지로 부터 받던 재정적 지원도 끊겨 버려 그들은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까미유는 첫째 아들 장을 낳고 둘째 아들 미셀을 1878년에 낳았지만
둘째를 출산하고는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1879년 9월 5일 32세의 젊은,
안타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르세에서 본 <임종을 맞는 까미유 모네>, 1879년
모네의 초기의 작품인 병상에서 죽어가는,
아니 죽은 아내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을 오래 전에 보았을 때는
어느 누구의 임종도 지켜 본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모네에 대한 마음이 "어쩌면 그럴 수가..."라는 생각에 야속하여
막연히 그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년 초에 가장 사랑하던 친구의 임종의 순간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5년동안 폐암을 투병하면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버티던 친구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순간에는 가쁘게 몰아 쉬던 숨을 조용히 멈추었습니다.
흔히 드라마에서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 주위에 있던 가족들이 일제히 크게 울던데...
친구가 숨을 거두자 요란하던 산소 호흡기가 멈추고
침상을 지키던 가족들의 안타까운 흐느낌도 멎어버리고 싸늘한 정적이 잠간 동안 방 안을 맴돌았습니다.
아직 몸은 따스했지만 얼굴 빛은 벌써 변하고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과의 사이는 불과 일초... 얼마나 허망했는지...
그 짧은 순간에 친구는 사랑하던 남편과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 것입니다.
믿는 성도이기에 우리에게는 다시 만날 소망이 있지만...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모네의 이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서 등잔에 넣을 기름도 살 수 없던 시절,
먹을 빵을 살 동전 한 잎도 없어서 친구들에게 원조를 구걸하던 시절에
젊디 젊은 아내가 죽어가고 있었으니 모네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비평가 클레망소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짧은 순간의 빛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한 모네의 예술혼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구 뛰는 가슴을 누르며 정신없이 재빠르게 붓을 놀려댔을 것입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빨리 붓을 움직였을까...
짐작이 됩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야, 붓을 내려 놓고 나서야, 슬픔은 서서히, 천천히,
그리고 두고 두고 화가의 가슴을 휘감으며
가슴 깊이 슬픔이 강물처럼 흘렀을 것입니다.
*****
10월이 가고 벌써 11월도 다 지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 계절에는 삶의 무상함을,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합니다.
무성했던 푸른 잎이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하여 우리에게 큰 기쁨을 허락하는 순간도 잠간이고
곧 이어 땅에 떨구어져 나딩구는 퇴색한 낙옆들.. 그리고 나목들...
머지않아 눈이 내려 하얀 옷으로 단장하게 될 나무들...
그러나 계절은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시 봄이 오지만 인생의 봄은 다시 돌아 오지 않으니
젊은 아내의 죽음을 직면한 모네의 슬픔, 침상에 누워있는 죽은 아내의 모습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모네의 비통한 심정이 가슴으로 느껴져서 몹시 서글픈 트리오입니다.
*****
오르세에서 찍어 온 모네의 그림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흔히 인터넷에서나 화첩을 통해 많이 보는 그림이지만
그래도 오르세에서 열심히 찍어 왔으니...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2악장 Adagio ma non troppo를
쟈클린 뒤프레가 연주합니다.
<신세계에서>라는 교향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체코의 작곡가 드볼작이
미국에 살았던 1894-95사이에 작곡한 유일한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는
젊은 날 사랑했던 여인이며 처형인 조세피나의 우환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젖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특히 2악장 Adagio ma non troppo는 그러한 드볼작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브람스는 이 첼로 협주곡의 악보를 보고
"나는 왜 첼로로 이렇게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라고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2012/11/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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