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몹시 춥다지요?
74년 1월 김포공항을 떠날 때의 날씨가 섭씨 영하 17도,
그래도 엘에이는 따뜻하다고 해서 얇은 모직 투피스를 맞춰 입고
가족들의 눈물겨운 배웅을 뒤로하고 철없이 떠나 온 트리오....ㅋㅋ
그 후 변화없는 계절이 참을 수 없었던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오히려 계속되는 겨울비로 질척거리거나 추운 날씨가
싫어진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싶다는
소녀같은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ㅋㅋ
3년 전 1월에 갔던 빠리, 언젠가 다시 가고 싶었던 빠리,
노틀담 성당 옆 어느 골목, 길 가에서 파는 뜨거운 와인(? Vin chaud)을
다시 마시고 싶다는 제법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겨울의 빠리를 찾아 가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콘도'라고 부르는, 일종의 리조트를 단기 소유하는 제도를
이곳에서는 'Timeshare'라고 하는데 리조트를 일주일 단위로
1주일이나 2주일...그 이상 소유할 수 있는 휴가용 단기 부동산입니다.
그런 소유권이 있으면 한 군데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해외 다른 곳의 리조트도 교환(exchange) 방식을 통해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일주일 동안
취사도구가 갖추어진 호텔같은 리조트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수년 전 여행에 필이 꽃혀있던 트리오가 덜컥 저질렀던 일인데
사실 여름이나 봄 가을에는 교환이 상당히 어려워 예약하는 일도 쉽지 않고
리조트만 해결된다고 아무 곳이나 얼른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팔려고 해도 불경기로 팔리지도 않고...골치덩이? 입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의외로 쉽게 교환이 가능합니다.
이번에도 온라인에서 알아보니 메트로 1번? 종점인
파리 근교 뱅센(Vincennes)에 있는 리조트에 예약이 가능하여
부랴부랴...겨울 나그네가 된 트리오 입니다.
년말 쯤 예약을 하고 나서, 이 추운 겨울에, 뜬금없이, 카카오톡으로,
"빠리(Paris)에 날라오지 않을래?" 라는 문자를 서울로 날렸는데
선뜻, "무조건 갈께..."라고 대답해 준 고마운 동생...
서로 헤어져 지낸 세월이 오래지만
오랫 만에 만나도 세월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자매...
더구나 요즘은 소통이 다양해져서 쉽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드디어 드골 국제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탙출도 설레이는데 더구나 동생을 낯선 땅에서 만나기도 했으니
마냥 가슴 부푼 트리오입니다.
동생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120%를 사용하고 있는,
작은 체구이지만 당당한 내과전문의이며 아마추어 서양화가입니다.
개업을 하고 하루 백명이 훨씬 넘는 환자를 보면서 10 여년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기 시작할 즈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술대학 교수한테 직접 사사하면서 그림 그리기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드디어는 가지고 있는 건물에 화랑도 열어서 큐레이터를 두고 운영...아무런 이익은 없다고...하면서
미술대학원 경영학과를 수료하는 등 취미를 넘어서 거의 전문가적인 수준에 이른 의사 화가...
입상경력도 많고...전시회도 많이 하고....온라인에서 화가동우회인 카페도 운영하고...
동생에 대해서는 "의술과 예술...어느 여(女)의사 이야기"라는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예술과 의술의 만남전> 안국갤러리 출품작, 생명 잉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동생의 그림 "잉태" 72.7 x 60.6(cm)
Acryle and mixed media on canvas, 2010
초기에는 해바라기, 장미, 들꽃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는 "잉태", "인간의 굴레", "생명의 노래", "대지의 노래" 등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후 6시까지는 진료를 하고 그 후부터는 캔바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열정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그러나 세월은 어쩔 수 없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에 한계가 오는 것을
실감하며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쉬면서...자신도 돌보면서...지내라고,
그러다가 네가 먼저 병이 나면 누가 알아주느냐고, 주위에서도
많이들 권면하고 있지만 남편도 의사이고 사위도, 아들도 의사를 둔 동생이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면서 하는 일들을
아직은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라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잦아졌답니다.
어디를 갈까......빠리에서 가고 싶은 곳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고 하니
그런 것들을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 언니가 가는 대로 따라 다니는 것으로 족하다고,
그럴 정도로 바쁜 생활에 지쳐있는 동생이
백수(?)인 트리오한테는 한없이 부럽고 자랑스러운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합니다.
더구나 얼마 전 항상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국민건강을 위해 애쓰시던
연세대학교의 황수관박사의 별세 소식은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의사가...그렇게 허무하게 가시다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까운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안다고 해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으니...
우리 인생이 참으로 어리석고 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을 그릴 줄도, 글로 쓸 줄도 모르지만
낯선 도시를 헤메이면서
미웁지만, 그래도 가엾고, 그리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굿나잇 2. 풍향기 3. 얼어붙은 눈물 4. 언 가슴 5. 보리수 6. 넘쳐 흐르는 눈물
7. 냇가에서 8. 회상 9. 도깨비불 10. 휴식 11. 봄날의 꿈 12. 고독
13. 우편마차 14. 흰 머리 15. 까마귀 16. 마지막 희망 17. 마을에서 18. 폭풍의 아침
19. 환영(幻影) 20. 이정표 21. 여인숙 22. 용기 23. 幻影의 태양 24. 거리의 악사
겨울 나그네...
겨울에 들어야 더욱 감동스러운 노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며 피아노도 없이 친구집을 전전하며 작곡을 하던
슈베르트(Franz P. Schubert, 1797-1828)가 31세의
젊은 나이의 생을 마감하기 1년 전 1827년에 작곡한 곡입니다.
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시(連詩)로 작곡된, 우리에게는 "보리수"로 익히 알려진
24곡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Op. 81"는
사랑의 실패로 살 소망을 잃은 한 청년이 눈보라 치는 겨울에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 방황하며 체험한 여러가지의 일들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청년은 곧 슈베르트 자신인지...그는 이 노래에 자신의 삶을 실어서
만인에게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그래서 이 노래가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투브에 Gerald Martin Moore의 반주로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가 부르는 명반이 통채로 올려져 있네요.
고맙게도...
(2013/01/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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