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좁고 답답한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연히 다르게 파리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넓은 도로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지하철(메트로), 버스, 고속전철 등 교통망이 잘 되어 있어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여행하기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인 건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이
파리의 매력인 것같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파리는 왕정의 위용이 사라지고
루브르궁과 같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아무렇게나 지어진 허름한 건물들과 뒤석여서
무질서하고 좁은 길에 상, 하수도 시설도 없고 녹지도 없어서
볼 품없는 도시, 생활하기에 불편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을 런던에서 보냈던 나폴레옹 3세(1808-1873)는
오래 전부터 파리의 재건설을 구상하다가 황제에 오르자 새로운 파리 건설에 착수하면서
1853년에 오스만 남작(Baron Haussmann)을 파리시장으로 임명하고
파리를 재건설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대로를 만들고 각지에 녹지를 만들고 상, 하수도를 건설하고
노틀담 성당과 같은 역사적인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보수, 수리하고
주택을 짓고 각종 공공 시설과 문화시설을 건설하고
설계를 공모하여 건설된 오페라 하우스 등 새로 지은 주요 건물들은
대로가 끝나는 위치에 있게 하여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등...
.
비록 도시의 재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 피라시민들의 원성도 높았지만
파리의 도시계획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도 파리를 불 태우라는
히틀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사랑하였던
파리 점령군 독일 사령관 디트리히 폰 숄티츠의 불복종으로 말미암아
파리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면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면
도시계획 이전의 파리의 모습과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0년 전...그들은 벌써 도시계획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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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에 있는 카루젤 광장(Place du Carrousel)에는
나폴레옹 1세의 수 많은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1808년에 완성된 카루젤 개선문이 있고
개선문을 지나면 루이 14세의 동상이 오른쪽에 있고
루브르 박물관을 들어가는 입구로 사용되는
유리로 만든 피라밋 모양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Pyramide du Louvre
1984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명으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 M. Pei가 설계하여 1989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역사와 전통과 예술의 도시에 과감하게 아울어 놓은 초 현대식 건물,
1899년에 세워진 에펠탑도 시민들의 반대가 대단했다는데
이 건축물, 그것도 이집트를 상징하는 피라밋을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울 때
파리시민들은 어떤 반대를 했을까...궁금해 집니다.
건축가 페이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루브르 앞에
이집트의 피라밋 모양의 건축물을 유리로 만들었을까...
루브르에 소장된 수 많은 예술품들이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ㅋㅋ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의 대부분의 소장품이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 것들이라는 비난을
프랑스 정부에 쏟아 놓을지라도 어자피 역사는 피 흘리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투쟁의 역사이기에 이제는 루브르의 Pyramide du Louvre는
파리를 대표하는, 그리고 루브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용은 파리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우리나라 경복궁 앞에 이런 현대식 건물을 지어 놓는다면 어떨까?
역사보존의 차원에서라며 반대가 만만찮겠지...
여행하면서는 아는 만큼 보고, 아는 만큼 듣는다고 합니다.
루브르에 가면 방대한 규모에 놀라고, 많은 인파에 놀라고,
도무지 이 많은 사람들이 미술(예술) 애호가인가, 의심이 되면서
이들이 왜 이곳에 오는가가 궁금해지고,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 지 망설이다가
몇몇 대표작을 찾아 보기만도 시간이 만만찮게 걸리고,
수 많은 인파에 밀려 다니고 나면
얼마 보지도 못하고 피곤해져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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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가장 감명깊게 본 작품은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유리 피라밋 입구에서 내려가 오른 쪽 드농관에 들어가서 맨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면
바람에 휘날리는 옷을 펄럭이며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그러나
목도 없고 팔도 없는 거대한 여신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니케 (Nike, 영어발음은 나이키)는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이름입니다.
뱃머리에 내려 앉으려는 모습을 표현한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은
헬레니즘 조각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1863년 프랑스의 탐험가들에 의해
북(北) 에게 해(海)의 그리스의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기원전 2세기 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작자는 물론 미상이고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라는 타이틀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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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스포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시대,
이 니케 여신상을 보면서 세계적인 스포츠용 상품회사인 나이키 회사를 연상했었는데
포스팅을 위해 검색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조각상과 함께
이미 나이키 회사에 대해 올려 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비슷한 면도 많으니까...
많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이 나이키 회사의 후원을 받아,
"움직이는 광고" 역활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골프의 황제(지금도?)인 타이거 우드는
나이키 회사에서 나이키 상표 뿐만 아니라 타이거 우드의 이니셜(TW)까지 새긴
셔츠나 모자 등을 항상 입고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72년에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창립된 회사,
필 나이트(Phillip Knight)와 빌 보워만(Bill Bowerman)이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회사인데
1978년에 공식적으로 나이키(Nike)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날라갈 듯한 날렵한 로고는
디자인을 공부하던 학생 캐롤린 데이비드슨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보고 고안한 것이라고 하는데
캐롤린이 본 승리의 여신상은 루브르에 전시된 여신상이 아니라
그리스의 에베소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에베소 유적지에서 발견된 승리의 여신상
(image from web)
현재 나이키 회사는 전 세계에 3만명이 넘는 직원을 가지고
나이키 풋볼, 나이키 골프, 나이키 프로, 에어 조단,
나이키 스케이트보딩, 팀 스타터, 콜 한, 헐리 인터내셔날, 엄브로, 컨버스,
나이키 바우어 등 여러 상표를 소유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용품 회사가 되어
스포츠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듯합니다.
승리의 여신 'Nike'의 위력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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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작곡가 Giuseppe Verdi(베르디, 1813-1901)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이태리의 장군 라다메스가
에디오피아와 싸워 이기고 돌아올 때 부르는 "개선 행진곡"입니다.
올 해(2013년)가 베르디의 탄생(1813년) 20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세계의 음악계에서는 베르디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할 계획으로 분주한가 봅니다.
오페라 <아이다>는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오페라인데
베르디가 이집트 총독으로부터 카이로 시내에 새로 건립할
오페라 극장 개관 기념 작품을 의뢰 받아 작곡한 곡인데
오페라 극장의 개관 기념으로 스에즈 운하의 개통의 때를 맞추어
1871년 12월 24일 초연을 하였습니다.
작곡을 의뢰 받고 곡의 소재를 찾지 못하고 있던 베르디에게
프랑스의 저명한, 이집트 고고학자인 마리아트 베이가
까미유 뒤 로클의 산문시(散文詩) 한편을 강력히 추천했고
이 산문시를 베르디와 각별히 친했던 안토니오 기스란초니가
이태리어 대본으로 각색을 하였다고 합니다.
시대적인 배경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절, 이집트는
이웃 나라인 에디오피아와 빈번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는데
전쟁은 거의 이집트의 승리로 끝났으며 많은 포로가
이집트로 잡혀 왔습니다.
그 중에 젊은 미모의 여인 아이다가 잡혀와 파라오의 공주
암네리스의 노예로 지냅니다.
아이다는 에디오피아 왕 아모나스로의 공주였지만
그녀의 신분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근위 대장인 라다메스는
아이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도
그를 좋아하고 있었고 파라오는 그를 딸의 배필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펼쳐지는 전쟁와 사랑, 질투, 조국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갈망, 나라를 배반하면서까지 선택한 사랑과 죽음....
유리로 된 피라밋을 보고 생각난 오페라 <아이다>,
4년 전 여름 오스트리아의 브라겐츠의 보덴 호수 위의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 <아이다>를 감상했던 그리운 추억때문입니다.
(2013/01/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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