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남쪽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아를...Arles,
불운한 천재화가의 광기로 인하여 고흐를 쫓아냈던 도시,
기원전 46년에 론 강가에
로마 식민지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
고대 로마시대를 연상시키는 도시,
고대극장, 고대원형경기장,
성당과 수도원,
고대 기독교인들의 돌무덤, 등등
일주일 간의 빠리여행에서 이틀을 할애하여
아를을 방문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습니다.
|
|
론강 옆에 있는 레아튀 미술관 (Musee Reattu)
|
|
Musee Reattu 바로 옆에 있는 로마시대 공동욕탕 (Thermes de Constantin)
아를 시내
론강이 흐르는 아를
고흐가 그림을 그린 곳, 도개교
생 트로핌 성당 옆 수도원에서의 전시회
아를에서 묵었던 호텔 Hotel Jvles Cesar
아를의 기차역
노란 호박 soup이 맛있었던 카페 Le Malarte
생래미 요양원 자리에 있는 Espace Van Gogh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의 소재가 되었던 카페는 문이 닫혔고...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Cafe Terrace at Night" (image from internet)
카페 옆 다른 카페는 이렇게 열려 있어서 분위기라도 맛볼 수 있었고...
아를의 미스트랄 바람을 맛보게 되었고,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지는 못했어도 론강의 거센 바람에 덜덜 떨기도 하고,
문 닫은 고흐의 카페를 찾아가고,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했던, 그리고 스스로 생래미 정신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가두고 그림조차 그리게 하지 못할까봐
차라리 아프리카의 군대에 들어갈까 고민하기도 했던 고흐,
정신발작이 나지 않을 때는 영혼을 다 하여 그림을 그렸던
생래미 정신요양원이 있던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아가고...
고흐의 숭배자도 아니면서 고흐를 쫓아다녔던 시간들...
하기사 고흐가 아니면 동과 서에서 동생과 내가 열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올리도 없었을터,
그래서 고흐의 광기가 두려워 그를 쫓아냈던 도시가
그로 인하여 지구촌 멀리서까지 관광객들 불러 들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도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고흐를 찾기 위해 올 것이고
그의 그림들의 값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계속하여 갱신할 것이고...
성경에서 말한대로 지구가 종이처럼 지축이 말리듯이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는
이 도시는 영원히 고흐를 기억할 것입니다.
아를르를 떠나 빠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눈부신 황혼
그래서인지 아를을 떠나면서
고흐의 슬픈 영혼을 아를에 남겨두고 떠나는 것같은 마음에
뜬금없이 생각난 시, 시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조선 세조 때의 관원 왕방연이 사육신에 의해 단종 복위 사건이 발각된 뒤에
1457년(세조 3년) 상왕인 노산군(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될 때
의금부 도사로서 단종을 호송하고 돌아오면서
불의의 희생이 된 단종에 대하여 신하로서의 아픈 마음을 표현한
마음 절절한 詩...
역시 예술은 고통과 슬픔의 산물인 것같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시조가 생각난 것은
100편 이상의 시조를 외우시던 친정어머니 덕분...
구정을 앞두고 더욱 그립고 보고 싶은,
우리 형제들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
그 당시 태극호라는 특급기차는 고향에 단 1분 정차,
그러므로 명절 때면 음식을 바리바리, 김장김치는 물론, 갈비찜,
각종 전, 마른 반찬, 정과, 약과, 유과와 떡.....
수 많은 짐을 일꾼까지 동원하여 1분 내에 기차에 실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택시가 그 많은 짐을 실어주지 않아서 짐은 리어카에 실고
오빠나 남동생이 리어카꾼을 따라 걸어오고 (집은 서대문이어서 그리 멀지 않았지요.)
우리들은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로댕박물관에서 본, 고흐가 아를르에서 그린 "The Blue Train" (1888)
그 당시에는 기차가 블루색이었는지...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딸들과 아들들을 만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실 때는 너무나 흐믓하고 행복하셔서
기차 안에서 가슴에 둥그런 원을 그리셨다고 하는
친정 어머니...
아를르를 떠나 빠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찍은 눈물겨운 석양
지금도 친정 형제들은 모이면 웃고 떠들다가도
언제나 파티의 마지막에는 누군가 꺼내는 어머니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그리움에 모두들 눈물을 훔친다고...
어려서 울음 끝이 길었다는 세째딸이
그 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정명절에,
세째딸이
쇼팡(Frederid Franois chopin, 1810-1849)의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2nd movement Romance-Larghetto,
Performed by the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and
Alexis Weissenberg (piano)
Conducted by Stanislaw Skrowaczewski
고흐하면 쇼팡이 생각나고
쇼팡하면 트리오가 또 가슴앓이를 하는 피아니스트...
천재적인 작곡가, 피아니스트의 가난과 고독 속에 지낸 짧은 생애...
왜 천재는 단명한지, 왜 그들은 고독하고 외롭고 가난했는지...
쇼팡의 심장이 묻혀있다는 폴랜드의 바르샤바에 있는
성십자가 성당에 꼭 가고 싶은 트리오입니다.
(2013/02/09 08:42)
|
|
|
|
|
|
|
|
|
|
|
|
|
|
|
|
|
'프랑스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옹1세의 묘가 있는 앵발리드 (0) | 2015.08.03 |
---|---|
빠리의 꼬마들 예쁘지요? 로댕박물관에서 (0) | 2015.08.03 |
아를의 여인... (0) | 2015.08.03 |
고흐를 찾아서...남 프랑스 아를에서 (0) | 2015.08.03 |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 오베르를 다녀와서 (0) | 2015.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