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세느강변, 알렉상드르 3세교를 지나 빠리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돔이 있는 건물, 앵발리드,
'앵발리드 des Invalides'라는 말은 '부상당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앵발리드의 정식 명칭은
L'Hôtel national des Invalides (The National Residence of the Invalids),
영어 Invalids의 프랑스어 발음으로 앵발리드...
워낙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이기 때문에 부상병들도 엄청 많았을 것같습니다.
요즘같은 전쟁도 아니고 포를 쏘고 총을 휘두르는 전쟁이었으니..
1676년 루이 14세 때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한
요양소로 건축하여 건설 당시에는 5천-7천명의 병사를 수용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군사박물관, 군 관계 행정기관이 있고 황금돔 교회 내부에는
나폴레옹 1세, Napoléon Bonaparte(1769-1821)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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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발리드로 들어가는 담벼락에 나폴레옹의 모습이 보이고
정원수가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여러가지 무기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전리품들인지 그 당시에 사용했던 무기들인지...
왼쪽으로 군사박물관이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어서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황금돔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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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에는 돔의 모형과 화려한 천정화,
십자가 상의 예수 그리스도 상이 있는 제단은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되었고
주위에는 나폴레옹 가족들의 묘들이 있었고
한 가운데가 둥그렇게 뚤려 있어서 아래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를
위에서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12명의 여신들로 둘러싸인 나폴레옹의 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Napoléon Bonaparte(1769-1821)은
지중해 서쪽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이태리계 가문에서 태어나
10세 때 프랑스로 건너가 유년육군사관학교를 거쳐
15세에 빠리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1년 후 졸업, 포병 소위로 임관,
그 후 그의 생애는 파란 만장하게 펼쳐집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많이 나왔지요.
일개 포병 소위로 시작하여 사령관, 제1통령을 거쳐 프랑스의 황제가 되어서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며 러시아까지 대군을 이끌고 전투를 벌렸지만...
마침내 영국군에게 투항하여 영국의 작은 섬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폐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섬의 총독에게까지 학대를 받으며 지내다가 51세의 나이에
지병(위암?)으로 1821년 5월 5일 사망, 그 후 19년이 지난 1840년 5월 어느 날
영국의 동의를 얻어 그의 유해가 프랑스에 돌아와
앵발리드에 안치될 때 모짜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빠리를 방문했을 때는 신동으로 극찬과 대환영을 받았지만
20대에 다시 빠리에 왔을 때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던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모짜르트,
프랑스의 제 1대 황제의 유해를 안치하면서 모짜르트의 음악이
연주되었다니...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당시 프랑스와 적대관계인지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프랑스제 성냥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태리북부로 진격하여
오스트리아군을 굴복시키려고 할 때 만류하는 부관들에게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다"라고 큰 소리치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그의 업적만큼이나 화려하게, 12명의 여신들에게 둘러싸여 말없이,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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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Eroica", Op. 55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일명 "영웅"
베토벤은 1804년 봄에 이 곡을 완성하고 그 당시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에게 이곡의 부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서 빠리로 보내려고 했는데
나폴레옹이 5월 18일에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린 후
악보를 마루바닥에 내동댕이 치면서,
"그 녀석도 결국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결국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라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 표지에는
Bonaparte
Ludwig van Beethoven
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공개적인 초연은 1805년 4월 7일, 비엔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작곡된지 2년 후 1806년에 출판된 악보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었다고 합니다.
"심포니아 에로이카,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서"
(2013/02/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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