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북유럽에서

비엔나 빈 분리파 전시관 제체시온 (Secession)

후조 2019. 1. 25. 23:31

 

 

 

 

 

 

제체시온(Secession)

 

제체시온이라는 말은 '단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9세기말 비엔나의 예술계에서는 틀에 박힌 예술을 단절하고
새로운 예술을 풀어내겠다는 새로운 예술운동이 일었는데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을 빈 분리파라고 한답니다.  

비엔나에 있는 '제체시온'은 빈 분리파의 전시관인데
이 전시관의 지하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을 주제로한 벽화인
베토벤 프리즈 (Beethoven Frieze)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궁금했습니다.

 

 

 

 

 

 

 

 

 

 

 

 


(image from website)
 

(Image from website)

 

 

 

제체시온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크지 않지만

아름다운 건축물로 당대 유명한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Joseph Maria Olbrich)가 설계하여

1898년에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의 예술계와의 단절을 모토로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은 

카밀로 지테,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아돌프 로스, 요제프 호프만 등의

건축가들 뿐만 아니라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의 미술가들이

참여했으며 3천 개의 월계수 잎 모양으로 만든 거대한 금빛 돔

(일명 양배추 모양의 돔: cabbage dome)은 새로운 예술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고

외관벽에 쓰여진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ehit 는 

'시대에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그러나 천정이 높은 방 3면에 그려진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가 높이 걸려 있었습니다.

 

 

 

 

 

 

 

 

 

 

 

 

 

 

 

 

 

 

 

 

 

 

길이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

 

빈 분리파 회원들은 비엔나 예술가들 중 자기들을 가장 잘 대변할 역사적인 예술가로

베토벤을 선택했다고 하지요.

그들은 베토벤을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의해서 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

베토벤 자기 스스로를 위해 창작을 한 최초의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클림트는 이런 자유로운 예술의 힘을 <베토벤 프리즈>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 헌정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원래는 1902년에 열렸던 제 14회 빈 분리파 전시회에만

일시적으로 설치하고 철거된 예정이었지만 

한 개인 소장가가 이 그림을 구입했고 오스트리아 정부가 복원해

벨베데르 궁전에 보관했다가 1986년 원래의 자리였던

제체시온 지하 1층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똑같은 크기의 복제화가 전 세계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아, 베토벤....

2010년인가... 처음으로 오스트리아를 갔을 때

잘츠부르크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다가 여행 마지막날에

숙소에서 4시간이나 걸리는 비엔나를 무리해서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한 나절을 돌아다니려고...


비엔나에 도착하기 전,  

비엔나에서 남쪽으로 26 킬로미터 떨어진 온천으로 유명하며

정원과 공원이 아름다워 옛날 왕가의 휴양지였고

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바덴 (Baden bei Wie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베토벤이 3년 여름을 지내면서 작곡을 하던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었지요.

 



 

 

 

 

 

"베토벤이 1821년, 1822년, 1823년의 여름을 이 집에서 지냈고

마지막 해에는 제 9교향곡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썼다"라는 기념판이 

현관의 문 위쪽으로 붙어 있었고 집 입구에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의 합창의 한 소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3년 여름을 지내며 이 곡을 작곡하다가 

그 다음 해 1824년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날 온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교향곡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합창교향곡을 작곡한지 3년 후 1827년에 생을 마감했네요.

베토벤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비엔나에서 22세 때부터 살다가

5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5년 간이나 비엔나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비엔나에는 그의 무덤도 있고 그의 자취가 많이 있는데

알려진대로 성격이 괴팍하였지만 비엔나 사람들은 결코

그의 천재적인 예술의 혼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존경하려니 괴팍하고, 사랑하려니 가난하고, 무시하려니 위대하다"

라는 말은 그 당시 비엔나 사람들의 베토벤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2만명이 넘는 조객들이 장지까지 행렬을 지어 따라갔다고 하지요.

 

비엔나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가 그의 합창교향곡의 마지막 장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 제체시온이라는 건물에 헌정한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것같습니다. 

원래 그림에 문외한이라 <베토벤 프리즈>라는 그림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요. ㅋ

 

 

베토벤에 관한 포스팅은 <오스트리아에서>와 <독일에서>에 여러편이 있습니다. 

후조가 유럽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