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안 돌아오는 것들이 눈부시다 해도...5월에

후조 2014. 5. 20. 09:24


 

 

 

오월이 벌써 다 지나고 있습니다.

뭐를 하면서 지냈는지, 과테말라에 다녀온 지도 벌써 3주나 지났는데

아직도 과테말라 증후군을 앓고 있다가 서둘러 여행 준비를 하면서

언듯...아, 오월이 벌써 다 지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곳 남가주는 5월인지, 봄인지, 여름인지...거의 구분이 없는 계절을 지내고 있기에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5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아쉬운 마음으로

피천득(금아)님의 수필집 <인연>에 있는 "오월"이라는 글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수필 "오월" 전문입니다.)

 

 

 

 

 

여행도 중독인지...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니...

신록의 달 오월에 떠나 원숙한 여인같은, 눅음이 우거진 6월에 돌아옵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의 인생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그렇게 '오월 속에 살아 있음을 즐거워하신 금아님도

7년 전, 5월 25일, 홀연히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5월을 좋아하셔서 5월에 떠나신 것인지...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시인 이진명(1955 - )의 시 "여행"에서 일부

 

 

 

 

 

시인은 어쩌자고 안 돌아오는 것들을 눈부시다 했을까,

그리고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라고 했울까...

비록 지난 날의 추억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 돌아오진 않는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데...

 

저는 지금 돌아올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월에....

금아님께서 홀연히 어느날 밤차를 타고 갔던 피서지에서

모래 위 에 써놓고 죽지 않고 돌아오셨다는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사랑의 고통을 얻었고 사랑의 고통을 잃었다'는

쉬운 듯 어려운 명제를 안고...

 

아, 금아님의 그 마음을 알고 싶어라!

 

****

 

 

 

 

차이코프스키의 12곡의 피아노 모음곡 <The Seasons> 중에서 "유월"입니다.

피아노로 연주된 후에는 바이올린과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됩니다.


    

 

 


dotorie

지금쯤 비행중이실지도.....
렌즈에 많이 많이 담아 오시길 바라며
벌써 사진이 기다려집니다.
 2014/05/23 10:10:35  


士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4/05/23 10:46:47  


Anne

어릴 때 할머니댁 청방(샅자리 깔린 곡물보관용 방) 대들보에 달려있던
색 줄 있던 작은바구니 옆의 씨 옥수수를 보는 것 같아 반갑네요.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2014/05/23 10:56:02  


참나무.

계절과 상관없이 차이콥스키 4계 중 6월도 좋아하고
이진명 시인도 참 많이 좋아합니다

여행준비 중이시군요
많이 보고 느끼시겠군요

편안히 다녀오시길~~~
 2014/05/23 12:18:05  


송파

집 사람이 녹색세타를 입고 있으면
왜그리도 느껴지는지~ㅎㅎ

女人의 가슴에 묻고 한없이 애무하고 싶어지는 색~ 녹색!
맞아요. 봄처녀가 분꽃 속살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헌데 트리오님께서 주신
피천득님의 “사랑의 고통을 얻었고~~~”의 글을 읽으면선
하얀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다이야반지가
왜 그리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색찬연한 빛인지 알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그날
반짝인 그 순간의 빛은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밝은 섬광이었겠죠?

다이아는 한번도 같은 빛이 없다더니~
님글이 그러신가 봐여^^
와~ 저 씨옥수수 주렁!

ps;
서유럽은 지금 노굳!
오지리나 북유럽은 지금 한참 좋겠네요?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2014/05/23 16: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