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고독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Whisler, Canada에서

후조 2014. 10. 20. 21:38

 

 

 

 

 

가을을 찾아 멀리 떠나왔습니다.

훌쩍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젊은 날에는 삶이 고단하고 때로는 지루하다고 느낄 때

몹시도 그리워하던 일이었는데

세월이 내게 이런 사치를 허락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때 그리던 일이 아닌 것같습니다.

자유함이나 낭만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였는지...

그저 외롭고 슬프기만 합니다.

비 때문인지....

 

 

 


 

 

 

바닷가를 끼고 시골길을 달리는데

고독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시골집 작은 마당에 세워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높이 들고 있는 그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을까요?

 

 

 

 

 

 

 

폭포가 있다고 해서 숲 속 좁은 길로 들어갔습니다.

제법 높은 폭포가 온 힘을 다 하여 물을 쏟아 내고 있었고

바위마다 젖은 나뭇잎들이 가을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좀채로 내리지 않는 남가주에서 온 손님인줄 아는지

도착한 날부터 내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도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에 커튼을 걷으니 이렇게 빈 가지마다 맻힌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아름답습니다.

 

계획한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오랫만에 비 속에서 차분히 가을과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비가 조금 개인듯 하여 무작정 차를 몰고

산 속을 헤메였습니다.

산을 가린 구름이 조금 걷히니

눈 덮힌 산봉우리가 구름사이로 살짝 보입니다

 

가을 산, 산길을 다니다가 피곤하면 커피 한 잔 사서 차에서 마시면서

시집詩集을 펼쳐 시를 읽기도 했습니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여유를 가져보기는 처음인 것같습니다.

 

힐링...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인줄 아는 그 분의 섭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그린 레이크...

아직 구름이 다 걷히지 않아서 그린 빛갈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하늘이 열리면 무척 아름다운 그린 색일 것같습니다.

 

하늘과 호수...

그들의 관계에 대해 잠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호수는 하늘만 바라보고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

하늘이 맑고 푸르면 호수도 맑고 푸르고

하늘이 흐리면 호수도 흐리고...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거기 있을 것같습니다.

 

 



 

 

 

 

바람의 노래

 

오세영

 

바람 소리였던가,

돌아보면

길섶의 동자꽃 하나,

물소리였던가,

돌아보면

여울가 조약돌 하나,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

울고 싶어라.

 

내 귀에 짚이는 건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세상은

갈바람 소리,

갈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

 

*****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

울고 싶어라."

어쩌면 시인은 이렇게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시를 쓰는지...

가을 산 해질녁에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아니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트리오를 슬프게 합니다.

젊은 날 명색이 문학을 공부했는데...


"시는 인간 영혼의 자연스런 목소리다.  그 영혼의 목소리는 속삭이고, 노래한다.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 곧 시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류시화시인이 엮은 시집에서)




 

 

그러나 시를 쓰지 못한다고 슬퍼하기만 하지 않겠습니다.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으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을 렌즈에 담는 것이 사진이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렌즈에 담고 싶답니다.

그리움도,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환희까지도...

그러다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먼 훗날

누군가 트리오를 "Poet of Photography"라고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꿈도 야무져...ㅋㅋ

 

 


 

 

아시지요?

트리오가 너무 좋아하는 가수...

Eva Cassidy가 부릅니다.

 




 


dotorie

제 손 좀 잡아주세요~!
사진,글,시,음악에 푹~빠져 허우적대는
제가 보이시나요?

사진으로 시를 쓰시는 트리오님.
아~ 멋있으십니다.
마냥 부럽기도.....ㅎㅎㅎ


 2014/10/24 05:01:57  


trio

어, 방금 도토리님 방에 다녀왔는데
클릭하고 돌아오니... ㅎㅎ
아직은 아니지요. 그러고 싶다는 것이지...
이곳 가을 풍경이 시인이라면 멋진 시가 쓰일 것같아요.
오랫만에 여행중에 푹 쉬고 있어요.
 2014/10/24 05:43:41  


선화

" Poet Photography " 맞습니다 맞구요~ㅎㅎ

사진에도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감성이 뚝~ 뚝~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언감생심...전 따라갈 수 없는~ㅎㅎ

아침부터 음악에 취하고요 계속 기다리며 눈으로 배우고 갑니다!! 2014/10/24 08:00:23  


Anne

아름다운 사진...
겸손한 그린 레이크도 아름답군요.
그리고 어쩜 이런 시를 찾아내셨는지....
트리오님의 사색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듯합니다. 2014/10/24 08:21:26  


cecilia

트리오님, 아무래도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신 것같아요.ㅎㅎ

저를 사랑하세요.ㅎㅎ 2014/10/24 17:35:42  


trio

에고고, 선화님,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먼 훗날...아직은 아니지요.
아침부터 취하게 해서...미안! 이 노래는 워낙 제가 좋아해서 자주 올리지요?
고마워요.
 2014/10/24 21:12:34  


trio

앤님, 이번 여행이 저한테는 힐링여행이 되었네요.
오랫만에 비가 내내 오는 곳에 있으니까 감상에 푹 젖어서...ㅎㅎ 허우적 대기도 하고...
잠도 많이 잤어요. 앤님께서도 힐링이 되는 듯하시다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이런 여행도 필요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2014/10/24 21:21:55  


trio

세실리아님, ㅎㅎ 사랑할 대상? ㅎㅎ
사랑하고 있잖아요. 자연도, 사진도... 덕분에 고독한 남자도 만나고..
물론 세실리아님도요. 제가 세실리아님을 정말 사랑해요.
The party is over... 제 감성파티는 이제 오늘이면 끝...내일 집에 돌아가네요.

서울에 잘 다녀오셨지요?
서울 다녀오신 보따리를 좀 풀으셔야지요. 고마워요.  2014/10/24 21:28:56  


참나무.

음악 사진 시..삼위일체
먼저 들리는 에바 캐시디에 제일 먼저 빠져버렸고요

Poet Photography ... + Music도 ...
지금도 이미 이루셨지만...트리오님이 소망하신다면 꼭 그리되리라 믿습니다!

'...가을 산 해질 녘은
울고 싶어라'...

그 부분 특히 절창이지요
저도 이분 시 제법 많이 올린 걸로 기억합니다만?
 2014/10/24 23:39:41  


푸나무

우와...넘 멋집니다.
사진이...특히.....

고독한 남자.....를 왜 저리 해놓은건가요? 2014/10/25 00:19:39  


멜라니

아까부터 이 포스팅을 보고 있는데 아침부터 절절합니다.
에바케시디와 고독한 남자. 비, 외로움, 詩같은 사진들..
아.. 황홀합니다 trio님.
이런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혼자있는 시간 그리고 공간..
에바 케시디의 노래..
그것도 좋아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도 때도 없이 듣는 Autume Leaves
짙어가는 가을, 오세영의 시..
이 모든 것이 조합을 이루어
정말 모든 것을 더 던져 버리고 떠나 버리고 싶습니다.
책임지세요 ㅎㅎ

trio 님의 블로그에서 접하는 Poetic Photography..
그럼요.. trio님은 이미 시같은 사진을 찍는 작가이세요..
아주 멋진.. 닮고 싶은 분
 2014/10/25 02:15:05  


벤조

우와, 대박이다! (너무 분위기 깨는 표현일까요?)
고독한 남자를 시골 집 작은 마당에서 만났다구요?
그것도 바닷가. . .
그냥 무덤덤하게 '하이!' 그러던가요?
가슴 저려. . .
 2014/10/25 05:35:06  


trio

푸나무님, 잘 지내시지요?
그 남자...왜 거기 그럭헤 서 있는지 저야 모르지요. ㅎㅎ
바로 길 가라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자리...
누군가의 작품이겠지요. 고독한 남자...참... ㅋㅋ 2014/10/25 20:51:51  


trio

멜라니님, 괜스리 오랫만에 비가 오니 감상에 빠져있었더니
저 보다 더 허우적거리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해요. ㅎ 어떻게 책임지지요?
엘에이로 오세요. 함께 사막이라도 헤멜까요? 저도 오늘 내려가니까요.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에고 부끄럽네요.
 2014/10/25 20:54:30  


trio

참나무님, 시가 너무 좋아서 잠시 감상에 빠졌었네요.
다시 글을 보니 부끄부끄~~~
오늘 집에 가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
가을 감상 파티는 끝나네요.
현지니 생일 축하해요. 현지니와의 일상이 눈에 그려지네요.
현지니만 보시기도 바쁘실텐데..감사합니다.
 2014/10/25 20:59:54  


trio

벤조님, 대박? 분위기 깨는게 아니고 기분이 좋아져버리네요. ㅎ
수술하시고 거뜬히 회복되는 모습...
그리고 이웃들에게 사랑받는 모습...보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모두가 벤조님의 내공덕분이겠지요.
빨리 완쾌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 남자, 제가 '하이'해도 대답도 안 했어요. ㅋ
가슴 저리게 해서 죄송해요.
 2014/10/25 21:01:51  


황남식

가을이군요.

이제 겨울이 시작됩니다.

최백호가 생각 납니다.
"내마음 갈곳을 잃어"

76년 중2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이 곡을 좋아했던지.
그해 연속 8주 1등 했습니다. 2014/10/29 17:45:00  


trio

네, 이제 겨울이 시작되지요?
이곳은 여전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섭씨 20도가 훨씬 넘는 날씨이지만....

그 노래 저도 좋아하지요.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셨다니 조숙하셨네요. ㅎㅎ
다만 저작권에 위반되는 것같이 아닌가 싶어서
포스팅에 한국노래는 올리지 못하고 있지요. ㅋㅋ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14/10/29 22: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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