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고향이 어디십니까?> 눈물로 쓴 KBS원로 아나운서 위진록의 자서전

후조 2014. 3. 11. 00:00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당시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이 건재합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을 당일 오전 6시 당시 중앙방송(현 KBS) 라디오를 통해 임시뉴스로

처음 전해준 아나운서였던 재미교포 위진록 선생의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와

<위진록의 클래식 초대석>이라는 책을 얼마 전 우연히 알게된,

내 블로그의 팬이라는 동갑내기 지인한테 선물로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그분의 다른 저서 <클래식은 내 마음의 발전소>라는 책을 구입하여 읽고

그 책 소개를 하려고 했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image from web)

 

저자는 1950년에 서울을 떠나셨기 때문에 모국에서는 이 분을 아시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혹시나 1950년 이북의 6.25 남침을 KBS 방송을 통하여

제일 먼저 방송했던 아나운서 위진록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은 6.25 남침 소식뿐 아니라

9.28서울 수복, 1948년 5.10선거, 1949년 백범 김구 선생 장례식의 하관식 실황중계 등

대한민국 격동기의 역사의 현장을 지킨 언론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최연소 KBS 아나운서로 일하던 중

1950년 11월 아직 전쟁 중에 한국을 떠나 일본에 있는 유엔군 총사령부방송에 파견되어

한달 예정으로 갔던 일본에서 22년을 근무하다가 유엔총사령부방송이 폐쇠되면서

그곳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미국이민을 갈 특권을 받고 197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그 후 미국에 이민와서 42년... 86세의 저자 위진록 선생은 고단한 이민생활 중에도

교포사회에서 클래식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송하고 책을 출간하여

교민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480페이지의 두툼한, 눈물로 쓰셨을 그 분의 자서전,

제목만 보고도 마음이 울컥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울고 있다. 글 쓰는 손을 멈추고 지금 84에의 늙은이가 울고 있다.

솟아나오는 눈물을 씹어 삼키며 마음속으로 흐느끼고 있다.

17세, 14세의 처녀가 그때끼지 오손도손 의좋게 서로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즐겁게 뛰어놀던 어린 동생들을 집에 두고 어려운 병에서 살아난 아버지와

조개껍질 같은 회백색 막이 덮여 실명한 한쪽 눈동자를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일에 쫓기면서 키워준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도시에서 온 낯선 사나이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동생들을 향해 뭐라고 말하면서 손을 흔들었을까." (본문에서)

 

어느 인생이 삶의 희노애락이 없을까마는 저자 위진록 선생은

일제시대와 8.15 해방, 6.25 전쟁을 거쳐 서울을 떠나 일본에서 22년,

그리고 미국에서 42년간의 이민생활... 80여년 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숨기고 싶었던 일까지 기억에 있는 것들을 모아 울면서 자서전을 쓰시면서

그 험한 세월들의 날카로운 파편에 그의 마음이 또 다시 갈기갈기 찢기우셨을 것같습니다. 

 

 

 

(image from web)

 

 

위진록...일제시대였던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가난한 지방관리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 2남 9녀나 낳고 고생하신 어머니,

두 누님이 생활고 때문에 기생으로 팔려간 이야기와 기생으로서의 생활까지 낱낱이

들추어내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개성, 평안북도 선천 등을 전전하며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1940년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였지만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1942년 3학년 때 퇴학을 당합니다.

 

그 후 1947년 KBS 제 1회 방송극 연구생 모집과 KBS 아나운서 모집에 응모하면서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력을 속이고 졸업한 것으로 허위기재했던 일은

일생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아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년간의 평양사범학교 생활은 그의 일생동안 가장 유익했던 기간으로 이곳에서

음악에 재질을 보인 그가 음악공부를 통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심취하게 되었고

많은 독서를 한 결과 훗날 책을 출간하는 등 그를 문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범학교를 중퇴하고 남신의주역 역부, 일본광고 대리점 등의 사환을 거쳐

경성역(서울역) 기차역부로 온갖 궃은 일을 하는 중에 해방을 맞았는데

경성역에서 함께 일하던 일본인 여자 세쯔코가 저자에게 "나 너를 사랑했어"라는 고백을 하고

"사요나라, 사요나라"하면서 떠났다는 에피소드...

후에 피천득님의 책 <인연>을 읽으면서 피교수님이 일본에서 알았던 여자를

훗날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에 그 때 헤어진 세쯔코를 생각했다는 대목에서

<인연>의 리뷰를 썼던 트리오...ㅎㅎ 미소가 지었졌습니다.

 

38선 분단으로 인해 남신의주에 사는 형님과는 단절되고

기생으로 있던 누님이 기녀생활을 벗어나 해방 후 혼탁한 사회에서

종로2가 골목에서 행화촌이라는 바를 겸한 작은 카바레를 경영하게되자

누님의 일을 도우면서 사회 각계층의 사람들의 실상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일제시대에 일본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던 저자는 해방 후에서야

뒤늦게 한글공부를 하면서 많은 한국문학작품을 대하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중

1946년 겨울 신춘문예에 응모했으나 아쉽게도 낙방합니다.

이듬해 1947년 KBS 제1회 '방송극 연구생' 모집에 합격, 장민호, 구민, 조남사 등과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

연속 아동극 '똘똘이의 모험'의 아저씨 역으로 발탁되어

똘똑이 역의 구민씨와 함께 우리나라 아동극의 한 장을 펼칩니다.

같은 해 9월에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학력을 허위기재해서 합격,

만 19세의 나이로 국영방송의 최연소 아나운서로 기록됩니다.

1948년 KBS 제1회 방송극 대본 공모에 입선, 김구 선생 장례식 중계등 격동기의 방송 일선에서 활약,

1950년 북한 공산군 남침소식을 최초로 방송하게 됩니다.

 

방송국에 일할 당시 조병욱 박사의 하지 중장 귀국 환송인사를 방송으로 내 보낸 일도 있었는데 

막간을 이용하여 음악을 들려주기위해 "성조기여 영원히 Stars and strips forever"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데

환송인사 후 방송이 나간 것은 쇼팽의 장송행진곡...약 40초간이나...ㅋㅋ

얼른 다시 판을 돌려 '성조기여 영원히'를 들려주었는데 불똥이 떨어질줄 알았던 대형 방송사고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지...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일화...

 

아직 전쟁 중이던 1950년 11월 저자는 한 달 예정으로

일본 도쿄의 UN군 총사령부방송(VUNC)에 파견되었으나 일본에서 22년을 살게 됩니다.

잠간 한국에 출장 중에 KBS 방송국 아나운서로 있을 때 서로 사랑했던 아나운서 최창숙과 결혼했지만

그 당시 한일간의 국교가 없었던 때인지라 아내를 일본에 데려갈 수 없었는데

아내가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오게 되어 극적인 만남....그 후 많은 사연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오끼나와에서 임원식씨가 지휘하는 시향의 연주회를 처음으로 열었던 일...

그 후 "음악의 향연"이라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오키나와에 있던 유엔 총사령부 방송이 폐쇄되면서 미국기관에 15년 이상 근문한 사람에게

미국 영주권신청 자격이 부여되어 1972년에 미국에 이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 온 후의 이민생활 이야기...

22년을 미국기관에서 일을 했지만 모은 재산도 없고 넉넉한 퇴직금도 없이

통털어 재산 1만불을 들고 미국에 오면서부터 이미 자영업을 계획했던지라

오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바닷가에 있는 햄버거 가게을 인수하여 10년간 장사를 하면서 고생한 이야기...

그렇게 고생만 하던 아내가 3년간의 암투병 후 62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 음악회참관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평양사범학교를 찾아가기도 하고

신의주에서 형수와 조카들과의 만남,

서점을 경영하면서 동네신문을 발간하기도 하고

교민들을 위해 클래식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도 하였습니다.

 

고단한 이민생활 중에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 저자...

그의 수필집 <하이! 미스터 위>(1979)가 큰 반응을 일으키고 계속하여

<이민 10년 생>(1984), <잃어버린 노래>(1993), <낙타의 속눈썹>(1997),

<위진록의 커먼센스>(1999), 평전 <5분 인물전>(2004), <위진록의 클래식초대석>(2010),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2011) 등을 출간하였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와 자식으로의 만남을 시작으로 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다시 자식을 만나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그 모든 만남과 이별 중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만남도 있을 것이고

잊지 못할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관계 속에서 물 흐르듯 세월은 흐르고

늙고 병들고 이생을 떠나고...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서 있었던 자신의 모든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들려주신 저자의 기억력과 문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부끄러운 일까지도 고백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으셨을까...

 

"'눈물 줄기가 없으면 세월을 따라 마음속 깊이 움트기 시작한

희망의 꽃망울이 시들어버린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는지 눈물 많은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눈물만은 아니었다.  희망의 눈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본문에서)

 

"슬픔을 가진 사람의 눈물은 진주보다 값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의 눈물은 그리스도의 향유보다 존귀하고,

가난한 사람의 눈물은 수정보다 아름답다."

라는 요시다 겐지로오의 수필 "무기노 오까(보리 언덕)"에 나오는 짧은 글이

평생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80세가 넘은 저자가 눈물로 쓴 이 자서전은 한 개인의 개인사라기 보다는

일제시대,, 6.25동란, 한국정부수립, 한일관계, 한미관계, 그리고 미국이민생활 등,

480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또렷이 기억하시고 집필하신

한국역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아울러 그의 클래식 음악에 관한 저서,

<위진록의 클래식 초대석>,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도

클래식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입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라는 책의 제목대로

그의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요?

저자는 워싱톤 자유아시아방송 이현기기자님과의 인터뷰에서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지만 개성, 평북 선천, 암록강 근처 남신의주, 항흥, 평양, 등등

북한의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지냈기 때문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는

북한 전체가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신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의 고향은 북한일까요?

 

가난했던 시절, 갓난아이였을 때 무슨 병이었는지 숨을 할딱거리는 아들을 안고

성당으로 달려가 신부님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셨다는 어머니...

그 신부님은 이 어린 아들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기도의 효험이었는지 병이 낫고...

저자는 오랜 세월 그 이름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갔을 때야 생각이 났고

비로서 카토릭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더 오래 오래 살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그래도 머지않아 그가 돌아갈 고향은

우리의 본향...

지금까지 그를 인도하시고 살피시고 지켜보셨던

그 분이 계시는 곳이 아닐까...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

(잠언서 16장 9절말씀)

 

"God Be with You Till We meet Again"

몰몬 테버나클 합창단이 부릅니다.

 

 


 

2014/03/11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