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너때문이야

멕시코의 어느 사원에서...

후조 2015. 6. 29. 00:06

 

어느새 6월이 다 지나가고

'초록이 흐르는 계절' 7월이 가까이 오고 있네요.

당신의 6월, 행복하셨나요?

 

 

 

 

 

잠시 멕시코 시티에 다녀왔습니다.

어느 사원... 이름을 말했는데 기억하지도 못하네요.

 

 

총대같은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있는 우리 무리들에게

입장불가, 전문적인 카메라를 가지고는 입장할 수 없다고...

아니 입장료 외에 600 페소(약 50불)을 더 내라고..ㅋ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때

영락없이 권총을 찬 군인이 연상되거든요.

마치 난동을 진압하러 온 무장군인같다고 하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요...? ㅎㅎ

제가 속한 그룹이니까 그렇지 저도 이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면

이런 무리들에게 결코 고운 눈길을 주지는 않았을 것같거든요.

 

성냥팔이 소녀같은, 아니면 詩를 좋아하는, 그래서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문정희 시인의 시 '찔레'에서)


라는 구절이나 읊조리는 문학소녀같은 (?) 트리오가

어쩌다 이 괴한들에게 잡혀와서

이런 무리에 속한 것같은 느낌?  ㅎㅎ

 

다행이 우리 멤버들은 이 포스팅을 보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러나 에고고.. 내 친구들이 보면


트리오, 너 성냥팔이 소녀같다고?  문학소녀?  할미가? 

하기사 착각은 자유이니까...


라고 할 거예요. ㅎㅎ

그래도 우리 친구들은 제가 사진찍고 다니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고 해요.

 

우리 그룹에서 저 같은 새내기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카메라를 두 대씩 메고 있으니

더구나 옷은 거의가 검정색... 찍사는 검정색 옷을 입어야 한다나? ㅋ

등에나 옆구리에는 검정색 백팩이나 가방을 메고 있고...

어슬렁거리며 두리번 두리번 어디에 렌즈를 들이댈까... ??

 

 

 

 

 

 

 

그런데 이곳은 고색창연한 사원이 아닌가...

수도승들이 조용히 묵상하던 곳...

그들의 묵상과 기도가 수 백년이 흘러왔는데...

그래서 건물은 낡고 퇴색했지만

그 의연한 모습 만으로도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평온하게 하는데...

차라리 그냥 돌아가자고...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저 같은 새내기의 의견은 감히 내세우지도 못하거든요. ㅋ

 

 

 

 

 

 

 

 

 

거의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관계자와의 가이드의 끈질긴 설득으로

드디어 입장료도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사진작가들이 멕시코 홍보차 촬영하러 온 팀이라고 했다나?

아무튼 가이드가 참 따뜻하고 성실하여 우리 모두 가이드 만세!!!

 

 

 

 

 


 

 

 

우리 무장 군인들이 드디어 총대?를 메고

음침한 긴 복도를 지나 다다른 사원의 뒷 뜰은

전날 밤에 내린 비로 신선한 공기와

아침 햇살에 빛나는 꽃들이며 울창한 나무들이 아울어져

앞에서 보기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고요하여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위기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이

조심스럽게, 조용,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아니 더 이상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무의미해져서

그냥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힐링,

우리의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것같았습니다.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뽀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멕시코의 어느 사원에서의 아침이었습니다.

 

 

 

 

 

 

 

흐르는 음악은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No. 1, in E minor, Op. 11,  

2악장 Larghetto입니다.  아래 쇼팽이 아다지오 악장이라고 언급한 악장이지요.

쇼팽은 사랑하는 고국 폴란드를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지요.

소프라노 콘스탄챠 글라드코프스카...

사랑한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그녀에 대한 감정을 키워가면서 쓴 곡이

피아노 협주곡 E단조라고 합니다.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 F단조를 먼저 작곡했고 E단조를 두 번째로 작곡했지만

이 곡이 먼저 출판되어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협주곡의 2악장에 대해서 쇼팽은 친구인 티투스에서 다음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새로 작곡할 협주곡의 아다지오 악장, 이 곡은 세게 연주할 곡이 아니다.

그보다는 낭만, 고요함, 우수를 살려야 하는 곡이다.

마음속에 천 가지쯤의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곳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맑게 개인 봄밤에 달빛를 받으며 명상하는 분위기의 곡이다.

그래서 관현악 반주 부분은 일부러 소리를 약하게 내도록 한 것이다."

(쇼팽의 전기, "쇼팽, 그의 삶과 음악"에서)

 

쇼팽은 자기가 쓴 곡에 대해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경우는 흔지 않았는데

이 곡은 콘스탄챠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도 볼 수 있다고

쇼팡의 전기 "쇼팽, 그 삶과 음악"을 쓴 제러미 니콜러스는 말하고 있지요.

어떤 연애편지가 이 보다 더 달콤할 수가 있을까요?

 

쇼팽은 1830년 10월 11일에 이 곡을 초연했으며 이 때 콘스탄차는

로시니의 <호수의 여인>에 나오는 '카바티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11월 2일 아침에 친구들이 전해준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을 가지고 폴란드를 떠났다고 하지요.

쇼팽이 떠나고 그 다음 해 1831년에 콘스탄챠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쇼팽은 39년의 짧은 생을 빠리에서 마감하지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 19년 뒤의 일을 누가 알았으리요...ㅋ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떠난 고향에

그의 심장만 돌아와 성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고

그의 몸은 빠리의 페르라쉐즈 묘지에 묻혀서 온 세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음악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멕시코 여행기 한 두편 더 올릴 예정인데

여름인지라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네요.

 


 


산성

검은 옷에 대포같은 카메라 매셨으니 무장...?
그래도 진입에 성공하셨네요.
먼나라 사원에 비쳐든 햇볕이 아름답습니다.
어디라도 피고지는 꽃들
많이 고단하시겠어요...

 2015/06/29 00:06:54  


trio

어머나, 산성님이 제 일착으로 오셨네요.
네, 좀 많이 고단하네요.
나이가 나이인지라...ㅋㅋ
그래서 다녀온지 일주일이 다 되는데 이제사 올리고 있네요.
잘 계시지요? 고마워요, 산성님!
 2015/06/29 00:13:03  


Dionysos

좋군요.
 2015/06/29 00:17:37  


trio

감사합니다. 디오니소스님!
그곳은 늦은 밤일텐에...
 2015/06/29 00:19:40  


dotorie

총대보다 산성님 말씀대로 '대포' 입니다...ㅎㅎㅎ

각나라의 입국 스탬프로 트리오님 여권이 알록달록 할 듯 합니다.
에고~ 부러워라...ㅎㅎㅎ

트리오님 다음 여행지가 궁금해 크리스탈 볼을 보니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이 보입니다....ㅋㅋㅋㅋㅋ 2015/06/29 00:24:19  


trio

ㅎㅎㅎ 맞아요. 대포예요.
저희 멤버 중에는 70이 훨씬 넘은 여자분이 계시는데
세계 각국은 물론 남극과 북극에도 다녀오더군요.
저는 거기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요.
아직 너덜거리지도 않아요.ㅋ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 기대해 볼께요.ㅎㅎ
 2015/06/29 00:55:56  


선화

왜요? 검은옷요..첨 알았어요 새들~ 뭔 동물위주로 찍는것도
아닐텐데요 ㅎㅎㅎ
역시 프로는 망원렌즈도 기관총 크기군요!! ( 제것은 작은뎅~ㅎ)

사진은 말할나위없이 훌륭하고...
6월은 다 지나가려합니다 / 제겐 너무도 바쁜~^^
 2015/06/29 09:44:56  


trio

선화님, 오랫만인 것같아요.
많이 바쁘신지 새 포스팅도 없고...ㅋ
사진사들의 복장이 컬러풀하면 눈에 쉽게 띄니까
주로 검정옷을 입더라구요.
예를 들어 결혼식 사진을 찍는 사진사들을 생각해 보시면 알거예요.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검은 색이나 회색 같은 색을 입어요.
새내기들이 멋모르고 빨간색 옷을 입으면 야단 맞더라구요. ㅋㅋ
저도 여름이라 좀 바쁘네요. 손님들이 많이 와서...
 2015/06/29 09:55:57  


나를 찾으며...

와~수도원의 고요와 적막감이 그대로 잘 묻어나는 사진이군요.ㅎㅎ
정말 그곳에선 사진 찍기 힘드셨겠어요!!
수도사와 수녀들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니 말이죠.

어안렌즈 , 드디어 구입하셨나봐요,
숲이 더 울창해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서 참 좋아보여요.^^*ㅎㅎ 2015/06/29 10:07:18  


trio

나찾님, 선화님과 거의 동시에 오셨네요.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수도사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같지는 않았구요.

어안렌즈는 사지 않고 멤버한테 빌려서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어요.
가격이 엄청 비싸고.. 자주 쓰는 렌즈도 아니어서 사고 싶은 마음은 없네요.
가끔 꼭 어안렌즈로 찍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빌려서 쓰려고 하지요.
어안렌즈 사용...비넷이 생겨서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어안렌즈로 찍은 사진... 나름 흥미롭지요?
잘 지내시죠?  2015/06/29 10:11:12  


멜라니

trio님 문학 소녀 맞잖아요. 왜 아닌 '척' 하시나요?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처럼 가냘프신 분이 총대같은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종횡무진하시니.. trio님의 모습.. 상상만 해도 가련합니다.. ㅜ.ㅜ
수도사들이 떠나버린 낡은 수도원의 사진을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기적'이 생각납니다..
혹시 저 수도원에서도 로저 무어같은 멋진 군인이랑
케롤 베이커 같은 아름다운 수녀님의 사랑이 있지 않았을까..
앗.. 불경스러운 멜라니.. ㅜ.ㅜ
변명이라면.. 지금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포스팅을 계속 보고 있어서
마음이 아주 달작지근... ㅎ
 2015/06/29 13:23:30  


trio

멜님! 그런가요? 제가 문학소녀인가요? ㅎㅎ
아무튼 핸드백도 무거운 것은 딱 질색이었던 제가 무거운 백팩 메고
무거운 카메라 들고... 극기 훈련하고 있어요. 이 나이에... ㅋㅋ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예요.
희안한 일이지요?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해서 끙끙 앓지만요. ㅋㅋ

거룩하게 보이는 사원의 역사에는 불경스러운, 그러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많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기적'이라는 영화..보고 싶네요. ㅎ

오랫만이예요. 멜님!
 2015/06/29 13:46:52  


교포아줌마

예술가들은 대체로 무채색 옷들을 입는 것 같아요.

자신을 없애고 대상을 향해 샷!

죠니 캐쉬의 '내가 왜 검정옷만 입는가' 노래 구절이 줄줄 생각나네요.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검정옷을 입는다는.

검정
'파워 블랙'

권위의 표시도 되지요.

검정옷 입은 찍사들이라...^^

예전에 사진관 가면 카메라 불 빵 터뜨리며 검정 휘장으로 가린 카매리 속으로 들어가던
사진사들 생각도 나네요.

사원 사진
고요, 평온해서 총대 맨 무장맨들은 느낄 수 없네요.

복잡 긴장된 상황에서도
사진으로 건져오는 평온

트리오님 마음이겠지요. 2015/06/30 00:36:32  


trio

교아님, 저희 일행이 8명이었어요.
그래서 일행이 들어간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요.
평온하고 고요한 사원에... 저희들의 모습은 조금 민망스러웠어요.
웨딩 야외 촬영을 하는 카플도 있었지만 그 웨딩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는
소박한 느낌이었거든요.
좋은 기종을 선호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잖아요?
자성하는 마음이 있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이 따라 하고 있지요.

"복잡 긴장된 상황에서도
사진으로 건져오는 평온...
트리오님 마음이겠지요." 라는 멘트가 감동스럽고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 교아님! 평안하세요.
 2015/06/30 10: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