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여정 마지막 날...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는 너무나 구경할 것이 많아서
일주일 내내 구경을 해도 모자랄텐데 잘츠부르크 인근의 숙소에서
4시간 이상이 걸리는 비엔나를 하루 만에 다녀 오기로 결정하고
아침 일찍 서둘어 나섰습니다.
비엔나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집이 있는 바덴이라는 도시에서 베토벤의 자취를 둘러보고
비엔나 시내에 들어서니 오후가 되어 버렸습니다.
비엔나 시내에는 모짜르트가 결혼식을 하고 10년 뒤 장례식을 치른
성 스테판 성당이 있고 6살 때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초청으로 연주를 하고 테레지아 여왕의 무릎에도 앉았었다는
테레지아 여왕이 살던 쉰부룬 궁이 있고 또한 악성들의 묘가 있는
중앙 묘지가 있는데 이곳에 모짜르트의 묘지 대신 기념비가 있습니다.
St. Stephan Dom (성 스테판 성당)
이곳에서 모짜르트는 1782년 가을에 콘스탄체와 결혼식을 하였고
1791년 겨울(12월 5일)에 장례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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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6세 때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초청으로
여왕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비엔나의 쇤부른 궁전....
모짜르트는 이 때부터 많은 연주 여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다닌 곳 외에도 비엔나 시내의 슈테판 성당 뒤쪽의 좁은 골목에
있는 집에서 살면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피가로 하우스"라는
기념관 (돔가게 5번지) 등등 비엔나에도 모짜르트의 자취가 많이 있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 때문에 다 찾아 다니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비엔나에서 한주일을 머물러도 모자라는데 오직 한나절만 다녔으니
꼭 다시 와야 하는 음악의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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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기념비가 있는 비엔나의 중앙 묘지
무척이나 넓고 큰 곳이지만 악성들의 묘는 특별 구역으로
함께 모여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엔나의 중앙 묘지에 있는 모짜르트의 기념비입니다.
레퀴엠의 악보와 하프를 안고 있는 청동상의 여인은
아내 콘스탄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무덤(유골)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비엔나의 성 슈테판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관을 멘 친구들이 관을 아무데나 묻었다고도 하고
St. Marx 공동묘지에 묻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비엔나의 장의법은 중, 하인층의 사람들은 죽은지 48시간 후에
시신을 묻어야 하므로 모짜르트도 당시 비엔나에서 중, 하인층에 속했기에
사후 48시간 후에 평민 공동 묘지에 묻혔고 "3급 장례"를 치루었는데
장례비가 약 12 플로린이들었다고 합니다.
그 돈은 후원자 스비텐 남작이 지불해 주었다는데 남작은
모짜르트의 "레퀴엠"의 작곡료를 250 플로린에 정했었기에
12 플로린을 지불해 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3급 장례"라는 것은 관을 재활용하는 것이고 묘자리는 7-10년에
재 사용되는 것이며 당시 비엔나 주민의 약 85%가 이같은
장례를 치루었다고 합니다.
12월 6일 성 스테판 성당에서 장례를 치르고 난 후 12월 10일
그를 추모하는 추모식이 다시 성 마이클 교회에서 있었는데 이 때
그의 "레퀴엠"이 부분적으로 초연되었고 12월 14일 프라하의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는 더욱 성대한 추모 예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체코에서 모짜르트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일입니다.
미완성이었던 "레퀴엠"이 제자에 의해 완성되고 1793년 1월 2일에
미망인 콘스탄체를 위한 모짜르트의 추모 컨서트에서
정식으로 초연되었습니다.
천재의 35년의 짧은 일생, 생전에는 그다지 대접도 받지 못했고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모짜르트 사후 내내 모짜르트는 음악계에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모짜르트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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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레퀴엠
Requiem d-moll, K626
모짜르트한테 1791년 어느 날 낯모르는 사람이 찾아 와서
레퀴엠 미사곡을 의뢰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체 모짜르트는 작곡을 시작하였고
이곡이 그의 사후의 작품이 될 것을 모짜르트는 알았다고 합니다.
그는 11월부터 팔다리가 붓고 구토 증세를 보였는데
루마티즘 열 증상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곡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12월 5일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이 레퀴엠이 자신의 마지막 곡이 될줄 알았던 모짜르트...
그러나 미망인 콘스탄체는 곡이 완성되지 않고는 작곡료를 받을 수 없으므로
모짜르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를 찾아가
작품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는 작품의 초안을 참고로 레퀴엠을 완성했습니다.
그 후 다른 여러 음악가들이 보완 작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내 콘스탄체는 서명을 위조하여 정체 모를 의뢰인의 하인에게 주었습니다.
익명의 의뢰인은 누구였을까요?
프란츠 폰 발제크(Franz von Walsegg)라는 음악 애호가인 백작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음악가의 곡을 받아 자기 작품인양 떠벌리는 사람이었는데
모짜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하여 얼마 전 사망한 자기의 아내를 위한
추모곡으로 발표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어긋나 오히려 모짜르트 자신의 추모곡이 되어
1793년 1월 2일 미망인 콘스탄체를 위한 모짜르트의 추모 컨서트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모짜르트...
그가 세상을 떠난지 210년이나 되었습니다.
2011/05/26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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