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베토벤기념관

후조 2011. 6. 8. 07:30

 

 

 



 

 

바덴에서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한 집을 둘러 보고

서둘러 비엔나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베토벤이 22세때 부터 세상을 떠나 57세까지

35년간이나 살던 비엔나에는 그의 자취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알려진대로 성격이 좀 괴팍하여 6개월 마다 사는 집을 바꾸고

6주 마다 하녀를 바꿨다는 말을 듣는데 그가 35년을 비엔나에 살면서

근교의 여름 거처까지 합치면 79번이나 사는 곳을 옮겨 다녔다고 하며

당시 비엔나 시내에 만도 살던 집이 27곳이나 되지만

원형대로 남은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답니다.

 

비엔나 시내에 베토벤의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는 곳은

제 3 교향곡을 작곡한 에로이카 하우스,

제 5 교향곡과 4-8번까지의 교향곡을 작곡한 파스콸라티 하우스,

그리고 유명한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쓴 집이 있고

비엔나의 중앙 묘지에 그의 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파스콸라티 하우스와 그의 묘를 둘러 보았습니다.

(그의 묘에 대한 것을 다음 포스팅에 올립니다.)

 

  
 

 

파스콸라티 하우스(Pasqualatihaus)

 

 

 

비엔나 시내,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하였다는

슈테판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파스콸라티 하우스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운명 교향곡(Symphony No. 5)을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은 평생 자기 집이 없었으며 독신을 지냈습니다.

성격이 괴팍하여 한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하였는데 그나마 이집에서는

집 주인 파스콸라티 남작의 호의로 거의 8년간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8년 내내 산 것은 아니고...

 

 

 

베토벤이 1804 - 1815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고 교향곡 5번과

4-8번까지 작곡했다고 하니 그의 대부분의 교향곡의 산실입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살던 집을 보면

그 당시 그들의 신분이 평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화려한 궁중에서 귀족들을 위하여 작곡을 하고 연주을 하였지만

그들의 신분이나 그들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조상님 덕분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왕족이나 귀족들이 남긴 화려한 궁전이나 그들이 소장하였던 예술품들은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지만

초라하고 비참하게 살던 음악가들이나 예술가들이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쏟아 놓은 예술의 혼은

세기를 넘어 영원히 만인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입구에는 "비엔나 기념관 베토벤 파스콸라티 하우스"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Beethoven Pasqualatihaus

1010 Vienna, Mölker Bastei 8
Phone: +43-1-535 89 05, Fax: +43-1-505 87 47-7201
E-mail
office(at)wienmuseum.at

Opening hours:
Tuesday to Sunday and public holidays,
10 a.m. to 1 p.m. and 2 p.m. to 6 p.m.
1.1., 1.5., 25.12., Easter- and Whit Monday
and all public holidays on Mondays - closed

 
 

 

다른 쪽 입구에는 베토벤 기념품 가게가 있었습니다.

 

 

 

협소한 공간에 베토벤에 관한 여러가지 기념품들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유명한 악성의 기념품 가게인데 너무나 작고 초라하였습니다.

가게 옆에 있는 좁은 계단으로 이층에 올라가니 베토벤 기념관이 있었는데

기념관을 돌아 보고 나오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는데

기념품 가게는 5시에 문을 닫아버려서

그나마 아무 것도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기념관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언제 다시 오랴 싶어서 많이 찍었습니다.

 

  
 
 
 

 

 

 

 
 
 
 
 
 
 

 

 

 

내부에는 요제프 멜러가 그린 베토벤의 초상화,

그의 괘종시계, 동상, 친필 악보, 당시의 컨서트 프로그램,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치 그 당시의 실내악 컨서트 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여름철인데도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조금은 씁쓸하였습니다.

슈테판 성당이 있는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이 피아노가 베토벤이 쓰던 피아노냐고 그곳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더니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물정한 표정을 합니다.

아니라고 보는 것이 좋을듯 싶었습니다.

 

 

 

이 집에서 작곡한 교향곡 5번,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은 1808년 그가 38세 때 완성했지만

작곡을 시작한 것을 1804년 경으로 이미 귀가 안 들리게 된다는 것이

분명해져서 운명과 대결하려고 결심했을 무렵이라고 합니다.

 

3번 교향곡 <영웅>이나 6번 교향곡 <전원>은 베토벤 자신이

타이틀을 붙였지만 5번은 베토벤이 이 곡의 첫 소절의 4음

"따따따 딴..."을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설명했다고 해서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그 이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며

오히려 '베토벤'하면 '운명', '운명'하면 '베토벤이라고 연상할 만큼

이 곡에서 베토벤은 그의 운명에 대한 거센 힘, 그리고 그 운명에

대항하는 강인한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제 3 교향곡 <영웅>을 작곡한 집 "에로이카 하우스"도

베토벤의 기념관인데 비엔나의 되블링에 있다고 합니다.

 

 

 

Döblinger Hauptstraße 92, 19th district.

 

 

 

 

 

 

 

 

 

베토벤이 1803년 여름을 이곳에서

지내며 교향곡 3번 <영웅>을 작곡한

집인데 현재는 베토벤 기념관으로

일반인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집에서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고 쓴 영웅 교향곡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화가 나서

표지를 찢어 버렸다고 합니다.

악보의 원보는 비엔나의 악우협회에

소장되어 있고

이 에로이카 하우스에는 일부를

확대한 사진판을 진열해 놓았답니다.

또한 이 집에 살 때 어느날 산보길에

길을 잃어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

적이 있는데 베토벤은 집에 오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집에 오자 마자 모자를

벗지도 않고 피아노 앞에 달려가

쓴 곡이 소나타 "열정"입니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Symphony No. 5 in C-moll (minor), Op. 67 
 
Gustavo Dudamel이 Gothenburg Symphony의 지휘로 
베토벤의 Symphony no 5 의 제 1악장 Allego con brio를 지휘합니다.
과거 유명한 지휘자들의 연주도 좋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젊은 지휘자 두다멜의
지휘도 열정적이어서 너무 좋습니다.
실황이기에 기침소리가 옥의 티...
연주회에서는 될 수 있으면 기침을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두다멜에 대해서는 저의 <음악이야기> 폴더에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1악장도 좋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2악장, Andante con molto도 좋아합니다.
 
죽음과 같은 고통과 시련이 어느 날 문득 찾아왔지만
절망과 고통 중에도 위로와 평안함을 찾는 모습...
이 평안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리고 운명과 맞서 싸우기를 결심하는 모습...
여기에 토벤아저씨의 위대함이 있는 것같습니다.
 
따따따 딴...운명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문을 두드리겠지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bbibbi

토벤이 아자쉬도,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신 분이군요.
79 번이나 거처를 옮기면서 살았다니...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기념품은 사지 못하고 오셨지만,
일케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오신게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 입니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피할수 없는 운명에 맞장을 뜬 베토벤...
2 악장을 들어 보겠습니다. 2011/06/08 10:47:47  


흙둔지

토벤이 아자씨가 결코 목석같은 남정네는 아니었지요.
여자 하나를 두고 괴테와 사랑싸움(?)까지 했지만
결국 사랑을 얻기는 커녕
괴테의 눈 밖에 나는 결과만 초래했던 토벤이 아자씨!

여우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기분이 들었을텐데
그 때는 무슨 곡을 썼는지 조금 궁금해지더군요. ^_^

여튼 바람둥이가 안되었으니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겠지요.
그 누구처럼 바람둥이였으면
지금의 토벤이 아자씨 존재는 미미했을지도...

오늘도 소중한 사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갑니다.
 2011/06/08 10:59:46  


KCC

흔적 남깁니다 / KCC - Ffm 2011/06/09 00:59:48  


멜라니

6개월 마다 이사를 다녔고 6주마다 하녀를 바꾸어 댔다면
성격이 좀 괴팍한게 아니고, 엄청 괴팍한 겁니다.ㅎ
그런 괴팍남을 사랑해줄 여성을 못만나게 좀 아쉽지만,
평생을 하고 싶은대로, 성질내며사셨을 것 같은 우리의 토벤씨! 2011/06/10 01:04:32  


민경

많은 시간을 기념관에서 보내셨군요.
기념품 못 사신 아쉬움도 크셨을것 같고요
언젠가 다시 가서 꼭 사실것 깉습니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환하게 밝아진 새로운 날 따따따 딴..하고
피할수 없음 즐겨야 할 하루가 열렸습니다.^_^ 2011/06/10 05:20:57  


trio

다녀가시며 댓글 남겨주신 고운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즐거운 주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06/10 16:08:21  


술래

안타까운것은 파스콸리티 하우스나 또 베토벤의 유서의 집으로 알려져 공개되고 있는 집들이
정확하지가 않고 추정하는거래요.
아침 일찍 유서의 집에 도착했는데 10시전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어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니 근처 성당에서 울릴것 같은 10시 종소리가
나자마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밀고 들어갔지요.
박종호씨 책에 나오는 그 여인더 아니고 그 다음에 갔을때 있었다던 노 신사도 아니고 젊은 청년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그거였어요.
유서의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추정을 하는거라고요.
파스콸리티 하우스도 마찬가지...
피아노는 베토벤의 피아노인줄 알고 보고 왔는데 트리오님 글 읽으니 그것도 아니군요.
보존된 유품이 별로 많제 않은거같아요. 2015/06/20 18:5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