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그리고 비엔나의 중앙묘지

후조 2011. 6. 11. 07:29

 

 



 

 

"It was only my art that held me back. 

Ah, it seemed to me impossible to leave the world

until I had brought forth all that I felt was within me."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난 내 안에 느끼는 것을 모두 꺼내어 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같다."

(베토벤의 유서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토벤 아저씨의 생애는

그의 <운명 교향곡>만큼이나 운명적으로 비참하고

성격 또한 괴팍하였던 것을 그가 쓴 유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귓병을 앓게 되면서 완치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32세의 베토벤은

잠시 휴양차 머물고 있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에

두 동생 칼(Karl)과 요한(Johann)에게 유서를 썼는데 이 유서는 25년 뒤

57세로 베토벤이 죽은 후에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Beethovenhaus in Heiligenstadt... 

The Beethovenhaus at Heiligenstadt

베토벤이 머물면서 1802년에 유서를 썼던 집

 

 

 

우리의 삶이 언제 마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유서를 쓰는 것은 아직도 왠지 망설여지고 쓰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나의 죽음이 임박해질 때에야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체 중에서 어느 기관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할까 마는

특히 음악가에게는 귀가 가장 소중한 기관일 것입니다.

 

그동안 베토벤하면 청력을 상실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었지

그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베토벤이 32세의 젊은 나이에 쓴 유서를 읽으면서

청각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 좌절을 그에게 주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6년동안 내가 어쩔 수 없는 병에 시달려 왔음을 생각해다오.

그 병은 무책임한 의사들에 의해 악화되었고 난 회복될 희망에 내내

세월을 허비하다가 결국에 오래도록 앓아야만 할거라는 사실에 직면해있다.

 

이 병은 완치가 되려면 아주 오래 걸릴 것이고 어쩌면 완치가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비록 불같고 적극적이고 사회의 여러가지 영향을 잘 받는 성격까지 타고 태어났지만

난 곧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때때로 이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귀가 나쁘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경험하곤 쓰라린 마음으로 물러서 버리고 만다.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요, 소리질러요, 난 귀가 먹었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다.

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완벽해야할 그런 감각이 병약하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나의 청각은 한때는 극도로 완벽해서 나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비록 때때로 난 교제를 나누고 싶은 욕구에 굴복해서 내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을 하곤 했지만 그러나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듣고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목동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는데도

나는 역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때의 그 굴욕감이란!

그런 일들은 나를 거의 절망으로 빠뜨려 버린다.

그런 일들이 조금만 더 일어났으면 난 자살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난 내 안에 느끼는 것을 모두 꺼내어 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같다."

(베토벤의 유서에서)

 
 
 

 

 

Zentralfriedhof (Central Cemetary) in Vienna

 

 

"음악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비엔나의 중앙 묘지에는

유명한 악성(樂聖)들의 묘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정문에서 약 200미터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모짜르트의 기념비와 브람스,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와 베토벤의 묘가

한곳에 있어서 특별 명예 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크고 넓은 곳이라 이렇게 함께 모여있지 않으면

일일이 찾아 다니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메트로놈(Metronome) 모양의 베토벤의 묘입니다.

금빛 하프가 새겨져 있는 것이 매우 화려하면서도 단아하게 보입니다.

 

"존경하려니 괴팍하고, 사랑하려니 가난하고, 무시하려니 위대하다."라는 말은

당시 비엔나 사람들의 베토벤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괴팍한 성격과 청각을 잃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더욱 빛났던

그의 예술의 혼을 비엔나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묘지를 보니 그가 임종할 때

"박수를 치게, 친구들이여! 희극은 끝났다네."

(Paludite, amici, comedia finita est.)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쓰고난 후 25년이나 더 살고

1827년 3월 26일에 그는 삶을 마감했습니다.

번개와 벼락이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치켜들고 허공을 노려보다가

이 한마디 말을 하였다고 전하여 집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그의 삶이 희극이었을까요?

 

 

Funérailles de Beethoven - Franz Stober

Beethoven's Funeral, Painted by Franz Stober (1827)

(image from web)

 

베토벤의 사망 후 3일째 되던 날 장례식이 치뤄지고

비엔나 인근의 뵈링(Waehring) 묘지에 묻혔는데 슈베르트 등에 의해

관이 호송될 때 2만명이 넘는 조객들이 횃불을 들고 장지까지 행렬을 지어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 비엔나 인구가 29만명일 때라고 하니

무척 성대한 장례식이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뵈링 묘지에 묻혔다가 중앙 묘지가 생기면서

1888년 9월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묘지 오른쪽으로 모짜르트의 기념비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슈베르트의 묘지와 비석이 있었습니다.

슈베르트의 비석에는 슈베르트에게 월계관을 씌어주고 있는

음악의 神 뮤즈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베토벤을 너무나

좋아해서인지 베토벤이 57세로 죽은 다음 해에 31세의  안타까운 젊은 나이에 죽었고

죽어서도 베토벤과 함께 묻히기를 원했기에 베토벤과 함께 뵈링 묘지에 묻혔다가

베토벤의 묘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함께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음악가의 뜻을 사후에도 끝까지 배려하는 비엔나 사람들의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짧은 생애 동안에도 그토록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하였기에

음악의 신 뮤즈로 부터 월계관을 받기에 합당하였던 슈베르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떤 곡들을 더 작곡했을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모짜르트 기념비에는 레퀴엠의 악보와 하프를 안고 있는 여인의

청동상이 위에 있는데 아내 콘스탄체의 모습입니다.

모짜르트의 묘지(유골)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모짜르트에 관한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베토벤이 모짜르트에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 비엔나에 왔을 때는

모짜르트는 이미 타계하여서 하이든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왈츠(Waltz)의 황제로 불리우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와

그의 세번째의 젊은 아내 아델의 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 1세(1804-1849)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아들과 음악적인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엔나로 오시오. 음악가가 살기에는 좋은 곳이오."라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권유에 따라 1862년 거처를 비엔나로 옮긴 브람스는

죽을 때까지 35년간 요한 스트라우스와 두터운 우정을 나누다가

지금은 영원히 둘이서 나란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을 연모하여 일생 결혼도 하지 않았던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묘석에 왠 나체의 여인들이 뒤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분홍색 꽃인지, 대리석인지, 알 수 없는

꽃 한송이가 다 시들어 있었습니다.

장미 한송이라도 사다가 놓아줄 것을....

 

 

 

 

 

아놀드 숀버그의 묘입니다.

숀버그의 묘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찾지 못하고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브람스, 숀버그 등

악성들이 당대에는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죽어서라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들이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모두 함께 연주를 하고 있을까, 지금도 작곡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시대의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 시대의 현대 음악이 도무지 못마땅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을까...ㅎ

 

 

  

 

 

 묘지 내에 있는 성당

 

 

이곳에는 세계 제 2차 대전 이 후 오스트리아의 역대 대통령들의 묘가

벤치 모양으로 돌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제 4대 대통령 Dr. Karl Renner (재임기간: 1945-1950)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제 5대 대통령 Dr. H. C. Theodor Korner (재임기간: 1951-1957)

 

 

제 6대 대통령 Dr. Adolf Scharf (재임기간: 1957-1965)

 

 

제 7대 대통령 Dr. Franz Janas (재임기간: 1965-1974)

 

 

제 8대 대통령 Dr. Rudolf Kirchschlager (재임기간: 1974-1986)

 

 

제 9대 대통령 Dr. Kurt Waldheim (재임기간: 1986-1992)

 

 

제 10대 대통령 Dr. Thomas Klestil (재임기간: 1992-2004)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위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Dr. (PhD)인 것이 특이합니다.

 

 

 

 

 

 

일주일 간의 꿈같은 여행의 마지막 날,

중앙 묘지를 보고 다시 잘츠부르크까지 당일에 도착해야 해서

아쉽지만 비엔나를 떠나서 숙소를 향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서 만난 황혼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비엔나는 꼭 다시 와야 하는 도시,

언제가 될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입니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I. Adagio

Conductor: Leonard Berstein,

Pianist: Krystian Zimermann

Orchestra: Wiener Philharmoniker

 

 2011/06/10 14:44 

 





흙둔지

10여년전 미리 유서 써놓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동참하기가 싫어 안했었는데
미리 유서를 써 놓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자신을 겸허하게 뒤돌아 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2011/06/13 05:28:43  


trio

우리의 인생이 한치 앞을 모르는 일이니
자녀들이나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리 써 놓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특별히 할 말도 없는 것같아서 아직은...이라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유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은 것이
분명한 나이인지라 서글퍼지네요.
 2011/06/13 08:41:38  


bbibbi

유서를 미리 써 놓는다는 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증거 일것도 같습니다.
겨우 32 세에 유서를 썼다는걸 봐서도,
운명을 다한 57세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수 있습니다.

예술가가 아니드라도, 누구에게나
신체의 어느 한 부분도 귀하지 않은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음악가에게 청각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존경 하려니 괴팍하고,
사랑하려니 돈이 없고,
무시 하려니 위대하다."
비엔나 사람들이 괴팍한 그를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 했군요.ㅎㅎ

비엔나의 중앙묘지는 음악가들의 묘지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역대대통령들의 묘가 한다리에 있다는게 신기 합니다.
베토베의 장례식과,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까지...
흥미롭게 보고 갑니다.  2011/06/13 13:4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