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에 있는 뻬르 라쉐즈 공동묘지에서
<장미빛 인생>의 에디뜨 삐아프를...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맨 먼저 찾아간 이 거대한 묘지에는
1803년에 설립된 이래 수백 명의 저명한 인사들이 묻혀 있어서
시, 문학, 음악,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파리의 명소인데
눈과 비가 오락 가락하는 날씨여서 문을 열지 않았었습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죽은 자들의 땅인 이 묘지가
그 어느 곳보다 먼저 찾아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얼마나 서운한지...
그래도 일주일 뒤 다시 찾아 가니 문이 열려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무덤들 가운데 몇몇 찾고 싶은 무덤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간략한 지도가 있었지만...)
다행이 안내를 자원하는 불란서인이 다가와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찾고 싶은 무덤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에 묻혀 있는 음악가, 문인들, 예술가들에 대한 정보를 빽빽이 적어 놓은 수첩을 들쳐 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주던 이 불란서인과 너무나 다양한 모양의 무덤들은
춥고 흐린 날씨와 옷을 벗어 버린 나목(裸木)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 멀리서
죽은 자들의 땅을 찾은 이 나그네에게 너무나 멋진 추억이 되었습니다.
맨 먼저 찾고 싶어 했던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1915-1963)는
그의 다른 가족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검은 고양이는 항상 이곳에 있으면서 그녀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찬가, L 'Hymme a l 'amour"를 부르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
에디뜨 삐아프,
"에디뜨 삐아프"는 "작은 참새, Kid Sparrow"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재능을 발굴한 르뽈리가 가수로 그녀를 무대에 올리기 전에 지어준 예명이지요.
실제로 작은 체구의 그녀의 모습은 작은 참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963년 10월 11일, 쓸쓸한 가을 날,
48세의 아까운 나이에 그녀가 생을 마감하였을 때
파리의 대주교는 그녀의 생애가 너무나 비카톨릭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장례식 집전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열명이 넘는 남자와 동거 생활을 했고
이 가운데 두번은 정식 결혼과 이혼이라고 하니
주교로서는 거부 할만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그녀를 탕녀라고 부르는 프랑스인은 없고 오히려
그녀의 장례식에는 십만명의 팬들이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빈민가에서 이태리계의 삼류 가수인 어머니가 그녀를 낳은 후
그녀를 버리고 떠나자 공대 노릇을 하는 아버지가 그녀를 창녀촌에 맡겨 기릅니다.
그렇게 자라다가 그래도 어머니의 소질이 그녀에게 전수 되었는지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거리의 가수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마침내
그 비참한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올라 선 프랑스의 국민 가수...
2007년 그녀의 일대기를 그린 <장미빛 인생, La Vie En Rose>라는 영화가 나와서
삐아프 역을 맡았던 프랑스의 여배우 마리옹 코티야르(Marion Cotillard)가
2008년 제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파격적으로 여우 주연상을 타게 된 것은
그녀가 맡은 에디뜨 삐아프 역을 완벽에 가까우리만치 소화해 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장미빛 인생"이라는 노래는
그녀가 이브 몽땅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을 때
불과 15분 만에 작곡하여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그녀는 윤락가의 핌프와 동거 생활을 했고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발굴해 준 은인이었던
르뽈리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고 나치의 거슈타포들을 집으로 불러 들여
파티를 열었으며 그녀는 레지스탕스를 돕기도 했다고 합니다.
몽마르뜨의 무랑 루즈에 출연했을 때에는
무명의 남자 가수를 키워 애인으로 삼았는데 그 남자 가수가
나중에 "고엽"을 불러 수퍼 스타가 된 미남 가수 이브 몽땅...
그녀가 한 때 사랑했던 이브 몽땅과 그의 아내의 무덤도
삐아프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이브 몽땅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 시몽 시뇨레가 심었다는 나무가
이렇게 많이 자라 있었고 누군가 시몽 시뇨레의 사진을 나무에 붙여 놓았습니다.
삐아프는 그녀가 키운 젊은 가수 이브 몽땅과는 곧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랑을 찾습니다.
삐아프는 이렇게 끊임없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이별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정상에 올랐을 때는 복싱 미들급 챔피언인 마르셀 세르단과 사랑에 빠져
그의 경기 때마다 링 앞에서 열렬히 응원을 하여 화제의 초점이 되기도 했는데
세르단은 삐아프를 만나러 유럽에서 뉴욕으로 오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로 죽었고 삐아프는 그 충격으로 공연 도중에
무대에서 쓰러져 신문의 톱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불행과 행복의 반복이 삐아프가 걸어온 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인가 봅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피보다 진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 여성,
에디뜨 삐아프는 노래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사랑의 노예가 되는 바람에
다 날려 버리고 죽을 때는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잡지의 어느 여(女)기자가
그녀를 찾아 미국까지 와서 여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love",
소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love",
그리고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도
역시 그녀의 대답은 똑 같이 "love"...
이처럼 그녀에게 "사랑"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토록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였지만
그녀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장미빛 인생> 영화에서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난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입니다.
"난 후회하지 않아요.
삶의 고통도 상처도 지나고 나면 그 뿐..
고통도 상처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녀의 노래를 듣는 관객들...
아마도 공연장의 관객들은 삐아프이 노래에서
삐아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빠아프는 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제대로 살았는걸요."
너무나 비참한 그녀의 출생과 자라난 배경, 그녀의 재능,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녀의 외로움과 슬픔,
그러한 가운데서도 고통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행복하다는
그녀의 낙관적인 성품...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과연 "장미빛" 이었을까요?
<장미빛 인생>
Hold me close and hold me fast
The magic spell you cast
This is LA VIE EN ROSE
When you kiss me heaven sighs
And tho' I close my eyes
I see LA VIE EN ROSE
When you press me to your heart
I'm in a world apart,
A world where roses bloom,
And when you speak Angels sing from above
Ev'ryday words seem to turn into love songs
Give your heart and soul to me
And life will always be LA VIE EN ROSE
I thought that love was just a word
They sang about in songs I heard
It took your kisses to reveal
That I was wrong and love is real
Hold me close and hold me fast
The magic spell you cast
This is LA VIE EN ROSE
When you kiss me heaven sighs
And tho' I close my eyes
I see LA VIE EN ROSE
When you press me to your heart
I'm in a world apart,
A world where roses bloom,
And when you speak Angels sing from above
Ev'ryday words seem to turn into love songs
Give your heart and soul to me
And life will always be LA VIE EN ROSE
공동 묘지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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