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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슬픔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도종환-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비에 소리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 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다음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자화상

"자화상" -윤동주-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시와 사진...

바람의 노래 오세영 바람 소리였던가, 돌아보면 길섶의 동자꽃 하나, 물소리였던가, 돌아보면 여울가 조약돌 하나,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 울고 싶어라. 내 귀에 짚이는 건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세상은 갈바람 소리, 갈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 *****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울고 싶어라." 어쩌면 시인은 이렇게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시를 쓰는지... 가을 산 해질녁에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아니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트리오를 슬프게 합니다. 젊은 날 명색이 문학을 공부했는데... "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