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말
- 김 남조 -
불 지핀 엽맥 葉脈 에서 못다 탄
흰 수액의 한 방울
남은 말이 있다
어느 어름진 최종의 날에까지
독 묻은 버섯처럼 곱고 슬프게 눈떠 있을
네게 못다 준 목숨의 말 한마디
기적도 있고서야
설마 내 하느님 너를 살게 하시리라면서
석양처럼 번져나는 설움
깜빡 눈이 머는 것 같아짐은
아무래도 어디 기막히는 아픔 끝에
네가 숨져가는 가 보아
지구라는 것
도시 인간이 바라고 있는 모든 지혜가 미워
축축한 산마루에
너 한칸 이끼 낀 동굴이라면
내야 얼마나
한 마리의 어린 곰으로 살고 싶을까
머리 수그려도 수그려도
못다 준 한 마디 말의 아픔
*****
젊은 날 애송하던 詩...
겨울 산을 찾아 멀리 떠나서 눈 속에 있다 보니
생각났던 시입니다.
가을 여행 때는 빗 속에 갇혀 있었는데
이번 겨울 여행은 눈 속에 갇혀 있었으니
계절 여행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도착하기 전 날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해서
예약했던 렌트카를 취소하고 덴버 공항에 내려서
리조트까지 셔틀을 타고 갔었습니다.
Vail, Corolado..
여름이면 Vail Music Festival로 유명해서 여름에 두 차례 간 적이 있고
포스팅으로 소개도 했었는데
사실은 겨울 스키 리조트로 더 유명한 곳입니다.
오랫동안 따뜻한 지역에서 살아서인지
눈이 내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마음은 벌써부터 동심으로 돌아가서 설레였습니다.
스키시즌을 앞두고 눈(雪)이 많이 내려서
스키어들에게는 더 없이 기쁜 눈(雪)이었겠지만
겨울 산, 겨울 풍경을 렌즈에 담고 싶은 트리오에게도
얼마나 고마운 눈(雪)이었는지...
비는 사람을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데
똑같은 H2O 성분의 눈(雪)은 영하 18도의 추위에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사랑스럽게 하고 설레이게 하며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메달린 고드름을 보니
얼마나 신기한지...정말 오랫만에 보는 고드름이거든요.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 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어릴 적 부르던 동요는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추운 지역에서야 흔하디 흔한 고드름을 보고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사진을 찍어서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딸들에게
"한국말로는 '고드름'이라고 한단다." 라는 메세지와 함께 전송했더니
딸들도 환호를....와우, Pretty!!!
철딱서니 없는 첼로입니다.
내 고향은 남쪽 따뜻한 곳이라 눈이 오는 날도 포근하면서
커다란 눈송이가 그야말로 펑~펑~ 쏟아지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녁 해질 무렵에는 동네의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눈이 펑~펑~ 내리던 시골 논길,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
눈이 소복히 쌓인 장독대,
지금도 여전히 추억 속에 아련합니다.
지금 쯤 모국에서는 김장이 한창이지요?
늦가을 친정집 김장하는 날은 동네 잔치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넓은 앞 마당에 있는 평상에 절인 배추를 가득 쌓아 놓고
동네 이웃들이 많이 와서 다 함께 도왔거든요.
돕는 손길들이 많아서 궂이 할머니께서 하실 필요도 없었는데
할머니께서는 김장이 다 끝난 다음에 무청으로 물김치를 만들으셨지요.
장독대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날...
얼음이 서걱서걱 얼켜있는 무청으로 만든 물김치를 한 바가지 퍼다가
쏭쏭쏭쏭...잘게 썰어서 맛있게 만든 양념장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게를 뜨거운 밥과 함께 비벼 먹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산 속에...눈 속에서 지내면서 이 음악을 내내 들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 (Edvard Gried, 1843-1907)의 '솔베이지 노래'
누구나 즐겨 듣는 이 음악은 관현악 모음곡 <페르퀸트>에 나오는 노래이지요.
솔베이지가 집을 나간 남편 페르를 일생 기다리다가
다 늙어 머리가 희어졌을 때에야 남편이 돌아온다는 내용이지요.
언제 들어도 슬프고 애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일생을 통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끝내 그 사람을 해후했던 여인, 솔베이지는 행복했던 여인이 아니었는지..
사실 남편 페르는 방탕하고 무모한 사업가로 세상을 떠돌다가다
늙어서야 아내를 찾아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야 솔베이지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저 그리워서...보고 싶어서...기다린 여인 솔베이지를 생각하니
'아, 외롭다는 건
노을처럼 황홀한 게 아닌가'
조병화 시인이 노래한 시 '노을'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Solveig's Song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that you'll come back again,
that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es,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스키장의 모습은 다음 포스팅에 올리겠습니다.
|
dotorie |
|
따뜻한 곳에 계신 트리오님이 제일 먼저 겨울을 맞으셨네요. 눈덮힌 산길, 그림은 좋은데.... 가끔씩 겁나지요~~~ㅎㅎㅎ 눈 대비해서 타이어 바꾸느라 출혈이 있었습니다......ㅋ 2014/11/25 04:21:26 |
|
|
| |
|
|
trio |
|
눈길에 운전해본 적이 없어서 렌트카를 하지 않았더니 지내기가 좀 불편하고 셔틀이나 택시를 이용하니까 비용도 더 많이 들더군요. ㅋㅋ 그런데 있어보니까 운전해도 될 것같았어요. 큰 길은 제설작업을 바로 바로 하니까...괜히 겁을 먹었던 것같아요. 도토리님은 익숙하시지요? 겨울에는 스노우 타이어로 바꾸시나요?ㅋ 2014/11/25 04:28:43 |
|
|
| |
|
|
흙둔지 |
|
칼라사진인지 흑백사진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입니다. 광각 렌즈로 담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런지요... 그곳엔 자작나무 군락지가 꽤 있지 않나요? 겨울엔 자작나무 숲이 최고거든요. 2014/11/25 05:34:04 |
|
|
| |
|
|
trio |
|
어떤 것은 흑백으로 보정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데 날씨때문에 그렇게 보이네요. 광각, 표준, 줌렌즈 다 가지고 갔는데 호수나 바닷가와 달라서 광각으로 찍을 때 원하지 않는 것들이 들어가더군요. 산 위에 올라갔더라면 광각으로 멋지게 잡을텐데 스키타는 사람들 외에는 리프트를 못 타게 하더군요. 여름에는 곤돌라로 올라가게 했는데... 산 아래에서만 찍으니가 광각이 그다지 효과가 없었답니다. ㅋㅋ 그곳에는 자작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철 푸른 나무들이 섞여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둔지님! 2014/11/25 06:49:21 |
|
|
| |
|
|
士雄 |
|
사진도 좋고 글도 좋고 ,, 성장과 성숙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합니다. 늦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신 거 같습니다.ㅎ 2014/11/25 08:02:33 |
|
|
| |
|
|
선화 |
|
벌써 겨울이군요!! ㅎㅎㅎ 제주는 아직도 그냥 가을 느낌입니다
골프하기전엔 스키를 엄청 타러 다녔어요 ( 그땐 스키장도 한산~ㅎ) 그러다 갑자기 울나라에서 '보드"가 유행을 하더니 너무도 많은 인파에 사고 위험도 있고 골프에 빠진 담부터는 그 어느 운동도 시들하더군요~ㅎㅎ ( 눈을 보니 갑자기 스키탔던 그때가..)
그나저나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렌즈가 글케 많이 필요한거군요 사진에 문외한인 저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뭐든 자동으로 되는 ...유일하게 망원렌즈 한개더~~ㅎㅎ
눈보라가 치는 칼바람이 가끔은 그리운 제주도입니다!!! 2014/11/25 08:21:20 |
|
|
| |
|
|
trio |
|
사웅님, 사진도 글도 좋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직은 많이 배우야할 단계이지만 그 나름 즐기고 있으니 그것조차 감사하답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일도 힘드는 작업이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건강하십시요. 사웅님! 2014/11/25 08:25:08 |
|
|
| |
|
|
trio |
|
아, 선화님은 운동을 좋아하시는군요. 골프를 하게 되면 다른 모든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지요.ㅎ
그런데 스키 타는 것은 매우 멋있기는 하지만 좀 위험한 것같아요. 저도 젊어서는 배워보려고 했었지만 도저히 아니라 포기했었지요.
베일에서 매년 5~20 명이 스키를 타다가 죽는다는군요. 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주의해서 길을 잃거나 눈사태로 그런다고 하니...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더군요. 2014/11/25 08:29:47 |
|
|
| |
|
|
Anne |
|
무청도 나름이지요. 엄마는 무만 보면 토종인지 살펴보고 토종 무의 무청이라야 굵어도 부드럽다고 김치에 쓰시죠.
저 크리스마스카드같은 사진. 한 10년전쯤 미국기차가 타고싶어서 오클랜드(맞나요?)에서 시카고까지 암트랙을 탔어요. 10월초였는데 열차가 산악으로 들어서면서 눈이 오는데 이 부산사람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차창이 그대로 카드였지요. 눈도 엄청 펑펑 왔죠. 그러다가 덴버에 들어서니 눈이 비로 바꼈어요. 2014/11/25 10:59:58 |
|
|
| |
|
|
trio |
|
그래요, 앤님, 그 때의 무청 물김치가 질겼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토종 무의 부드러운 무청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그렇게 맛있었겠지요.
앤님께서는 대륙횡단 기차를 타셨군요. 오클랜드는 샌프란시스코 근처니까 맞지요. 오클랜드에서 시카고까지는 거의 대륙횡단이지요. 저는 아직 타보지 못했는데...
겨울이나 가을에 한번 꼭 타보려고 해요. 대륙횡단이 아니더라고 조금 짧은 거리라도 꼭 타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ㅋ 2014/11/25 12:53:29 |
|
|
| |
|
|
산성 |
|
아,정말로 멋진 겨울 풍경이군요. 사진 때문에 여행을 더 많이 하시게 되니 일거 양득?
며칠 전 마리스 얀손스가 서초동 예당엘 다녀갔어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쇼스타코비치 5번 후 앵콜곡이 바로 이 솔베이지 노래. 아 좋았어요. 그 고요함이라니... 눈 풍경 보다가 다시 얀손스 생각을...ㅎㅎ 감기 조심하시고요~
2014/11/25 18:23:13 |
|
|
| |
|
|
trio |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솔베이지 노래를... 너무 좋았겠어요. 머리 속에 그려지네요. 분위기가...
사진 핑게로 돌아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지요. 식구들한테도 덜 미안하거든요. ㅎㅎ 특히 일하면서 애들 키우느라 바쁜 딸들한테... 2014/11/25 23:15:57 |
|
|
| |
|
|
멜라니 |
|
눈 덮힌 로키.. 저한테는 참 익숙한 풍경이었고 좋아하지 않았던 장소였는데, trio님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살 때는 몰랐는데, 지난 후에 보니 너무나 멋진 곳이었구나.. 를 절감하는 중이예요. 저는 무서워서 리프트를 못 탔지만,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 멋진 레스토랑이 있어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내려온다고 하던데.. 이제는 스키 타는 사람들만 올라가게 하나 보죠? 저렇게 눈 덮힌 곳, 눈보라치는 곳에 서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는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환상적인지.. 훗날 로키에 갈 기회가 생기면 페르귄트를 꼭 챙겨갈 겁니다 ㅎ 2014/11/26 09:54:10 |
|
|
| |
|
|
trio |
|
여름에는 곤돌라가 다니면서 마운틴바이커 mountain biker들을 실어나르고 일반인들도 올라가게 했어요. 그런데 스키시즌에는 스키타는 사람만 올라가게 하더군요. 집에 오니 어제도 최고 기온 화씨 82도...밤에는 조금 내려가지만.. 다시 추운데로 가고 싶네요. ㅎㅎ 2014/11/27 03:00:42 |
|
|
| |
|
|
황남식 |
|
저는 산과 바다를 겨울에 좋아합니다. 인적이 끊긴 겨울 바다는 거대한 상념 자체입니다.
마찬가지로 겨울 산도 거대한 詩 그 자체입니다.
어릴적 눈 덮힌 산으로 나무하러 가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는 오리털로 점퍼를 만드는줄은 상상도 못했고요.
겨울 황소 바람이 몸속을 찔러대도 버텼고 고무신이 눈 녹은 땅바닦에 미끌어져도 태연헸죠. 2014/12/02 01:19:06 |
|
|
| |
|
|
trio |
|
"인적이 끊긴 겨울 바다는 거대한 상념 자체, 겨울 산도 거대한 詩 그 자체..." 멋진 표현입니다. 겨울 산과 겨울 바다를 좋아하시는...무척 낭만적이세요. 2014/12/03 04:18:47 |
|
|
| |
|
|
dolce |
|
기다린다는 것 또한 노을처럼 황홀하지 아니한가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관심 속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우면 저리 붉게 타고 멀어질까? 꺾어진 아픔에 당에 떨어져서도 붉게 선형을 흘리는 동백같이 말입니다.
당신이 너무나도 그리웁다.
가슴은 노을빛.
몸에선 낙엽 타는 냄새.
당신이 나무나도 보고 싶다.
그리움 김소엽
솔베이지 들으면서 눈속에 노을 이야기만 하고 가네요....^^** 2014/12/03 06:04:49 |
|
|
| |
|
|
dolce |
|
김소엽 시인에 대해서 덕분에 잘 았게 되었습니다. 솔베이지 사연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네요. 일찍이 홀로 되신 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하늘 나라가서 만나게 되는 그 날의 소망이 없다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아요.
그 분의 시들중에 많은 부분이 가신 님을 그리는 것들이 많더군요. 2014/12/05 05:55:19 |
|
|
| |
|
|
trio |
|
돌체님, 김소엽시인의 시들은 거의 모두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이지요. 젊은 날 혼자 되셔서...오직 믿음으로 사신 것같아요. 외로움과 슬픔, 그리움을 하나님의 향한 노래로 승화시키고... 뉴저지에 사신다고 하니까 더욱 반갑습니다. 동과 서가 멀지만 그래도 같은 나라 안에 계시니까요. 자주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12/05 07:34:07
| |